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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미술 지평 연 장미협 김충현 회장

장애인 화가 욕구 채우기 위해 터전 마련부터 하나씩

2011년부터 한중일 장애인미술 교류 시작 등 큰 성과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7-09-26 10:49:37
한국장애인미술협회 김충현 회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한국장애인미술협회 김충현 회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1991년 산업재해로 척수장애를 갖게 된 김충현은 1994년 산업재해와 교통사고 등으로 재해를 입고 방황하는 동료 장애인 6명과 함께 붓사랑 서우회라는 서예 모임을 만들었다.

5평 남짓한 아파트 상가 공간을 임대하고 전문서예 강사를 모셔와 서예와 사군자를 배우기 시작했다.

오전에는 병원에서 아기가 걸음마를 배운다는 마음과 정성으로 물리치료를 받았고, 오후에는 붓사랑방에 모여 붓글씨 공부에 몰두했다.

이렇게 소박하게 활동하던 그가 2006년 한국장애인미술협회를 맡으면서 한국의 장애인미술은 발전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하였다.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주관 행사에 참석중인 김충현 회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한국장애인미술협회 주관 행사에 참석중인 김충현 회장 ⓒ한국장애인미술협회
Q.협회 2대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장애인미술이 괄목할 만한 발전을 하였는데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한마디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미술협회가 창립되었지만 10년 동안 정기 전시회 외에는 행사가 없었다. 회원들은 작품 활동이 전시회를 통해 발표되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초대 회장은 청각장애인 화가 방두영 화백이었고, 나는 부회장이었는데 방두영 회장님을 도우며 정말 열심히 활동하였다.

그러다 회장을 맡게 되었다.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관리직으로 근무를 하였기 때문에 조직 관리 경험도 있고, 추진 력도 있는 편이다. 회장이 된 후 정말 미친듯이 협회 발전에 전념하였다.

Q.당시 장애인미술에 가장 시급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장애인 화가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기본적인 터전 마련이 우선이었다. 그래서 서울에 사무실 부터 구했다. 업무를 진행하려면 직원이 필요하였다.

그 후 사업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에서 실시하는 장애인문화예술사업 공모를 찾아 여기저기 응모했다. 이렇게 사무실과 직원 그리고 사업비를 하나씩 갖추며 자리를 잡아갔다.

2008년에는 장애인미술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 사단법인 허가를 받아 공신력을 확보한 후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었다.

서울시로부터 서울 잠실운동장 안에 장애인미술창작스 튜디오를 위탁받아서 15명의 장애인화가들이 입주하여 개인 작업실을 마련해 주었다.

자폐성 발달장애아동을 대상으로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하자 많은 장애인화가들이 모여들었다.

Q.어떻게 중국과 일본 장애인미술과 교류할 생각을 하였는가.

작가라면 누구나 국제 전시회를 갖고 싶어하지만 우리 형편으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런데 2009년 12월 중국 청도에 거주하는 중국인이 한중 장애인미술 교류를 제의해 왔다.

그래서 2010년 1월 중국장애인총연합회 산하 중국장애인잡지사 초청으로 북경을 방문하였다. 아내와 함께 사비로 갔다.

중국은 장애인미술을 비롯해서 장애인예술이 체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많이 놀랐었다. 돌아와서 문화부하고도 의논을 하고 이정현 의원님께도 말씀을 드렸다. 의원님께서 국회 초청행사로 하자고 하시어 한중 장애인미술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되었다.

2011년부터 일본을 포함한 한중일 장애인미술 교류가 시작되어 한국, 중국, 일본에서 순차적 으로 행사를 진행하면서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다 2016년부터는 국제장애인미술대전으로 확대해서 세계 12개국에서 500여명이 참가하는 국제적인 장애인미술대전의 첫발을 디뎠다.

Q.대전에 거주하시면서 거의 매일 서울로 출퇴근을 한 것으로 안다. 힘들지 않았는가.

서울에서 살다가 다친 후 대전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기 때문에 서울 곳곳이 휘젓고 다녔던 장소이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니려니 여간 힘들지 않았다.

협회 회장을 맡아 서울로 올라 와야 할 일이 많아졌는데 처음에는 아내가 자동차를 운전해서 이동을 했지만 횟수가 많아지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2013년부터는 KTX로 혼자서 다닌다. 매일 출근하듯이 서울과 대전을 오가기 때문에 KTX 승무원들과 아주 친해졌다. 힘은 들지만 할 일이 있다는 것이 기쁘다.

지난 시간을 돌아봤을 때 가장 보람스러운 일은 우리나라 장애인미술이 장애인화가들을 중심으로 협회를 통해 움직여지고 있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

협회가 없었더라면 지금처럼 장애인미술이 세력화되지 못했을 것이다. 협회가 생기기 전에는 소그룹 단위로 동호회 차원의 활동에 머물렀었다.

