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희 화백. ⓒ김형희

왈가닥 소녀가 무용학과 대학생으로

나는 귀여운 막내딸로 태어났다. 위로 남자아이가 둘이어서 부모님은 여자아이의 탄생을 너무나도 기뻐하셨다. 우리 동네에 개척교회가 있었는데 그 교회에 우리 동네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가서 교회 목사님께서 좋아하셨다.

교회에 행사가 있을 때면 늘 나를 무대에 세우셨다. 나는 찬양과 무용을 도맡아 하면서 예술적인 끼를 키우게 되었던 것 같다. 이렇듯 나는 아주 활동적이고 적극적이어서 눈에 띄는 아이였다.

한마디로 왈가닥 소녀였던 것이다. 나는 무용 전공으로 예술고등학교에 진학하였다. 그것은 나의 길이 무용으로 정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도 무용학과로 정하고 3년 동안 8시간 이상 무용 연습과 함께 입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결과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에 합격을 했다. 내 꿈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는 기쁨에 가슴이 벅찼다. 키 174cm, 몸무게 50kg, 무용으로 다져진 몸매라서 모델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모델 언니 덕분에 나는 방학을 하면 아르바이트로 모델 활동도 하였다.

모델이라는 직업도 정말 매력적이었다. 화려한 조명 아래 무대 위에서 멋진 옷들을 입고 많은 관객 앞에서 런웨이를 워킹하며 포즈를 취한다는 것, 정말 순간적인 짜릿한 즐거움이었다.

어렵게 공부한 대학원 졸업식에서. ⓒ김형희

내 인생의 천둥

1992년 3월, 대학교 4학년 졸업반이었다. 현대무용이 휴강이 되어 집에 있는데 그동안 연락이 끊겼던 여고 동창생이 만나자는 전화를 했다. 나가고 싶지 않았지만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청바지에 가벼운 점퍼를 입고 집을 나섰다.

친구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그 친구의 남자친구가 와서 나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는 굳이 나를 데려다 주겠다며 팔을 잡아 끌어 차에 태웠다. 친구는 운전면허를 취득한지 1달밖에 안 된 초보운전자라서 왠지 불안하였다.

그 순간 친구의 차가 중앙분리대를 들이박았다. 교통사고였다. 앞좌석에 탔던 두 사람은 걸어서 이동할 정도의 경상이었지만 뒷좌석에 탔던 나는 짐짝처럼 들려서 택시에 태워져 병원으로 향했다. 안양 집과 가까운 작은 병원에서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그곳에서 다시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이송을 하느라고 거리에서 8시 간을 허비하며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동안 내 목뼈 속의 경추신경은 한 가닥씩 끊겨 나가고 있었다.

그 결과 받은 내 진단은 경추 5, 6번 손상이었다. 그때부터 나의 몸은 로보트처럼 보수공사에 들어갔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다고 나와 같은 환자들이 다 맞는다는 주사인데 나에게만 부작 용이 일어났다. 스티븐 존슨이라는 주사 부작용은 치사율이 60%로 나는 아주 위험한 상태였 다. 피부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물집이 생기면서 꼭 화상을 입은 것처럼 피부에 물집이 생겨 손톱, 발톱이 모두 빠지고 피부가 벗겨졌다. 이렇게 내 인생에는 계속 천둥이 치고 있었다.

그림을 시작하고

금방 돌아올 생각으로 아무런 부담 없이 총총 뛰어서 나갔던 그 길을 1년이 지난 후 아버지가 뒤에서 밀어주는 휠체어에 의지해 돌아왔다. 그때 내 나이는 24살이었지만 몇 십 년이 지난 것 같았다. 너무나 많은 고통을 겪어서 그런지 늙어 버린 기분이었다. 아니 두 다리가 아닌 휠체어로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이미 내 청춘을 앗아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형희야, 그림을 그려 보면 어떨까?” 오빠가 중도 장애인들이 재활 치료를 위해 스포츠 활동을 하거나 그림을 그린다는 얘기를 듣고 나한테 권하였다. 오빠 생각은 팔 운동을 무작정하는 것보다는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다 보면 팔운동도 되고 정서에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입에 붓을 물고 그림을 그리는 구필화가를 권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즈음 그림을 하는 장애인을 알게 되어서 그림을 함께하자는 권유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림에는 소질도 관심도 없었다. 초등학교 미술시간 외에는 그림을 그려 본 적도 없었고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감상하는 취미도 없었다. 그저 팔의 힘을 키우기 위해 운동 삼아 그림을 시작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붓을 손가락에 붕대로 묶어서 그려야 했고 팔에 힘이 없어서 오랫동안 팔을 들고 그리지 못했지만 그림에 빠져들면서 팔이 아픈 줄도 모르고 작업에 몰두하였다. 2002년 내 생애 처음으로 첫 번째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사지 마비란 너무나 크고 무거운 장애를 갖게 된 후 그림을 통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다. 나는 그림이란 또 다른 나의 세계를 발견하였고 화가로 행복한 작업을 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다.

