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 '나는 예술가다' 팀은 브라이튼 시내에서 잠시 길을 잃었지만 무사히 기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서유랑

“장애청년드림팀 6대륙에 도전하다” 7기 유럽팀인 ‘나는 예술가다’는 지난 9일 영국의 남동쪽 항구도시인 브라이튼에서 두 개의 장애인 예술 단체를 만나며 둘째날 일정을 진행했다.

이미 연수 첫 날 두 개의 기관을 방문해 인터뷰하며 여유와 자신감이 생긴 팀원들은 오전 방문 기관인 Disability Art Online(이하 DAO)를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서 찾아갔다. 비슷한 블록과 거리에서 잠시 길을 잃을 뻔 했지만, 10시 반 무사히 DAO를 찾아 에디터인 Colin Hambrook 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인터뷰는 근처의 한 공원 카페에서 진행되었다.

9월 9일 오전 10시 반, 브라이튼의 한 공원에서 장애인 예술 비평 저널 Disability Art Online의 에디터 Colin Hambrook씨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서유랑

Colin Hambrook씨는 DAO의 에디터로 20대에 만성 질환을 앓다가 1990년 Survivor Poetry라는 단체에 들어가 장애인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이후 Art Council에서 실시하는 멘토십을 통해 월간 잡지 London Magazine의 에디터로 활동하게 되었고, 영국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예술 비평을 시작하게 되었다.

장애인 예술 문화가 태동하고 있던 당시에는 지역 사회 단위의 소규모 공연 위주로 장애인 예술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Aaron Williamson, Catherine Miller 등 스타 장애인 예술가들이 나오면서 더 큰 규모의 예술문화가 필요하게 되었고, 리버풀, 버밍햄 등 영국 각지에서 열리던 장애인 예술 포럼과 지역 단위의 장애인 예술 단체가 연합해 DAO가 탄생하게 되었다.

현재 DAO는 여러 장애인 예술가들의 작품과 전시를 프로파일하고, 쇼케이스에 대해 소개하고, 비평을 통해 피드백을 주는데 주력하고 있다.

‘나는 예술가다’ 팀은 전 날 인터뷰에서 장애인 예술의 역할로 ‘소통’의 측면에 주목했다. 비평가로 Hambrook씨는 보편 예술로 장애인 예술만이 전달할 수 있는 메시지의 특수성에 주목한다. 장애인 예술가 당사자이자 메타적 분석을 시도하는 연구자로 장애인 예술의 역할을 논의하고자 하는 우리의 목적과도 정확하게 부합하는 설명이었다.

“장애인 예술은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준다. 영국의 장애인 예술가인 Allen Sutherlank는 transcription poetry라는 예술 장르를 형성했다. ('Transcription'은 '필사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Transcription poetry를 통해 장애인들이 작품의 대상이 되는 것(writing 'about' us)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를 위해 작품을 쓰는 것(writing 'for' us)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장애인들이 예술을 통해 자신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장애인의 삶에 대해 일반 대중에게 알리고 교육시킬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장애는 인간의 연약함(fragility of the human condition)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매우 독창적인 언어이다.”

Hambrook씨는 장애인 예술가의 작품 활동을 통해 장애인 예술이 장애를 소재로 하는 것에서(on disabled) 장애인들이 주체성과 자유를 위한 것(for disabled)으로 나아갈 수 있고, 더 많은 창의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게 되어 장애예술이 전문적인 영역으로 진보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나는 예술가다’ 팀이 한국 장애인 예술 단체를 사전 인터뷰할 때 한국 장애인 예술이 지향해야 할 바로 공통적으로 지적된 부분은 장애인 예술이 전문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장애인 예술의 전문성 확보 방안으로 Hambrook씨가 던진 화두는 장애인 예술 비평이다. 영국 내에는 Hambrook씨가 일하는 DAO와 BBC에서 운영하는 Ouch라는 두 개의 장애인 예술 저널이 있다. 1990년대 중반 이 저널들에서 처음으로 장애인 예술에 대한 비평을 시작했을 때 장애인 예술가들은 이를 받아들이기 않았다.

