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예술가다' 팀은 지난 9월 13일 영국 유일의 시각장애인 극단 Extant를 방문했다. ⓒ서유랑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7기의 '나는 예술가다'팀은 지난 13일과 14일에 영국의 시각장애인 극단인 Extant와 대영박물관을 방문하였다.

두 단체를 통해 장애인 예술 활동의 접근성에 대해 알아보았고, 특히 시각장애인의 입장에서 예술 활동 참여나 문화체험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3일 오후 4시에 방문한 Extant는 영국 유일의 시각장애인 극단으로, 우수한 공연뿐만 아니라 국내외 투어, 예술가들의 트레이닝, 극작가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각장애인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단체의 이름인 Extant(엑스턴트)는 ‘여기에 있다’라는 의미의 라틴어이다.

사회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존재감 없이 숨어 지내야 했던 시각장애인들의 아픔과 투쟁의 의미를 담고 있는 이름이다.

Extant의 설립자이자 CEO인 Maria Oshodi씨는 시각장애인만의 경험을 녹여낼 수 있는 공연을 만들기 위해 연구중이라고 말했다. ⓒ서유랑

Extant의 설립자이자 CEO, 극작가, 예술 감독으로 일하고 있는 마리아 오쇼디(Maria Oshodi)씨를 Extant의 주 활동무대인 런던의 Oval Theatre에서 만났다. 오쇼디씨와 그녀의 안내견 페니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Extant의 대표적인 활동에 대해 소개해 달라.

우리가 하고 있는 공연은 항상 실험적이고 기존에 없었던 완전히 새로운 일이다. 시각장애를 작품에 어떻게 반영하고, 시각장애인으로서의 경험을 어떻게 작품 안에 녹여낼 수 있는지 항상 연구하고 있다.

-Extant는 시각장애인들의 예술 활동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Extant 공연의 관객들 중에도 시각장애인들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공연 때마다 점자로 된 책자와 브로셔를 제공하고 있다. 몇몇 공연 단체들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음성 안내기기를 제공하는데 Extant에서는 이러한 오디오 장치는 사용하지 않는다.

공연을 눈으로 볼 수 없더라도 공연의 관람이 제한적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항상 시각장애인 관객을 고려하여 대본을 쓰고, 시각장애인들이 볼 수 없는 부분들도 소리나 대사를 통해 최대한 공연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시각장애인 배우들이 무대장치나 동선을 파악하면서 공연을 하는 데에 어려움은 없는가.

배우들이 책상이나 의자, 가구들이 있는 일상적인 환경에서 공연을 하기는 매우 어렵다. 배우들이 다칠 수도 있고, ‘어디 부딪히지는 않을까’, ‘어디까지 얼마나 더 가야 할까’ 등의 고민 때문에 연기에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많은 고민을 한 결과 공간을 추상화 시키고, 대신 배우들의 연기 자체에 많은 요소를 집어넣는 방법이 가장 좋다고 생각했다.

가령 한 배우가 의자에 앉는 장면이 필요하다면, 실제 무대 위에 의자를 놓는 것이 아니라 추상화된 공간에서 배우의 행동이나 말을 통해 의자에 앉는 상황을 표현해내는 방식이다. 말로 설명을 듣는 것보다 우리가 일하는 방식을 직접 보는 것이 효과적일 것이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무엇인가.

2005년에 기획했던 ‘레지스탕스(Resistance)’라는 작품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다. 레지스탕스는 Extant에서 했던 가장 큰 프로젝트로, 모든 배우들과 스텝들이 참여하고, 투어도 많이 다니고, 가장 예산도 많이 들었던 작품이었다.

이 연극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시각장애인 청소년으로 파리 레지스탕스의 리더였던 자크 루세랑(Jacques Lusseyran)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런던 외에 다양한 도시들을 돌면서 투어를 했고,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등 다른 국가들에서도 공연을 했다. 게슈타포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흥미로운 소재와 내용으로 관객들에게 감명을 주면서 동시에 장애라는 주제를 표현할 수 있었고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술교육에서도 많은 일을 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에 대해 소개해 달라.

