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륙도를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과 함께 다시 한 번 가 보려니까 마땅치가 않았다. 지인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까 C 씨가 자기가 가겠다고 했다.

“휠체어를 빌릴 수 있다면 제 차로 같이 가시면 됩니다.”

해질녁의 스카이워크. ⓒ이복남

지체 2급 C 씨는 의족을 하면 천천히는 걸을 수 있어 휠체어를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게다가 요즘은 대부분의 공공기관에서는 휠체어나 유모차를 비치하고 있다. 남구청에 문의해보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오륙도 해파랑길 관광안내소’에 비치 된 휠체어는 없었다. 결국 C 씨는 오륙도에 같이 가지 못했다.

“그러나 스카이워크에는 휠체어가 있습니다.”

스카이워크에는 전동휠체어나 전동스쿠터가 들어가기는 곤란하므로 수동휠체어가 비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가파른 길을 수동휠체어가 오를 수 있을까.

두리발에서 내리는 제오종 씨. ⓒ이복남

그런데 제오종 씨도 오륙도에가 보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두리발을 불러서 가겠습니다.”

제오종 씨는 지체장애 1급인데 전동스쿠터를 이용한다.

그는 서면에 있는 회사에서 두리발(부산 콜택시)을 불러서 가고, 필자는 초량 사무실에서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부산역에서 27번 버스가 오륙도까지 간다.

요즘은 두리발이 빨리 온다고 했지만 그날은 대기자가 많은 모양이었다. 필자가 먼저 도착해 오륙도에서 혼자 30여분을 기다려야 했다.

제오종씨를 기다리며 서성이던 중 낯선 이름의 지적장애인시설 봉고차를 보았다. 운전기사 쪽의 차문을 두드렸다. 울산에서 왔단다. 편의시설을 보러 왔다고 했다. 지적장애인은 별 문제없으니까 잘 보고 간다고 했다. 안녕히 가세요.

드디어 제오종 씨가 도착했다. 날씨는 쾌청했으나 해질녁의 오륙도에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제오종 씨는 제일 먼저 ‘오륙도 해파랑길 관광안내소’로 들어가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았다.

안내소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제오종 씨. ⓒ이복남

“이게 다 답니까?”

“오륙도는 저 쪽에 있어요.”

그러나 관광안내소에서 아래층으로 내려가는 길은 없다. 다시 나오려니까, 안내소에는 두 개의 문이 연속으로 있었고, 문은 두 쪽의 미닫이문으로 되어 있었는데 두 개 다 한 쪽문은 잠겨 있었다. 처음 들어갈 때는 한쪽 문으로 겨우 들어갔는데 안내소 직원이 알차 채고 두 문 다 나머지 한쪽 문을 열어 주어서 쉽게 나올 수는 있었다.

저번에 왔을 때 유모차도 어렵게 내려오던 경사로였는데 전동스쿠터는 그런대로 잘 내려왔다. 이윽고 ‘오륙도 스카이워크’로 가는 길로 들어섰다. 전동스쿠터는 별 어려움이 없었지만 스카이워크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할 뿐 더러, 바닥이 비싼(?) 조각돌이었다.

평평한 길이 아니라 울퉁불퉁한 조각 돌길이라면 기울기는 고사하고 평지라도 수동휠체어도 힘이 들고 다리가 불편한 2~6급 장애인은 정말 어렵다. 그리고 보행에 지장에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면 와 볼 수는 있겠지만 스카이워크 가는 길에 점자블록은 없었다.

“이런 경사라면 수동휠체어는 누가 밀어 준다고 해도 어렵겠는데요.”

제오종 씨는 전동스쿠터를 타고 가면서도 어이없어 했고, 필자는 걸어서 전동스쿠터를 뒤따라 가느라고 허덕허덕 했다.

배리어프리의 기울기. ⓒ한양하이텍 블로그

「장애인ㆍ노인ㆍ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 (약칭: 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 [별표 1] 편의시설의 구조·재질등에 관한 세부기준(제2조제1항관련)

1. 장애인 등의 통행이 가능한 접근로

가. 유효폭 및 활동공간

(1) 휠체어사용자가 통행할 수 있도록 접근로의 유효폭은 1.2미터 이상으로 하여야 한다.

(2) 휠체어사용자가 다른 휠체어 또는 유모차 등과 교행할 수 있도록 50미터마다 1.5미터×1.5미터 이상의 교행구역을 설치할 수 있다.

