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니 심장이 터질지라. 이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는가?”

이 이야기가 어디에 나오는 말인 줄 대부분의 사람들은 짐작할 것이다. 바로 홍길동전에 나오는 홍길동의 이야기다.

조선시대에는 이처럼 아버지가 있어도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고, 형이 있어도 형이라 부르지 못했다. 호부호형(呼父呼兄)을 못했던 이들은 천민으로 푸대접 받던 서얼이었다.

서얼(庶孼)이란 첩의 자손이다. 서자(庶子)는 양인 첩의 자손이고 얼자(孼子)는 천인 첩의 자손인데 조선시대에는 과거 시험에 응시 할 수도 없었다.

“옥중화” 홈페이지. ⓒMBC

홍길동은 서얼의 서러움을 안고 집을 나가 도적이 되었다. 조선시대에 3대 도적이 있었으니 연산군(10대) 때의 홍길동, 명종(13대) 때의 임꺽정, 그리고 숙종(19대) 때의 장길산이다. 이들은 모두 다 실존인물로 도적의 우두머리였다.

임꺽정을 대도(大盜)라고도 했는데 사실 이 시대의 진정한 대도는 윤원형과 정난정 일지도 모른다. 윤원형과 정난정이 자신만의 이익을 추구하여 매관매직과 가렴주구를 일삼으니 위정자에 대한 백성들의 저항과 부르짖음이 의적(義賊)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난 것이리라.

MBC 주말 드라마 “옥중화”는 천재 소녀 옥녀(진세연 분)가 주인공이다. 옥에서 태어났다고 옥녀라고 불렀는데 전옥서(典獄署) 서리 지천득(정은표 분)이 죽어가는 어미에게서 받아 기른 아이다.

옥녀는 전옥서 죄수 가운데 이지함과 전우치에게 학문과 지혜를 배우고 체탐인 박태수(전광렬 분)에게 무술을 배웠다. 체탐인(體探人)이란 조선시대 첩보원이다. 옥녀는 포도청의 여형사 같은 다모(茶母)를 원했으나 체탐인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수행하다가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했다.

옥녀의 삶은 출생부터 첩첩산중인데 어머니의 행적을 찾아가는 길에 나름대로의 정의와 선을 위해서 싸운다. 그런 옥녀 곁에는 세 사람의 남자가 있다. 어린 시절부터 함께 지낸 친구 같은 윤태원(고수 분)와 체탐인 박태수의 손자 성지헌(최태준 분), 그리고 미행(微行) 나온 왕을 왕인 줄도 모른 채 만나는 명종(서하준 분)이다.

옥녀와 세 남자, 성지헌과 윤태원 그리고 명종. ⓒMBC

그러나 옥녀가 하는 일은 사사건건 자신들의 일에 방해가 되므로 윤원형(정준호 분)과 정난정(박주미 분) 그리고 한 때는 박태수 때문에 옥녀의 목숨을 구해 주기도 했던 문정왕후(김미숙 분)까지 옥녀와 대립각을 세운다.

“옥중화”에서 이 같은 옥녀의 이야기는 픽션이지만, 이지함과 전우치 그리고 명종과 문정왕후, 윤원형과 정난정 등은 실존인물이다.

정난정은 기녀였으나 윤원형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되었다. “옥중화”에서는 정난정이 윤원형의 정실부인을 독살 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또 다른 첩도 죽게 만들었는데 또 다른 첩의 아들이 바로 윤태원이다.

아무튼 윤원형의 부인이 죽자 정난정은 정실부인이 되었고 윤원형의 누나인 문정왕후의 환심을 사서 정경부인이 되었다. 정경부인이 된 정난정은 상권을 장악하여 권세와 부를 다 가지게 되었다.

문정왕후는 11대 중종의 셋째 윤비(尹妃)인데 중종이 죽고 12대 인종도 일찍 죽었다. 13대 명종이 문정왕후의 아들이다. 명종이 어린나이에 즉위하자 문정왕후가 수렴청정을 하면서 실권을 휘둘렀다.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유교사회인 남존여비에 물든 성리학자들에게는 아니꼬운 존재였으나 당시로서는 그들이 실세 중의 실세였기에 어찌 할 수가 없었다. 더구나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을사사화(乙巳士禍) 등으로 그들의 정적들도 다 처단했었다. 그로인해 사림파(士林派)는 큰 타격을 입었다.

그리고 정난정은 윤원형과 문정왕후를 움직여 서얼의 과거 기회를 보장하는 <서얼허통법(庶孼許通法)>을 통과시켰다. 물론 부분이었지만 <서얼허통법>은 정난정의 오랜 꿈이었으리라.