Extant에서는 시각장애인 예술가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워크샵과 트레이닝 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청소년들에게 연극 분야에서 일을 할 수 있고, 어떻게 이런 일들이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연극에 관심을 갖고 선택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연극 분야의 일을 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것이 ‘내가 할 수 없는 일이야’보다는 ‘내가 그냥 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야’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의 문제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마다 시각장애인 배우들을 뽑는데,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일 수도 있고, 아닌 경우도 많다. 이런 사람들에게 연기 코칭이나 개인 트레이닝도 시키고 함께 팀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현재 작품 연출이나 대본 쓰는 일은 내가 전담하고 있는데, 점차 많은 시각장애인 시나리오 작가나 연출가들이 나올 수 있도록 연기 외의 분야에서도 교육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다.

14일 오전 11시에 대영박물관의 Access & Equality Manager로 8년째 일하고 있는 Jane Samuels 씨를 찾았다. ⓒ서유랑

Extant와 같이 공연에 예술가로 직접 참여하는 것뿐만 아니라 공연이나 전시를 관람하는. 나아가 문화생활 전반에 있어 장애인들이 쉽게 접근 가능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한국에도 국립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수화 도슨트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등 장애인 접근성에 대해 인식하기 시작하였다. 영국의 경우 장애인이 문화생활을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14일 오전 11시에 대영박물관의 Jane Samuels 씨를 찾았다. Access & Equality Manager로 8년째 일하고 계신 Samuels씨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대영박물관의 access provision service에 대해 자세히 알려주었다.

-대영박물관의 access provision service에 대해 소개해 달라.

전시를 체험하는 데에 시각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는 만큼, 대영박물관의 접근성 프로그램들은 시각장애에 가장 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점자로 설명이 쓰여 있고 울퉁불퉁하여 전시품의 모양을 만져보고 알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내책자(tactile books)를 제공한다. 또한 오디오 기기를 통해 음성 안내도 지원하고 있는데 단순히 유물에 대해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태나 색깔, 크기 등이 어떠한지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멀티미디어 기기를 통해 200여 가지의 전시품에 대해 수화 안내를 볼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전시품을 방문객들이 만져볼 수 있도록 핸들링 데스크를 마련해두었다.

시각장애인을 포함하여 아이들이나 다른 방문객들이 큐레이터와 함께 전시품을 만져보면서 관람할 수 있는 세션이 있어 매우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게 터치 투어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시각장애인들이 최대한 진품을 많이 만져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러한 access provision program이 아주 잘 되어있기 때문에 매일 수백 명씩 접근성 가이드 책자(access guide)와 점자 안내서를 이용하고, 방문 일주일 전에 터치투어를 신청하여 많이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 이외에도 일반인과 대영박물관 직원 1000명으로 구성된 포커스 그룹을 편성하여 박물관에 필요한 여러 가지 건의사항을 듣고, 꾸준히 박물관의 프로그램들을 개선하고 있다.

대영박물관에서 시각장애인 관람자는 석상을 만져보거나, 작품의 점자 설명서를 읽어볼 수 있다. ⓒ서유랑

-Access & Equality Manager로서 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가.

내가 하고 있는 일의 의의는 박물관의 중심을 이루는 수많은 부분들에 ‘접근성’의 개념을 박아 넣는 것이다. 접근성 매니저가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작업들을 전부 도맡아 하는 것이 아니라 박물관의 모든 부서들의 활동에 접근성이 당연히 고려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점차 접근성 부서에 편성되는 예산의 비중은 줄어들고 있지만 다른 모든 부서들의 활동과 예산에서 접근성이 당연히 고려되고 있기 때문에 부정적인 현상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전체적인 시스템에서 자동적으로 접근성을 고려하게끔 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고, 내가 하는 일의 가장 중요한 의미라고 생각한다.

-박물관 전체에서도 이러한 Access provision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가?