첫 전시회는 성공적이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어 화가로서의 출발을 축하해 주셨다. 사고로 장애인이 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김형희가 아니라 사고로 생긴 장애 때문에 무용에서 그림으로 인생길을 바꾼 화가 김형희가 된 것이다. 첫 번째 개인전을 마치고 나는 큰 성취감과 기쁨을 맛보았다. 무엇보다 도전 의욕과 자신감이 생기면서 또 다른 꿈을 꾸게 된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나는 장애인화가인가

나는 ‘장애인이 그린 그림이야.’라는 소리가 무지 듣기 싫었다. 입으로, 발로, 손목에 붓을 묶어서 그림을 그리는 방법에서 다소 차이가 있을 뿐인데 그것이 그림을 평가하는데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상적으로 그리지 못해서 그림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힘들게 그렸기 때문에 동정과 감동을 해야 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장애인화가도 작가이며 예술을 하는 예술인이다. 단지 육체적으로 불편할 뿐이다.

그림 자체로만 냉정하게 평가받고 싶었다. 장애로 인한 불편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그 문제를 해결하고 그림을 그린다면 장애인화가라고 굳이 구분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서 미술을 이용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기로 하였다. 그래서 찾은 것이 임상미술치료 였다. 2007년 임상미술치료사 2급자격증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 CHA의과학대학교 통합의학대학원에 입학하여 1,000시간이 넘는 임상실습과 졸업시험을 통과하고 총 평균 점수 4.32(4.5만점)의 우수한 성적으로 2년 만에 조기 졸업을 하게 되었다.

내 석사 논문은 「임상미술치료가 척수손상 환자의 우울감 감소와 재활 동기 향상에 미치는 영향」으로 척수손상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한 세계 최초 임상미술치료 분야 졸업논문이다.

김형희 작 <꿈의 여행2>. ⓒ김형희

세상과 소통하는 예술

2007년 비영리민간단체로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를 결성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장애 인문화예술지원 사업공모에 응모하여 사업비를 마련하였다.

처음에는 미술수업과 미술치료의 교육사업을 실시하였지만 노래와 춤 그리고 그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연으로 종합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 활동의 목적은 소통이다. 예술로 자신과 소통하고 예술로 세상과 소통하는 것이다.

“의인아, 너 아빠처럼 뚱보 되고 싶어?” 벌써 11살이 된 딸 의인이는 태어날 때는 2kg도 안 되는 미숙아였지만 너무 먹는 걸 좋아해서 살이 쪄서 걱정이다. 남편과 의인이는 붕어빵처럼 닮았다. “엄마도 뚱보다 뭐.” 그 말에 우리 엄마가 손녀에게 나무라듯 말씀하신다.

“야, 너네 엄마는 미스코리아처럼 날씬하고 예뻤어.” “할머니 뻥치시네.” 맞다. 뻥이다. 나는 이제 그 시절을 떠올리지 않는다. 나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소중하고, 앞으로 어떻게 내 꿈을 펼치며, 내가 어떻게 내 인생을 후회 없이 도전해 갈 것인지만 생각한다.

김형희 화백은 2003년 5월 10일, 양가 부모님의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올렸고, 2006년 7월 20일 딸 의인이가 탄생하여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 주요 경력

서양화가 / 한국장애인표현예술연대 대표 / 장애인 문화예술 행사 기획자(8개 프로젝트 진행) 임상미술치료사(미술치료강의 14차례) / (사)한국척수장애인 문화예술위원회 시각예술 분과위원장 (사)한국장애인미술협회 예술강사 / 저서 『캔버스에서 춤추는 아름다운 여자, 김형희』

# 전시 경력

제1회 개인전 “움직임의 자유찾기” 전 (2002-경인미술관) 제2회 개인전 “꿈꾸는 여인 이야기” 전 (2008-경인미술관) 제3회 개인전 “기억 속, 비밀이야기” 전 (2016-경인미술관) 세상의 하나뿐인 전시 김형희 특별초대전‘ 삶을 드로잉 하다’ (2016-이음갤러리) 운보미술관 특별기획초대전 (소리없는 메아리전) 서대문문화회관 갤러리 2人 초대전(그림으로 읽는 여인 이야기) 展 밀레니엄 국제 아트 展 전국 누드크로키 展 성균관대 무용학과 동문 발표회 초대 展 경향하우징 아트페스티벌 대한민국 현대여성 미술대전 展 아름다운 몸짓 영혼5인 展 국제 누드드로잉 아트페어 展 한국여성100년 展 그녀들의 색깔 이야기 展 나를 찾아 떠나는 그림 여행 展 국제여성미술제 초대 展 장애인창작아트페어 아시아 장애인 미술가‘ 희망 빛’을 그리다 展 국제융합예술 展 JW ART AWARD 展 등 초대전 200여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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