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작년 11월 12일 시작한 50부짜리 주말드라마인데 지난 1월 1일 일요일에 15회를 방영했다.

지금까지의 줄거리를 보면 황미옥(나문희 분)은 친정아버지가 물려주신 강남땅 덕분에 방배동에 3층 빌라를 짓고 본인은 3층에 산다. 그리고 자식들 키우느라 노후대비를 못한 아들 한형섭(김창완 분)과 며느리 문정애(김혜옥 분)에게 1층을 유산으로 넘겨주면서 2층을 세놓아 생활비에 보태라고 한다.

한성훈에게 술을 따라주는 이현우. ⓒMBC

한형섭의 큰아들 한성훈(이승준 분)은 모 일간지 정치부 기자였으나 회사사정이 어려워져서 해직을 당하고, 사기꾼 처남의 감언이설에 속아 집을 담보로 사업에 투자했다가 식구들은 길거리에 나앉게 된다.

보다 못한 아버지 한형섭은 큰아들 한성훈에게 2층으로 들어오라고 한다. 한성훈은 이삿짐을 실은 트럭에 아내 서혜주(김선영 분)와 아들딸을 태우고 할머니집 2층으로 이사를 오고 있는데…….

한형섭의 둘째아들로 변호사 출신의 시사평론가 한성식(황동주 분)이 둘째 며느리 강희숙(신동미 분)과 전교 1~2등 하는 잘난 아들을 앞세우고 빌라 2층을 먼저 차지해 버린다. 2층은 동생 가족이 차지를 했으므로 큰 아들 한성훈은 하는 수 없이 지하로 내려간다.

한형섭이 사는 빌라 맞은편에 이현우(김재원 분)가 이사를 온다. 이현우는 세계적인 투자회사 골든스트리트의 대표인데 23년 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방배동 신축빌라 공사장의 현장소장으로 살고 있다.

한성훈의 추락사고. ⓒMBC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아직 초반이라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이현우는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 온 것 같다. 그래서 이현우는 밤마다 앞집 즉 한형섭의 빌라를 노려보는데 아마도 한형섭 가족이 이현우의 원수 집안인 모양이다.

한형섭의 큰아들 한성훈은 일자리를 찾아 헤매다가 이현우에게 발탁되어 그의 신축빌라 공사장에서 일을 하게 된다. 전직 신문기자가 공사장에서 등짐을 지는 신세라니……. 자신의 신세가 처량해서인지 공사장 구석에서 몰래 소주를 마시는데 현장 소장 이현우가 그 모습을 보게 된다.

이현우는 “일이 힘들어서 간혹 술을 마시기도 하는데 그래도 과음은 안 된다. 한잔 만 더 하시라”며 종이컵에 직접 술을 따라 주기도 한다. 그리고 한성훈은 다시 등짐을 지고 3층 발판을 지나가는데 술을 마신 탓인지 휘청거렸다. 그 때 마주 오는 사람이 한성훈을 어깨로 밀어 버렸고 한성훈은 아래로 추락한다.

한성훈의 추락소식에 망연자실한 가족들. ⓒMBC

한성훈의 사고 소식을 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내 서혜주는 병원으로 달려간다. 의사는 한성훈이 뇌출혈과 척추골절의 위험이 있다며 하반신마비까지 올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에 아버지는 망연자실했고 어머니는 충격으로 쓰러진다.

단장(斷腸)이란 ‘몹시 슬퍼서 창자가 끊어지는 듯함.’이라고 한다. 한성훈의 사고는 이현우의 계획된 범죄였다. 이현우는 삼촌이라 부르는 사람에게 얘기했다. “단장의 고통이란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가 창자가 끊어지고 너무 울어서 눈이 먼다고 한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다치는 것 보다 더 한 고통이 어디 있겠느냐” 이현우는 한성훈 부모에게 단장의 고통을 주고자 성훈에게 술을 먹여 3층에서 떨어뜨리게 했던 것이다.

물론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는 현실이 아니고 드라마다. 아무리 드라마라고 하지만 복수를 위해 일부러 산재사고를 일으키다니……. 3층에서 떨어져도 죽을 수도 있고 경추를 다칠 경우 전신마비가 올 수도 있다. 필자가 아는 한 장애인은 2층에서 떨어졌는데 척추를 다쳐 1급 장애인이 되어 휠체어를 이용하고 있다.