(3) 경사진 접근로가 연속될 경우에는 휠체어사용자가 휴식할 수 있도록 30미터마다 1.5미터×1.5미터 이상의 수평면으로 된 참을 설치할 수 있다.

나. 기울기 등

(1) 접근로의 기울기는 18분의 1이하로 하여야 한다. 다만, 지형상 곤란한 경우에는 12분의 1까지 완화할 수 있다.

(2) 대지 내를 연결하는 주접근로에 단차가 있을 경우 그 높이 차이는 2센티미터 이하로 하여야 한다.

스카이워크로 올라가는 전동스쿠터. ⓒ이복남

배리어프리에서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울기는 12분의 1이다. 그런데 오륙도 스카이워크로 가는 길의 기울기는 얼마나 될까.

드디어 스카이워크에 도착했다. 휠체어를 좀 빌리자고 했더니, 하필 고장이란다. 전동휠체어의 무게는 135kg인데 사람 무게까지 합치면 200kg가 넘어서니 그냥 들어가기는 곤란하다고 했다.

제오종 씨가 굳이 그럴 필요까지야 없다면서 그냥 돌아 나오자 스카이워크에 근무하는 D 씨는 아무래도 어렵겠다며 바깥까지 따라 나와서 연신 미안해했다.

필자가, 남구청에 전화를 했었고 한 번 보러 온 것이니 괜찮다고 했으나 그래도 D 씨는 죄스럽다고 했다.

스카이워크로 가는 길은 Z자로 길을 새로 내든지 아니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될 것 같다고 했더니 D 씨는 돈이 없다며 스카이워크에 천 원씩이라도 입장료를 받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면 그 돈으로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제오종 씨와 스카이워크를 내려와서 두리발을 기다리는 동안 근처 찻집에서 커피를 마셨다.

“부산 온지 20년이 넘었는데 오륙도에는 처음 와 봤습니다. 그동안 텔레비전이나 신문에서 보았을 때는 엄청 신비스럽게 보였는데 와 보니 그냥 바위섬이네요.”

오륙도에서 시작되는 해파랑길. ⓒ이복남

제오종 씨는 허무하다고 했다. 그는 오륙도에 과연 무슨 기대를 했던 것일까.

“해파랑길에 경사가 심하다는 것은 원장님 말씀으로 알았지만 이렇게 심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대화를 나누기도 어려울 만큼 시끄러운 커피숍 외에는 아무 볼거리도 없고 너무 삭막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뭔가 볼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단다. 배리어프리에서 장애인의 접근로 기준은 12분의 1이다. 이 기준은 수동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스스로 혼자서 움직일 수 있는 기울기다.

대부분의 장애인은 되도록이면 남의 도움 없이 혼자 스스로 하기를 원한다. 불가항력일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오륙도에서는 ‘관광’ 조차도 장애인이 혼자서 하기는 어려울 거 같다.

돌아오는 길에 제오종 씨는 저 멀리 해안도로를 바라보았다.

“저 길을 한 번 걸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지금은 희망사항에 불과한 꿈같은 길이지만…….

해파랑길이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길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뜻으로 부산광역시 오륙도해맞이공원을 시작으로 강원도 고성 통일전망대에 이르는 길인데 총 길이는 770km다. 2010년 9월 15일에 문화체육관광부가 동해안 탐방로 이름으로 해파랑길을 선정하였고, 2011년부터 '한국의 길과 문화'에서 해파랑길의 운영 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나무계단으로 이어진 해파랑길. ⓒ이복남

봉사자들의 힘을 빌린다면 장애인이라고 해서 해파랑길을 못 갈 것도 없겠지만 해파랑길을 시작하는 오륙도에서부터 급경사와 구불구불한 계단으로 이어져 있다. 그런 길은 오륙도에서 통일전망대까지 이어져 있으리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해파랑길 770km를 완주 한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어떤 장애인이 무모한 도전을 했을까 싶어서 해파랑길을 관리 운영하는 ‘한국의 길과 문학’에 전화를 해 보았다.

해파랑길을 별도로 조성한 것은 아니고 기존에 있던 길을 하나로 연결해 놓은 것인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이 전 코스를 다닐 수 있는 길은 아직 없단다. 그래서 담당자도 죄송하다고 했다. 그 대신 구간구간 평지 길은 있으니까 평지 코스를 이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해파랑길은 동해안을 걷는 길인데 부산에서 고성까지 총 10개 구간 50개 코스인데 교통편이나 숙박 등 걷기에 필요한 지도나 자료 주의사항 등은 홈페이지(http://haeparang.org)에 자세하게 나와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참고 하시기를.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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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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