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재심> 포스터.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이 코너는 장애인에 대한 현상을 대중문화 차원에서 비평하는 난으로 A는 able로 가능성을 뜻하고 able에 Culture를 붙여 ‘가능성의 문화’로서 하나의 문화 운동으로 확산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영화 속 장애인의 모습을 통해 장애인에 관한 화두를 생각할 수 있다. 비단 장애인이 주인공이 아닐지라도 곧잘 조연에게서도 생각할 실마리를 마련해 준다.

영화 <재심>도 마찬가지다. 영화 <재심>은 약촌 오거리 사건의 재심을 다룬 작품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10여 년을 감옥에 갇혀 있던 청년 (강하늘)이 무죄를 받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가운데 그 청년의 무죄를 밝혀내기 위해 애쓰는 변호사 (정우)가 또 다른 주인공이다. 여기 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은 청년의 어머니이다. 어머니가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최근 개봉 영화 <조작된 도시>에서도 아들 (지창욱)이 살인 피의자로 누명을 쓰고 수감되자, 그 누명을 벗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억울한 누명을 썼을 경우, 최후까지 곁에서 믿어 주는 존재는 어머니라는 점을 생각하게 만든다.

영화 <재심> 자료1. ⓒ한국장애예술인협회

그런데 영화 <재심>에서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아들의 무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은 더 힘들 수 있다. 따라서 이 영화에서 어머니의 시각장애는 어머니의 어려운 상황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어머니가 시각장애인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아들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아니다. 눈여겨보고 싶은 점은 시각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일이다. 장애인에게도 일터는 경제적인 면으로나 자아 충족감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어머니가 일하는 공간은 갯벌이다. 다른 영화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설정이다. 생태학적 공간으로 생산되는 갯벌이 그런 공간으로 등장한 영화가 있어 잠깐이라도 반갑다.

어머니 (김혜숙)는 앞이 보이지 않지만 아들 (강하늘)이 살인 혐의로 감옥살이를 하고 나온 뒤 사회 적응을 잘 하기를 바란다. 그런데 난데없는 날벼락이 또 떨어졌다. 구상권이라는 낯선 통지가 왔기 때문이다.

어려운 법률 용어인 것은 차치하고 돈을 1억 7천만원이나 갚으라고 한다. 갯일을 하는 어머니가 무슨 돈이 있을까. 상황은 이러했다. 살해된 택시기사에게 근로복지공단이 보상금을 4천만원 지급했는데 10년 만에 이자가 붙어 1억 7천만원이 되었던 것.

어머니는 억울한 옥살이를 한 아들이 이제 1억 7천만원까지 갚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는 사실에 분노하고 근로복지공단을 찾아가 한바탕 항의를 한다. 상대가 누군지도 모르지만 분노는 불합리한 세상을 향해졌다.

어머니가 시각을 잃게 된 것은 당뇨병 때문이었다. 이는 누구에게도 닥칠 수 있다. 다만, 아들이 1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는 사이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 되었다. 아들의 얼굴을 전혀 볼수가 없다.

이제 아들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한 것에 더해 구상권에 분노하게 되었다. 아들이 감옥에 가기 전에는 무고함을 호소했고, 이제는 구상권이 억울하다고 호소하며 로펌의 법률 상담서비스에 신청을 한다.

우여곡절 끝에 또 다른 주인공 변호사 이준영 (정우)과 연결된다. 아들 조현우 (강하늘)는 거부감을 나타내지만, 어머니는 적극적이어서 아들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갯일을 하는 어머니가 아들의 빚 1억 7천만원을 갚을 수 없다.

또한 아들의 변호사 수임료를 낼 수도 없다. 하지만 갯일은 어머니에게 많은 돈이 아니라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어머니는 눈이 보이지 않지만, 갯벌에서 조개를 캔다. 갯벌에서 캔 조개를 칼로 잘 손질 한다. 조개를 칼로 손질하기는 눈이 안 보여도 능숙하게 할 수가 있다.