정난정은 부총관을 지낸 정윤겸의 딸이지만 서얼이었다. 어머니는 관비(官婢)였던 것이다. 정난정은 어린 시절부터 미천한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기생이 되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다가 문정왕후의 동생 윤원형에게 접근하여 그의 첩이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반상(班常)의 구별이 엄격해서 양반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과거, 음서, 천거 등을 통하여 국가의 고위 관직을 독점하였다. 또한 남존여비의 유교사회라는 게 남자 양반이면 무슨 짓이든지 허용이 되었는데 대표적인 것이 축첩이었다.

그런데 양반 남자들은 첩을 둘 수는 있었지만 첩의 자손만은 서얼이라 하여 그들의 신분을 엄격하게 제한하였다. 어쩌면 유교의 명분론과 질서유지를 위한 적서(嫡庶)의 구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서얼은 홍길동전에서 보듯이 호부호형도 하지 못했고 마음대로 과거를 볼 수도 없었다.

조선시대의 양반은 일종의 특권층이었으므로 양반은 상민이나 천민을 이유 없이 죄를 씌워 죽일 수도 있었다. 정난정의 어린 시절 그의 어미도 도둑의 누명을 쓰고 옥사했다고 한다. 어미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어린 정난정은 얼마나 이를 갈았을까.

문정왕후가 정난정에게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물었을 때 정난정은 서얼도 과거를 볼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더구나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유교사회에서 불교를 신봉하고 보우스님을 존경하여 봉은사를 증축하기도 했다. 덕분에 이 때 등장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은 임진왜란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정난정이 권세와 부를 축적하자 사람들은 더욱 더 금은보화를 싸들고 정난정에게 몰려들었다. 모두가 정난정의 권세로 더 나은 곳을 바라보는 매관매직의 양반들이었다. 이를 즈음 정난정이 <서얼허통법>을 통과시켜 서얼들에게도 과거를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던 것이다. 왕후장상(王侯將相)에 씨가 없듯이 <서얼허통법>도 인간은 평등하다는 불교의 이념을 그대로 담고 있다.

서얼허통법. ⓒ명종실록

채널A 어메이징 스토리 천개의 비밀 149회에 ‘조선을 뒤흔든 악녀 정난정의 두 얼굴’이라는 내용이 방영되었다. 정난정의 <서얼허통법>이 통과되고 정난정은 하인이나 노비 등 사회적 약자들의 대변자가 되었다. 그래서 문정왕후가 죽자 정난정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던 사림파에서 정난정을 체포하러 왔을 때 하인이나 노비 등 천민들이 관군의 앞을 가로막아 정난정을 보호했다는 일화도 있다.

“옥중화“는 50부 예정으로 4월 30일부터 방영되었다. 남은 회차 동안 옥녀는 윤원형과 정난정 때문에 더욱 고초를 겪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어미의 행적을 찾고 옥녀의 선이 승리 할 것이다.

역사에서는 문정왕후가 죽자 정난정은 다시 천민으로 강등되어 자결하였고 <서얼허통법>은 폐지되었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서얼허통을 주장하였으나 사림파의 반대로 실현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무너지면서 서얼차별은 폐지되었다.

사기(史記)를 쓴 사마천을 비롯하여 조선왕조실록을 쓴 사관들도 역사를 임하는 자세가 꼿꼿하고 엄격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사관들이 집필한 명종실록에 문정왕후와 정난정은 악녀로 기록되어 있다.

정난정의 체포를 가로막는 하인들. ⓒ채널A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이야기도 문정왕후를 이르는 말이란다. 물론 3천 년 전부터 내려온 속담이지만. 그런데 요즘은 ‘남자가 어지럽힌 쓰레기 여자가 다 치운다.’는 말도 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대결구도가 아니듯이 남자와 여자가 대립각을 세워서는 안 된다. 더구나 하늘의 절반이 여자고 남자와 여자가 조화를 이루어야 사회가 지탱하므로.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얼마나 많은 악행을 저질렀는지는 잘 모른다. 그러나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남존여비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감히 불교를 신봉하여 평등사회를 위한 신분제를 개혁하고 사회적 약자의 편이 되었으니 성리학자들에겐 눈엣가시였으리라.

문정왕후와 정난정이 특별히 장애인을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기록은 찾을 수 없지만 그들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였다. 그럼에도 사관들은 문정왕후와 정난정을 악녀 내지 독녀라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세월이 지난 후에는 문정왕후와 정난정에 대한 평가가 또 어떻게 달라질지는 모르지만.

명종실록을 기록한 사관들은 문정왕후와 정난정을 반대했던 사림파들이다. 역사가는 역사적 사실 중에서 선택해서 기록했을 뿐이리라.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대안언론 에이블뉴스(ablenews.co.kr)-

-에이블뉴스 기사 제보 및 보도자료 발송 ablenews@ablenews.co.kr-

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저작권자 © 에이블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