2018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허용호 ⓒ허용호

'e美지'에는 항상 제보가 많이 들어온다. 자신을 감동시킨 장애예술인을 소개하는 열혈 독자들이 많다.

새해 벽두에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사자 가운데 휠체어를 탄 사람이 있다는 속보가 카톡으로 와서 검색해 보니 정말 멋진 사진이 눈에 확 들어왔다. 그 주인공은 바로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자 허용호 (50세) 작가이다.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은 288편이 접수되어 최종심에 5편이 올라 허용호 동화 '비밀이 사는 아파트'가 당선작으로 결정된 것은 오로지 작품이 뛰어났기 때문이다.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상식. ⓒ허용호

Q: 어떻게 신춘문예에 응모할 생각을 하였는가.

아버지가 원고를 우연히 보시고 문인인 지인께 원고를 보여 드린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그분이 신문스크랩도 해 주시고, 꼭 응모하라고 격려를 해 주셔서 ‘네’라고 대답을 했었는데 저는 그것이 약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응모를 했습니다.

감히 조선일보를 택한 것은 다른 신문사 신춘문예 동화는 원고 분량이 200자 원고지 30장 이었는데 조선일보만 25장으로 되어 있어서 원고 분량이 맞아 조선일보 한 곳에만 응모를 했습니다.

Q: 보통 삼수 사수가 기본인데 첫 도전에 성공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는가.

첫 도전에 메이저급 신춘문예에 당선이 되어 솔직히 저 자신도 믿기질 않습니다. 아직 문장력이 익지 않아서 많이 서툰데 당선된 것은 글쓴이의 이야기라서 심사위원들의 마음에 더 와 닿았지 않았나 싶습니다.

Q: 심사위원들은 작가의 장애를 전혀 모르고 있었을 텐데.

제 장애를 밝히지 않아서 알 수가 없었겠지만, 이야기 속에서 느낄 수도 있지 않았을까도 싶은데 신문사에서 당선 소식을 전해 주며 당선자들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 본사로 오라고 했을때 휠체어를 사용한다고 얘기했더니 다소 놀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오전 촬영을 오후로 바꿔 주었지요.

2018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과 함께 ⓒ허용호

<심사평>

비밀의 속성을 흥미로운 발상으로 이끌어 내어 읽는 즐거움을 줬다. 사소하고 심각한 비밀의 대비와 어울림이 자연스러워 교훈이 결말에 노출되는 단점이 있음에도 유쾌한 분위기와 진지한 주제를 아우르는 데 성공했다. 부디 큰 작가로 성장하기를 빈다.

Q: 심사평에 더 보태고 싶은 말은.

당선 소식을 듣고 사실 심사평이 걱정이었습니다. 급하게 쓴 글이라 문장이 서툰 점이 마음에 걸렸거든요. 흥미로운 발상이라는 심사평에 힘입어 앞으로 더 많은 구상을 해 볼 생각입니다.

Q: 대학에서 미술을 전공했던데 문학보다는 미술이 더 친숙할 것 같다.

당연히 미술이 친숙합니다. 미술은 깊이 들어가 보았으니까요. 미술은 자신을 표현함에 추상 적이라면 문학은 직접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순간의 통찰을 기록하는 면에서 문학은 가장 편리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문학은 초보에 불과합니다.

<당선소감>

나의 글쓰기는 일상의 기록입니다. 그때그때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기면서 나를 돌아봅니다. 교만하지 않은지, 나로 인해 누가 아프지는 않은지, 잘못된 길을 가는 건 아닌지 글로 옮기면 나와의 약속이 돼 버립니다. 동화는 이런 글쓰기의 연장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점점 깊이 들어가고 싶고, 더 잘하고 싶어집니다.

Q: 왜 글을 쓰게 됐는지는 당선 소감에 잘 나타나는데… 반성을 위해 글을 쓰는 건가.

반성이라기보다는 통찰입니다. 그래서 짧은 수필 형식의 글이 많습니다. 그 글들을 블로그나 카카오스토리에 올려서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제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이기도 하죠.

Q: 문화센터 동화창작 프로그램은 오프라인 교육인데 통학은 어떻게 해결하였는가.

제가 운전을 합니다. 이 교육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이론 위주가 아닌 매주 과제를 통해 실제 글을 쓰는 동기를 부여하고, 강평을 들으며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수정하면서 작품을 만들어 갔으니까요.

아무리 열심히 써 가도 강평에 들어가면 지적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적을 받아들일 수 없을땐 표정관리가 안 되기도 했었죠. 차갑게 느껴져서 다가가기 힘들어 보인다는 얘기도 듣긴 했지만 친해지면 한없이 따뜻한 성격입니다.