어머니에게 갯벌은 일터이고 작업장이다. 그곳에서 오랜 동안 갯일을 하면서 생활비를 벌어왔다. 비록 시각장애인이 되었지만 그 갯벌에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손끝 감각을 활용해 조개를 채취하며 마을 사람들과 함께 갯벌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일을 한다.

또한 캐온 조개를 동네 사람들과 같이 손질하여 내다 판다. 조개 까기의 달인. 생활의 달인을 떠올릴 수 있는 대목이지만 영화는 신기를 보여 주는 이벤트 느낌으로 접근 하지는 않는다. 시각장애인에게 갯벌은 자신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공간으로 등장한다.

시각장애인이 되고 그냥 집에 있는 수동적인 모습이 그려지지 않기 때문에 고무적이다. 비장애인들이 항상 갯벌의 주인공으로만 등장했는데, 시각장애인들의 일터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알려 주고 있다.

무분별하게 매립되는 갯벌은 그래서도 더 소중하다. 노후에 장애가 생겨도 평생 갯벌에서 일을 했던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일터이면서 삶의 역사이다. 그러나 후천적 시각장애인이 된 어머니에게 항상 갯벌이 편한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어느날 아들은 어머니가 집에서 갯벌을 나가는 길목에서 갯벌 안까지 줄을 이어 놓는다. 어머니가 갯벌에 나갈 때 이동하기 좋게 줄을 이어 놓으면 어머니에게는 참 편한 일이다. 줄을 보고 어머니가 좋아하면서 아들을 칭찬하자, 아들은 잠깐 환하게 웃는다.

그러자, 어머니가 “너 지금 방금 웃었냐?”라고 환하게 말한다. 살인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아들은 그동안 웃음 한 번 보이기 힘들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아들은 자신의 억울한 누명을 벗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리는 듯 하니 어머니가 다니기 좋게 줄을 매어 놓을 생각도 한 것이다.

처음에 아들은 재심에 나서려 하지 않지만, 이준영 변호사가 “너는 그렇게 산다 해도 어머니가 너를 그렇게 바라보고 어떻게 사냐?”고 따져 묻게 되면서 마음을 바꾼다.

영화 <재심> 자료2. ⓒ한국장애예술인협회

어머니는 눈이 안 보여도 갯벌에서 일을 했고 아들은 재심의 길이 열리자 어머니를 위해 갯벌에 갈 때 잡고 갈 줄을 매었다. 흔히 희망의 빛을 볼 때 누군가에 희망의 빛이 되고자 한다.

앞이 안 보인 어머니 때문에 아들은 재심에 성실히 임하고 마침내 결과는 해피엔딩. 이 영화에서 눈이 보이고 안 보이고는 중요치 않다. 다른 시각장애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이 안 보이게 된 어머니, 그리고 살인자 누명을 쓰고 복역하고 나와서도 구상권을 청구받은 아들. 누명을 벗겨 주려 고군분투 하는 변호사, 그리고 그들을 집요하게 방해하는 이들.

이준영 변호사는 말한다. 우리가 너를 그렇게 죄인으로 만들었다고. 자신부터 그렇게 한 셈이라고. 어린 소년이 살인죄를 뒤집어쓰고 복역을 하고, 다시 그 청년을 이용하려했던 행위에 대한 반성이자 자책이었다.

우리는 모두 눈이 안 보인다. 돈이라는 허울에 씌여 스스로 세상을 버렸다. 갯벌처럼 엄청난 돈을 벌어 주지 않는다 해도 영원한 자연의 밥줄을 우리가 큰돈을 바라고 매립하듯 말이다. 정작 갯벌의 진정한 가치를 보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장애인들에게 일터가 될 수 있는 갯벌을 매립하지 말고 살려야 한다. 갯벌이 장애인에게 갖는 의미와 가치를 이 영화를 통해 한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 동아방송예술대학교 초빙교수, 카이스트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 제40회 방송대상 심사위원, 저서 『비욘드 블랙』, 『세종, 소통의 리더십』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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