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터너(Page-turner)’란 연주자 옆에서 연주자 대신 악보를 넘겨주는 사람을 뜻한다. 연주 할 때 어떤 ‘페이지터너’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연주가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한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KBS2에서는 ‘페이지터너’라는 단막극을 지난 3월 26일부터 4월 9일까지 방영했다. 그러니까 이미 끝난 드라마다. 그럼에도 종방한 드라마를 가지고 왜 이러느냐 하면……. 드라마가 끝난 후에야 누군가가 시각장애인이 나온다고 알려 주었지만 변명하자면 그동안 겨를이 없어서 며칠 전에야 겨우 찾아보았기 때문이다.

페이지터너 홈페이지. ⓒKBS

윤유슬(김소현 분)과 서진목(신재하 분)은 피아노를 전공하는 예술고등학교 학생이다. 초견시험을 치는데 진목의 페이지터너를 유슬이 한다. 유슬의 페이지터너를 진목이 지원하더니 악보를 떨어뜨린다. 진목은 실수라며 악보를 주우려고 했지만 유슬은 그 손을 뿌리친다. 그럼에도유슬은 1등을 하고 진목은 2등을 한다.

유슬은 엄마가 운전하는 승용차로 집으로 돌아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고, 2등을 한 진목은 교회에서 유슬이 불구덩이에 빠지기를 기도한다. 한편 장대높이뛰기 정차식(지수 분) 선수는 엄마(황영희 분)을 위해서 무모한 도전을 하다가 중요한 부위가 장대에 찍히는 부상을 입는다.

교통사고 때 시신경을 다친 유슬은 엄마와 같이 진료를 받았다. 유슬은 의사가 흔드는 불빛이 있다 없다고 했다. “피아노는요?” 엄마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엄마는 유슬의 병원복을 갈아입히며 퇴원을 서둘렀다. 차식은 치료를 받은 후 엄마와 같이 의사를 만났다. “결혼도 할 수 있고, 다른 것은 문제가 없지만 운동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유슬엄마는 유슬의 퇴원을 준비해 놓고 화장실로 가서 목 놓아 울었다. 그 사이에 유슬은 흰지팡이를 짚고 병실을 나서는데 흰지팡이 끝에 차식의 발이 걸렸다. “옥상 가는 길이 어디예요?” 유슬이 물었을 때 차식은 유슬을 옥상으로 데려다 주는데……. 유슬의 교통사고가 자신의 기도 때문이라 생각한 진목이 꽃다발을 안고 병문안을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유슬을 따라갔다.

유슬은 옥상에서 투신을 하고 아래에서 차식이 기다리고 있다가 유슬을 받아 안았다. 그곳은 주차장이었던 것이다. 유슬의 자살 소동은 그렇게 끝이 났다. 유슬은 다시 학교에 가면서 엄마에게 따라오지 말라고 했고 그 뒤를 진목이 따라가고 있었다.

차식을 만나 옥상으로 가는 유슬. ⓒKBS

차식엄마는 자소서부터 자서전까지 대필작가였다. 운동을 못하게 되어 실의에 빠진 차식에게 처녀 때 사진 한 장을 보여 주었다. “넌 음악에 재능이 있어, 넌 현명세의 아들이니까” 차식에게 보여 준 것은 유명한 피아니스트 현명세와 같이 찍은 사진이었다. 차식은 용기백배하여 예술고등학교를 찾아가서 편입하겠다고 하지만, 너 같은 애가 올 데가 아니라며 받아주지 않는다.

유슬의 담임은 유슬의 도우미를 신청 받지만 신청자가 없다. 그 때 진목이 도우미 신청서를 들고 오자 유슬은 싫다하고, 이를 본 차식이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자 유슬은 차식을 선택한다.

유슬은 차식에게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다. 유슬은 엄마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 차식을 택한 것 뿐이니까. 유슬은 다시는 피아노를 치지 않겠다고 했다. 그동안 피아노 콩쿠르에서 받은 수많은 상패와 트로피가 조금도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그것은 엄마의 기쁨이지 내 것이 아니니까. 엄마에게 반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은 자신이 결정하고 싶다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 가겠다고 고집부리는 유슬의 흰지팡이가 불도그를 건드렸다. 개 주인도 유슬이가 개를 때렸다고 불도그처럼 으르렁거렸다. 뒤에서 자전거를 끌고 오던 차식이 이를 보고 달려 왔다. 차식이 “목줄도 안 매고, (유슬이)개를 때리지도 않았다며 경찰서로 가자”고 대들었다. 마침 그 위에는 CCTV가 있었던 것이다. 이를 계기로 유슬은 차식의 자전거로 등하교를 하게 된다.

유슬과 차식이 지나는 지하도에는 피아노가 있었다. 유슬이 고맙다며 보답하고 싶다고 하자 차식은 피아노를 한번만 쳐 보라고 한다. 유슬이 지하도에서 친 것은 베토벤의 9번 중에서 환희의 송가였다. 유슬이 다시는 피아노를 안치겠다고 했는데 차식을 위해서 눈을 감은 후 처음으로 친 피아노였다.

차식은 밤마다 꿈을 꾸었다. 보기만 해도 행복해져서 세상을 천국으로 만드는 무지개 같은 꿈이었다. 그런데 그 꿈에 나오는 노래가 유슬이가 연주하던 환희의 송가였다.