Q: 매주 한 편씩 과제로 쓴 동화 가운데 '비밀이 사는 아파트'도 있었나.

네, 과제로 쓴 것입니다. 과제는 항상 수업 전날 밤에야 완성이 되는데 마침 그날이 신춘문예 마감이었습니다. 그래서 강평도 거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원고를 보냈기 때문에 당선될 것이 라고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Q: 응모를 하기 위해 정성껏 작품을 다듬었을 텐데 역점을 둔 것은 문장인가? 구성인가?

문장이든 구성이든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습 니다.

Q: 주인공 화영이 작가 자신이라고 생각되는데.

맞습니다. 화영은 23살에 교통사고로 하반신 마비 척수장애인이 된 것으로 설정하였지만 저는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다쳤습니다. 대학 시절 행글라이더 동아리에서 활동을 했는데 하늘을 난다는 것에 묘한 쾌감이 있었죠.

그러다 군에 입대하게 되어 한동안 행글라이더를 잊고 있다가 제대를 앞두고 휴가를 나와서 행글라이더를 타다가 낙하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되었습니다.

Q: 중도장애인들이 겪게 되는 과정인 분노에서 수용까지 얼마나 걸렸는가.

2년 정도 걸렸던 것 같습니다. 책을 통해 명상을 알게 되었는데 마음을 잡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도 명상을 합니다.

저는 1967년 함양 에서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나 대학은 부산에서 다녔고, 포항에서 부모님과 살다가 2년 전에 독립을 하였습니다.

장애인복지에서는 그것을 자립생활 이라고 하죠. 하지만 아직 경제적인 자립이 이루 어지지 않았으니 그냥 혼자 살고 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이죠.

Q: 현재 사이버대학에 재학 중인데 미술치료를 택한 이유는.

저는 자기중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내 시간과 내 일이 전부였습니다. 다치고 난 후 주위를 살펴 보니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고통을 갖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고통을 치유해 주는 남을 위한 시간을 가져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살려 뒤늦게 미술치료를 공부하고 있는데 사실 그것도 내 삶에 대한 투자입니다.

Q: 글과 그림 두 가지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글에 맞는 그림을 직접 그릴 수 있어서 행복입니다.

Q: 작품에서 주인공 화영이 자유가 기다리고 있어서 신난다고 끝을 맺었던데, 작가가 찾은 자유는 무엇인지.

어차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몸이 있는 한은 묶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자유는 내면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더 궁극적인 자유는 영적인 자유입니다.

Q: 아직도 밝히지 못한 비밀이 있는 것은 아닌지.

없습니다. 굳이 있다면 야한 생각을 가끔 한다는 정도일까요.

Q: 장애인문학이란 장르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장애인문학, 장애인예술은 가능한 범주를 넓히면 좋겠습니다. 장애인뿐 아니라 비장애인도 함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장애인예술은 장애예술인의 창작뿐만이 아니라 장애 관련 예술 활동까지 포함되었으면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얼떨결에 동화의 길에 접어들었지만 재미있습니다. 이제부터 생활이 동화가 되게 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이야기를 쓸 생각입니다.

군복무 시절(좌) 장애 후(우) ⓒ허용호

<당선작 '비밀이 사는 아파트'에서 장애에 대한 메시지가 잘 드러난 부분>

“화영아. 너는 장애인이 된 것이 부끄러운 거니?” 내가 넌지시 물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걷지도 못하고, 사람들이 나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아 싫어.” 화영이는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화영아, 네 몸은 자동차 같은 거야. 사람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말이야. 자동차는 고장도 나고, 언젠가는 폐차장으로 보내야 하는 거야. 좋은 차를 타면 좋겠지만 고장 난 차를 탄다고 부끄 러운 것은 아니야.” 화영이 눈이 동그랗게 빛났다.

“그렇긴 하지만 불편해. 그리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잖아.”

“화영아, 네가 자동차를 타고 여행한다고 생각해 봐. 고장 난 차로는 빨리 가지 못하잖아. 그래서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거야. 여행이란 빨리 가는 게 목적이 아니거든.” “그러니까 다른 사람이 나 쳐다보는 것 신경 쓰지 말고, 자세히 보고 더 많이 느끼라는 거지? 그게 여행의 목적이라는 거지?” 화영이 얼굴이 밝아졌다.

“그래. 여행은 그렇게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나를 보는 게 아니라, 내가 보는 거야.”

-중요한 것은 하나면 된다-

허영호

오래전에 선화 그리는 스님을 만난 적이 있다. 그 분야에서는 꽤나 유명한 분이다. 그러나 그의 그림에서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말했다. “스님의 그림은 유명세입니다. 테크닉적인 매력도 없고, 회화적인 매력도 없고, 그 어떤 감동도 없습니다.” 물론 스님은 흥분하셨다.