대영박물관에서 접근성을 중요시하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초반이다. 이때 처음으로 Access & Equality Division이 만들어졌고 점차 예산도 지원받는 등 박물관에서 접근성을 높이는 것을 매우 강조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신체적, 물리적으로 접근성을 높이는 것 뿐만 아니라 지적으로, 감각적으로도 모든 사람이 쉽게 접근할 수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고, 현재까지도 박물관 전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조각상을 직접 만져볼 수 있는 터치 투어 (이집트 조각상 전시관 등에서 시각장애인들이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면서 전시품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하는 체험 프로그램) 부터 시작해 전시품의 위치와 높이, 안내문의 높이와 글자크기, 배경색 등 세세한 작업까지도 하나하나 고민하고 디자인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을 통해 현재 높은 수준의 접근성을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냈다고 생각을 하고, 사람들이 이동하기 수월한 것은 물론 시각적으로도 관람하기 쉽도록 많은 부분에서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박물관 대내외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이 있는가?

가장 인상 깊었던 프로그램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핸들링 세션과 교도소 프로그램이다. 핸들링 세션에서 시각장애인들은 전시품을 볼 수 없는 대신에 전시품에 대해 사전에 많이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해온다. 그렇기 때문에 큐레이터와 함께 관람을 하면서 매우 예리하고 좋은 질문들을 많이 던지고, 이들의 질문으로부터 박물관의 입장에서도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은 적도 많다.

교도소에서도 전시품을 가져가 수감자들에게 보여주고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의외로 굉장히 예술적인 재능이 있고 창의적인 사람들을 많이 발견한다. 수감자들 중에는 정신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도 많고, 이러한 프로그램 이외에 예술 활동에 참여할 기회를 거의 갖지 못해 창의성을 발휘하지 못해본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 안타깝다.

교도소 프로그램들을 통해 예술 활동에서 소외된 사람들도 예술 활동에 참여할 수 기회를 갖고 창의적인 활동을 할 기회를 갖도록 할 수 있어 큰 보람을 느낀다.

이러한 체험 프로그램들 외에도 다른 박물관, 갤러리들과도 지속적으로 많은 교류를 하고 있다. 직접 컨퍼런스에 연사로 참석하기도 하고 예술 교육과 접근성에 대한 논문도 쓰며, 테이트 모던, 빅토리아알버트 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국립 초상화 박물관 등의 접근성 매니저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과 친하게 지내면서 각각의 박물관에서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법이 좋을지 많이 듣고 배운다. 제적으로도 컨퍼런스나 인터넷을 통해 박물관 관련자들과 교류하고 있으며 특히 최근 뉴욕에서 대규모 컨퍼런스가 열려 많은 좋은 정보들을 교환할 수 있었다.

-향후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

박물관이 대외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형법 제도의 부당한 부분들에 이의를 제기하고, 정신 장애를 갖고 있거나 예술의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죄수들에게 예술 활동 참여할 기회를 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 것이 있다. 대내적으로는 갤러리의 보수 공사를 할 때 과거에 접근성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했던 점들이 반드시 수정될 수 있게끔 프로젝트를 계획하고 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항상 접근성의 반경을 넓히고 점점 모든 사람들이 전시를 관람하는 데에 접근성이 나아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유한한 끝이 있는 작업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높은 목표를 갖고 꾸준히 실천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이 발전하고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오고 직원들이 바뀌면서 항상 '접근성이 잘 되어있다'라는 기준은 바뀌는 것이다. 나도 8년 전만 해도 멀티미디어로 수화 가이드를 하는 서비스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인데, 지금은 매일 많은 사람들이 멀티미디어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 나를 포함해 대영박물관 전체에서 항상 접근성을 높이고 현재의 한계점들을 뛰어넘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터치투어가 이루어지는 1층의 이집트 조각상 전시관부터 시작해 천천히 박물관을 둘러보았다. 고대 이집트 신을 본뜬 석상들을 만져보고,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책을 만져보면서 시각장애인을 위해 대영박물관에서 기울이고 있는 노력이 느껴졌다. 유럽팀이 방문했던 날에도 많은 관람객들이 이어폰을 끼고 전시를 흥미롭게 관람하고 있었다. 박물관에서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많은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대영박물관을 찾고, 전시를 체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글은 2011장애청년드림팀’ 유럽팀의 장은주 님이 보내왔습니다. 장은주 님은 서울대학교 화학부에 재학중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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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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