유슬의 자살 소동. ⓒKBS

학교에 투피아노 콩쿠르 포스트가 붙었다. 차식이 나가겠다고 했다. 모두가 비웃었다. 차식은 현명세의 아들이라며 의기양양했다. 유슬에게 같이 나가자고 했지만 유슬도 웃었다. 차식은 손가락에 피가 나도록 밤마다 연습을 했고 드디어 유슬도 인정해서 같이 나가기로 했다.

콩쿠르 날짜는 다가오는데 아무리 연습을 해도 차식의 피아노 실력은 조금도 늘지 않았다. 초조해진 차식은 진목에게 대신 좀 나가달라고 사정했다. 외국에서 유명한 피아니스트가 된 현명세는 아들이 있다는 편지를 받고 콩쿠르 예선전 심사를 하러 귀국했다. 차식이 현명세의 아들이라는 것은 차식엄마의 거짓말이었다.

차식이 콩쿠르에는 자기대신 진목을 내보내고 자신은 엄마를 지하도로 데려가서 피아노를 쳤다. 콩쿠르에는 유슬과 진목이 피아노를 치고, 지하도에서는 차식이 피아노를 쳤다. 그리고 둘다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콩쿠르 강당에서 그리고 지하도에서.

‘페이지터너’는 유슬, 진목, 차식이라는 세 사람의 갈등과 화해의 성장통이자 청춘 교향곡 같은 드라마이다. 그 사이에 유슬엄마와 차식엄마, 그리고 진목의 아버지까지 끼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페이지터너 같은 존재로서 함께 아파하는 동반자들이다.

그런데 드라마와는 별개로, 장애인의 이해 관점에서 몇 가지만 생각해보자. 유슬이가 병원에서 퇴원도 하기 전에 혼자서 흰지팡이를 짚고 옥상을 찾아간다. 흰지팡이는 어디서 났으며, 흰지팡이를 짚는 법은 어디서 누구에게 배웠단 말인가.

지하철카드를 대는 유슬과 진목의 손. ⓒKBS

어느 날 갑자기 앞을 보지 못하게 되면 가장 중요한 것이 마음자세가 아닐까 싶다. ‘내가 왜 이럴까’하는 팔자나 신세타령은 조금도 도움이 안 된다. 지금 여기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해서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남아있는 것의 쓰임을 찾아야 한다.

그리고 관련 기관에서 점자와 혼자서 흰지팡이를 사용할 수 있는 독립보행을 배워야 한다. ‘페이지터너’에서 유슬이 시각장애인이 되어 학교에서 도우미를 구하는 장면이 나온다. 요즘 대학의 경우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장애인 학생이 도우미를 원할 경우 ‘장애학생지원센터’에 신청을 하면 근로장학생으로 선발한다. 중고등학교에는 실무원이 한다. 개인적으로는 활동보조인을 이용할 수가 있다. 그리고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대학생들도 봉사점수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장애학생 봉사를 원하기도 한다.

‘페이지터너’에 보면 유슬이가 앞이 보이지 않으니까 지하철 카드를 어디에 대어야 할지 몰라서 카드를 갖다 대었는데도 문이 열리지 않자 진목이가 얼른 카드를 대자 문이 열렸다. 지하철 카드를 대는 곳이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 다르지 않은데 그렇다면 유슬이가 눈이 보일 때는 지하철을 타고 다니지 않았단 말인가. 그리고 또 하나 유슬이 같이 빛도 볼 수 없을 정도라면 시각장애 1급에 해당이 되고 시각장애 1급이라면 지하철을 무료로 탈 수 있는 교통카드가 나온다. 그 교통카드는 동행하는 봉사자까지 지하철은 무료다.

마지막으로 차식은 자신의 실력이 형편없다는 것을 알고 투피아노대회에 진목을 보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대체로 청력이 예민하다. 특히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라면. 그런데 유슬이가 진목과 차식의 피아노 소리를 정말 구별하지 못했을까.

피아노를 치는 세 사람과 관중들. ⓒKBS

필자도 잘 알지 못하는 부분이라 피아노를 전공한 시각장애1급인 한국장애인국제예술단 신은애 단장에게 문의를 했다. “‘페이지터너’를 직접 보지(듣지)는 못해서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음색이 있으므로 두 사람(진목과 차식)이 헷갈리지는 않았을 겁니다.”

유슬엄마는 유슬을 위해서 자신이 마실 물을 목마름을 참아가면서 유슬의 어깨위에 부어 주었다. 솜이 뽀송뽀송하던 유슬의 어깨는 엄마가 힘내라고 부어 준 물 때문에 더욱 무거워지고 엄마는 더욱 목말랐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는 장애자녀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어쩌면 장애자녀이기 때문에 더 많은 물을 부어서 자녀의 어깨가 너무 무거워서 못 일어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세상의 모든 부모들은 한번 쯤 되돌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솝우화에 ‘소금과 나귀’라는 이야기가 있다. ‘소금과 나귀’를 멋지게 대비시켜 준 ‘페이지터너’의 작가나 연출자에 갈채를 보낸다. 그런데 장애나 비장애를 떠나 부모에게 자식은 금지옥엽이다. 그 금지옥엽 자녀의 어깨에 걸린 무게가 엄마가 물을 부울 때마다 점점 더 무거워지는 솜이 아니라, 엄마가 붓는 물의 무게 만큼 조금씩 가벼워지는 소금이라면 어떨까.

얼마 전 연주회에서 임현정 피아니스트가 그랬다. 자신의 오늘이 있었던 것은 어릴 때부터 자신을 믿고 격려하며 용기를 주었던 어머니 덕분이라고…….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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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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