2014년에 제1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를 개최할 때 정말 감격스러웠다. 우리 장애인미술도 드디어 아트페어를 하는구나 싶어서…

아트페어를 통해 판매가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장애 인미술을 한자리에 전시해 놓고 평가받는 계기는 되었다.

한해 동안 장애인미술 상으로 지출되는 전체 상금 규모가 7천 5백만 원이다. 이 돈이 장애인 화가에게 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할 일 했다는 생각이 든다.

희망키움 장애인 미술경진대회 시상식 장면.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에이블포토로 보기 희망키움 장애인 미술경진대회 시상식 장면. ⓒ한국장애예술인협회
Q.회한도 많으리라고 본다.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안다. 작년 한해는 정말 지옥 같았다. 사업이 많을 때는 한해에 6~7개씩 했다.

그러다 보니 비정규직으로 직원을 채용하게 되는데 기존의 정직원과 사업별로 채용된 임시직 직원 사이에 알력이 생긴 것이다.

회계를 보조하던 임시직 직원이 직원들 사이에서 왕따를 당해 울고불고 난리가 났었다. 회계업무를 하면 자기 돈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트집을 잡으며 갑질을 한 모양이다.

하도 문제가 많길래 권고사직을 시켰더니 앙심을 품고 협회 회계장부를 빼돌려 문화부에 민원을 넣었다. 그래서 지난해 4월부터 문화부 감사를 받았다. 나는 당당히 설명했다.

문화부 사업은 10% 자부담이 있기 때문에 사업비가 9억원이면 9천만원을 마련해야 하는데 열악한 장애인문화예술단체에서 그 큰돈을 어떻게 마련하겠는가.

사업비를 회전시키는 방법밖에 없다고, 자부담이 범죄자를 만든다구…. 나는 산업재해로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산재보험금이 나오고 산재예방 강사로 전국을 다니며 강의를 하기 때문에 강사료만으로도 용돈이 충분하다.

돈을 벌려고 장애인문화예술사업을 하지는 않았다. 비장애인들이 생활을 위해 장애인문화예술계에서 얼쩡거리고 있는데… 당사자로서 장애인 화가들을 위해 최선을 다 했는데 음해나 하고… 정말 실망스러운 일이다.

아직도 감사 후유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맘 같아서는 당장 때려치고 싶지만 내가 회장이니 책임을 지고 해결해야 하지 않는가.

Q.장애인예술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큰데, 장애인예술 발전을 위해 가장 우선되어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장애인문화예술지원금이 공정하게 배분되어야 한다. 어느 한 단체에 쏠려 있는 것은 불합리 하다.

그리고 미술, 문학, 음악 등 장르별로 고정적인 사업을 지정해서 안정적으로 운영이 되어야 한다.

또 폐교나 군부대 등을 이용해서 장애예술인 창작촌을 설치할 필요가 있다. 그곳에서 장애예 술인들이 창작 활동을 하고 관광객들이 찾아오면 그곳이 명소가 되지 않겠는가.

Q.앞으로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지.

이제 나이도 많다. 무슨 욕심이 있겠는가. 딸은 특수교사이고 아들은 사회복지사이다. 아내도 나도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다.

이 말을 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은 장애인복지에 누구보다 관심이 많다. 앞으로도 그 마음은 식지 않을 것이다.

다치고 난 후 대학원에서 서예를 전공하며 이런저런 대회에서 수상도 많이 했다. 하지만 협회 일을 하면서는 개인적인 활동은 할 수 없었다.

이제부터는 서예가로서의 삶을 살고 싶다. 그리고 지역사회 장애인화가들을 위해 그동안의 경험을 살려 마지막으로 봉사하려고 한다.

장애인문화예술 관련 시설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어서 지방은 소외당하고 있다. 각 지역마다 장애인미술창작지원센터가 세워져야 한다.

한국장애인미술협회는 장애인미술가들의 창작활동 지원, 미술발전 기여 및 장애인미술가들의 친목도모와 정보교환을 통한 장애인미술작가들의 권익옹호를 위하여 1995년에 창립되어 2008년 문화체육관광부 사단법인 허가를 받았다.

# 주요 사업

장애인미술가 전시 및 공모/ 장애인미술가 인재양성을 위한 교육사업 장애인창작 아트페어 사업/ 한중일 장애인미술 교류사업

# 주요 연혁

2017 제26회 대한민국장애인미술대전/이음센터 2016 제3회 장애인 창작 아트페어/DDP 2016 제7회 장애인미술가의 희망축제 한마당 “희망키움”/ 대전광역시 의회 로비/서울 대학로 이음센터 전시실 2016 제1회 국제장애인미술대전/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2관 2015 제6회 한중일 장애인미술교류전/제주도 신산갤러리 2015 제1회 국제융합예술전/제주도 탐라장애인복지관 2015 제6회 장애인미술가의 희망축제 한마당/서울시립경희궁미술관 2014 장애인 미술강사 지원파견 & 미술교육 프로그램 결과 전시 ‘장애인미술가 우리들의 꿈 이곳에서 펼쳐라’/용산아트홀 (최근 3개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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