자신의 작품을 자기만의 세계에서 사회로 꺼내놓고 발표를 하는 것도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비판을 들은 경우 예술 활동 자체의 의지가 꺾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예술 비평 단체가 필요하다.

Hambrook씨는 장애 예술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평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서유랑

"장애인 예술에 대한 이해가 없는 주류 예술 문화권에 장애인이 작품을 발표했을 때에는 건설적인 조언 없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 있다. 따라서 DAO와 같은 장애인 예술 전문 비평 단체가 필요하다. DAO에서는 작가들의 관점을 이해하고 최대한 건설적인 피드백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비평에 다져진 진보적인 장애인 예술가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전문가의 관점에서도 충분히 가치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해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비판 없는 성장은 있을 수 없다. 장애인 예술이 단순히 장애인의 사회 참여라는 역할을 넘어 주류 예술권 내에서도 보편적인 예술 장르로 인정받기 위해 작품을 향한 비평을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건설적 비평을 통과한 장애인 예술 작품은 '보편 예술'로 전문성을 확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예술가 스스로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

비평은 장애인 예술이 언젠간 맞닥뜨려야 할 관문이다. 장애인 예술만이 가지는 '독창성' 만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독창성을 견지하면서도, 전문 지식과 노하우를 가진 전문가에게 '보편성'을 인정받는 일은 필수적이다.

물론 아직까지 예술 비평 자체가 뿌리 깊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섣불리 장애인 예술 비평을 시도하는 일은 자칫 막 싹을 틔워낼 장애인 예술의 성장을 느리게 만들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 전문 예술 비평은 조심스럽게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영국이 20세기 중반부터 이미 사회적 모델의 기반을 다지고 에이블 아트 운동을 전개해 왔다면, 한국 사회는 90년대에 이르러서야 장애인 운동이 시작되었다. 장애인 예술 단체가 본격적으로 형성된 시점 역시 90년대 후반부터이다. 뒤늦게 시작했지만 착실히 기반을 다져나가는 장애인 예술 단체와 ‘나는 예술가다’ 팀에 Hambrook씨는 마지막으로 ‘자신감’을 이야기했다.

“자신감을 찾는 과정 자체가 우리에게 힘든 투쟁 과정의 일부이다. 스스로의 욕구와 필요를 위한 자신감을 갖자. 이것이 장애인 예술 문화를 더욱더 풍부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영국은 70년대 장애의 사회적 모델이라는 이론을 정립하며 튼튼한 이론적 기반 위에서 에이블 아트 운동을 전개해왔다. 이 날까지 인터뷰한 세 곳의 단체는 모두 자신의 예술이 ‘사회적 모델’이라는 이론 위에서 성장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언급했다.

우리 나라도 90년대 장애인 운동계에서 사회적 모델을 받아들였지만, 운동의 슬로건으로 사용되어 이론 자체에 대한 연구는 깊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물리적 해방을 넘어선 자유를 추구하기 위해서 특히 예술 분야에서 장애에 대한 이론적 토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확고한 이론적 뿌리를 가진 예술, 건설적인 비평을 통해 장애인 예술만의 ‘창조성’을 확보하면서 보편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연수 기간 동안 우리는 다양한 예술 단체를 방문했지만, 특히 DAO의 방문은 메타적으로 장애인 예술을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열어준 기회였다. 이후 이어진 인터뷰에서 우리는 장애인 예술과 사회와의 상호작용, 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예술 운동에 대해 더 깊이있는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이글은 2011장애청년드림팀’ 유럽팀의 문영민 님이 보내왔습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취재팀(02-792-7166)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직접 글을 등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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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화학부 04학번,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석사 진학 예정. 커피와 고양이, 책을 좋아하고 식상함과 무기력을 싫어하는 스물다섯의 귀차니스트. 다년간의 관악산 휠체어 라이딩으로 다져진 팔근육과 연약해 보이고 싶다는 욕망 사이에서 줄타기하는 지체장애인. '대중의 과학화'를 꿈꾸며 멋진 저술가가 되고 싶은 평범한 과학도. 내게는 일상인 풍경들 속에 나 역시 풍경으로 비춰질까, 부조화한 이방인으로 비춰질가 오늘도 고민-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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