2015년 말 산재보험 적용사업장수는 2,367,186개소이고 근로자수는 1,800만 명 정도라고 한다. 이 가운데 재해자수는 90,129명이다. 사망자수는 1,810명이고, 업무상 질병자수는 7,919명이다. 사망자수를 보면 1,810명/365일은 4.96명으로 약 5명이다. 아침에 가족들과 즐겁게 인사하고 출근했다가 5명 정도는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는 얘기다.

산업재해 현황. ⓒ통계청

필자는 오랫동안 장애인관련 일을 한 사람이다. 산업재해로 사망한 근로자가 하루 5명 정도라고 해도 미안한 얘기지만 명복을 빌 뿐이고, 우리의 대상은 살아있는 사람 즉 부상자들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다쳤음에도 산재적용을 잘 안 해 준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필자가 이 글을 준비하면서 인터넷에 찾아보니 ‘산재 은폐’라는 것이 많았다. 근로자가 일을 하다 사고가 나서 다치거나 하면 일단 사업주는 산재가 아니라 공상으로 처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산업재해는 산업재해보험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공상으로 처리를 하게 되면 근로자 개인보험에서 비용을 지불하고 나중에 사업주가 위로금 등의 형태로 사례를 하는 것이다.

산재나 공상이나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이는데도 왜 사업주는 산재처리를 하지 않으려는 것일까.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산재처리를 하게하면 산재보험요율이 인상되고, 작업환경에 대한 노동부의 행정감독이 강화된다. 그리고 산재다발업체로 인식되면 하청은 물론이고 금융권이나 세금 등 여러 부문에서 불리하다는 것이다.

삼촌에게 단장의 고통을 얘기하는 이현우. ⓒMBC

산업안전보건법(시행 2016.10.28.) 제10조 2항에 의하면 ‘②사업주는 제1항에 따라 기록한 산업재해 중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산업재해에 대하여는 그 발생 개요·원인 및 보고 시기, 재발방지 계획 등을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고용노동부장관에게 보고하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제10조제2항에 따른 보고를 하지 아니하거나 거짓으로 보고한 자’는 1천만 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산재발생률은 OECD 평균에도 못 치지는 반면 사망자는 OECD 국가 중 1위라고 한다. 이렇게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는 것은 ‘죽기 전에는 산재를 숨겨라’같은 믿기 어려운 소문 때문인 것 같은데 PQ(Prequalification)제도도 한몫을 하는 것 같다. PQ제도는 부실공사를 막기 위해 입찰 전 미리 공사수행능력 등을 심사하여 일정수준 이상의 능력을 갖춘 경우 입찰 참가 자격을 부여하는 점수제도이다. 산재요율을 낮추고 PQ점수를 잘 받기 위해 산재를 은폐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부 등 관계기관에서는 산재 은폐를 줄이려는 방법을 다각도로 연구하고 있다는데 그래도 산재 은폐는 여전하다고 한다.

오른쪽 가슴에 ‘무재해’가 선명한 현장소장. ⓒMBC

기업주에게는 산재요율이 높아지고 PQ점수는 낮아지니 기업 입장에서는 산재를 은폐하려 한다지만 근로자에게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첫째는 산재를 은폐하다 보니 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처음 사고가 나면 제일먼저 119에 연락을 하게 되는데 이를 은폐하려다보니 119가 와도 산재가 아니라고 돌려보내고, 산재를 숨기려다 보니 기업주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야 하므로 시간이 지체되어 사망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재발의 경우 산재는 인정이 되지만 공상은 인정이 안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근로자가 산재인정을 받으려면 필히 119를 이용해야 한다. 그리고 출퇴근하는 사람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건설노동자 등은 회사이름이 나오는 사진이나 기타 증명서를 준비하라고 한다. 그래야 기록이 남게 되므로.

산재 신청방법은 최초요양신청서를 작성하고 그 요양신청서에 치료 받고 있는 병원 주치의에게 소견을 받은 다음 회사의 날인을 받아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하면 된다. 가끔 사업주가 날인을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는데 만약 날인을 거부한다면 거부한대로 그대로 써서 제출하면 된다.

‘아버님 제가 모실게요’에서는 신축빌라 공사장에서 한성훈이 추락하는 사고가 일어났으니 당연히 산재사고다. 현장소장이자 사업주인 이현우가 입고 있는 조끼에는 ‘무재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이현우가 한성훈의 추락사고를 산재처리를 했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아무리 드라마라 해도 산업재해를 일부러 일으키는 일은 정말 없었으면 좋겠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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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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