지금 그리고 있다는, 공개하지 않은 그림을 보여 주기까지 하셨다. 피를 내서 혈서처럼 그렸는데 오히려 더 실망스러웠다. 그건 그림이 아니었다. 돌아오며 여자 친구와 대판 싸웠다. 예술가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나를 비난했다.

하지만 나는 스님을 험담할 마음은 없었다. 단지 내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그 솔직함을 받아 줄 수 있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만약 그림에 목숨 거는 화가였다면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죽거나, 귀 하나 잘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집에 돌아와서 보니, 바퀴의자 (wheelchair) 뒤에 매달고 다니는 가방에 보이차가 들어 있었다. 그때는 그게 귀한 줄 몰라서 맹물에 타 마셔 버렸지만, 차를 좋아하게 된 지금은 얼마나 귀한 차인 줄 안다.

스님들에게 좋은 차는 덕후들의 한정판 피규어 같은 것일 게다. 스님은 흥분하시긴 했지만, 그 보이차로 마음을 보여 주신 거라 생각한다. 단지 거짓 없는 솔직한 표현이었음을 알고 계신 거다.

인생에서 목숨 걸 만큼 중요한 것은 하나면 족하다. 그 외의 것들은 실패해도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가벼운 놀이라 생각하면 된다. 심각할 거 하나 없다. 중요한 것이 너무 많으면 피곤할 뿐이다.

인생은 그렇게 살 만큼 길지 않다. 스님에게 중요한 것은 수행일 것이다. 예술이 아니 다. 그래서 선뜻 내어 줄 수도 있고, 혹평을 받아도 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쌀벌레-

허영호

쌀벌레가 생겼다. 하얀 쌀에 거뭇거뭇 움직이는 이놈들을 어떡해야 하나? 큰 바가지에 쌀을한 끼만큼 들어서 아파트 복도로 나갔다. 3마리를 걸러내어 복도에 버렸다. 집 안에는 버리지 못하겠고, 그렇다고 아파트 밖까지 들고 나가기에는 너무 멀다.

쌀통에 쌀이 50끼는 되겠으니 한 끼에 3마리면 최소한 150마리는 살고 있다는 뜻이다. 그들 에게 쌀통은 하얀 우주일 것이다. 온 천지에 먹을 것이 널려 있고, 아무 데나 먹고, 싸고, 지어도 되는 천국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너희들의 천국을 두고만 볼 처지가 아니다. 너희들의 우주는 나의 식량이니, 차츰 너희들의 천국을 줄여 나갈 것이다. 내가 줄 수 있는 최선의 자비는 복도로 추방시키는 것이다.

복도에는 먹을 것도 없는 삭막한 우주일 테지만 어쩔 수 없다. 전기밥통에 삶겨서 내 입으로 들어가는 사형선고보다는 추방이 낫지 않느냐? 복도에도 잘 찾아보면 먹을 것이 있을지 모른다.

옆집의 쓰레기 옆에는 가끔 구더기도 보이니, 그 근처라면 살 만할지도 모르겠다. 환경이 달라져도 적응만 잘하면 되지 않겠느냐? 매정해 보여도 인생은 때로 어쩔 수 없이 내칠 수밖에 없느니라.

너희가 미워서 시련을 주는 것은 아니다. 자세히 보면 너희도 아름다운 구석이 있고, 이 자연계에서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을 맡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 자처하지만, 너무나 방만한 나머지 자연계에서 암적 존재가 되고 있다.

내 종족이 가는 곳에는 나무도 죽고, 곤충도 죽고, 동물도 죽는다. 모두를 죽이고는 뻔뻔하게 자랑스러워하는 모습이 너희에게 어떻게 비칠지 부끄러울 뿐이다.

어디에 있든 그 환경에서 필요한 존재가 되기 바란다. 나처럼 주변을 죽이고 혼자 살아 남는 짓만 하지 않으면 너희의 우주는 다시 풍요로워지지 않겠느냐?

허용호 블로그 '바타왕자의 놀이터'에서 ⓒ허용호

2018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자 허용호(블로그 bata.co.kr)

# 주요 경력

1986~1990 부산대학교 미술학과 조소 전공 중퇴

1993~2000 테라코타 작가로 활동

1997 곰두리 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1997 제1회 개인전(부산 스페이스월드 대관전)

1998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 최우수상 수상

1999 한국장애인문화제 우수상 수상 외.

2018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화 부문 당선 현 부산디지털대학교 미술치료학과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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