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이 일어났다. 여자들이 실종되고 뺑소니 사건이 터졌다. 실종사건은 오리무중이고 뺑소니 사건은 주목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신고자가 시각장애인이므로.
영화 ‘블라인드’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라기에 시각장애인 그리고 봉사자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갔다. 입장권을 구입할 때 ‘청소년 관람불가’라면서 신분증을 확인하기에 왜 무슨 연유로 청소년관람불가인가 했더니 폭력성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영화는 그런대로 괜찮았던 것 같다. 그런데 왜 청소년관람불가인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TV 드라마 뿐 아니라 뉴스에서도 청소년이 보고 배울까봐 무서운 외도를 비롯하여 폭행 감금 납치 성폭력 등 잔인한 폭력성이 난무하고 있는데, ‘블라인드’에 붉은색 피가 많아서였을까…….
영화가 시작되면서 나오는 사람 등의 자막 아래 점자가 같이 기재되어 있었다. 점자는 시각장애인들이 손끝으로 만져서 알 수 있는 문자인데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이런 것이 점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도 괜찮은 생각 같다. 따라서 ‘블라인드’는 오히려 장애인복지를 알리기 좋은 영화 같은데 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아야 했을까?
영상물등급위원회에서 심사를 통해 전체이용가, 12세 이상 관람가, 15세 이상 관람가, 청소년관람불가, 제한상영가 등으로 분류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블라인드’는 ‘15세 이상 관람가’도 충분할 것 같은데 청소년관람불가라니 정말 이해불가이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의 등급분류기준을 보면 ‘'청소년'이라 함은 영비법 제2조 제18호에서 규정한 18세 미만의 자(「초·중등교육법」제2조의 규정에 따른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학생을 포함한다)를 말한다.’고 되어 있다. 어이없는 사실은 ‘블라인드’에 나오는 유승호가 고등학생이라 자신이 출현한 ‘블라인드’를 볼 수 없다고 한다.
아무튼 뺑소니 사고의 목격자로 김하늘(수아 역)이 등장하는데 김하늘은 시각장애인이다. 또 한사람의 목격자 유승호(기섭 역)가 나타나서 김하늘과 다른 진술을 하는 바람에 사건은 꼬이게 된다.
그런데 유승호는 그가 눈으로 본 사실을 진술한 그야말로 목격자(目擊者)이다. 그러나 김하늘이 사건을 접하기는 했지만 눈으로 본 것이 아니기에 엄격히 말해서 목격자라고는 할 수 없다. 김하늘은 시각장애인이므로 보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 대신 냄새 맡고 만져보고 듣고 느껴서 알게 된 사실들이다.
김하늘이 말하기를 비 오는 밤에 자신을 태워 줬으므로 택시이다. 시트를 만져보니 고급이었으므로 모범택시이다. 먼저 내린 손님이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인지 소독약 냄새가 진동해서 창문을 내렸는데 기사가 비가 들이친다며 신경질을 내며 창문을 닫았다. 오른손에 시계를 찬 기사가 커피를 주면서 마시라고 했지만 김하늘이 나중에 마시겠다고 하자 기사가 화를 냈는데, 그 순간에 사고가 났다. 뭔가 차에 부딪쳤던 것이다. 기사는 별거 아니라며 트렁크를 열었지만 김하늘이 의심을 하자 기사는 김하늘을 비 오는 길에다 팽개치고 그대로 달아났다.
김하늘은 뺑소니로 신고를 했지만 그가 시각장애인임을 알고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가, 그 사건을 새로 맡은 조희봉(조형사 역)이 김하늘의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 때 사례금을 탐내는 치킨집 배달원 유승호가 나타나서 김하늘과 상반된 진술을 한다.
“택시 아니거든요. 이름은 잘 모르겠지만 외제차에요.”
유승호의 말에 김하늘은 화를 냈다. ‘내가 택시도 구별 할 줄 모르겠느냐’ 눈이 보이지 않는 김하늘은 자신을 손님으로 태웠으니 분명 택시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조형사가 해치백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택시가 아닐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뺑소니차도 해치백이었던 것이다.
-해치백(hatch back)이란 객실과 트렁크의 구분이 없으며 트렁크에 문을 단 승용차이다. 이 문을 열면 객실의 뒷좌석과 바로 연결된다. 밖에서 볼 때 뒤쪽에 문이 있어 해치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구조상 트렁크 덮개와 뒷유리가 붙어 있어서 트렁크와 유리가 함께 열린다. 이런 점에서 트렁크 덮개만 열리는 노치백과 구분된다. - 네이버 백과사전 발췌.
김하늘이 접했던 뺑소니 운전자는 여성 납치범이었는데 범인은 자신을 목격한 유승호를 해친다. 범죄심리학을 점자로 공부하고 한소네(점자정보 단말기; 비장애인의 노트북과 유사한 기능을 하는 기기)를 사용하는 김하늘이 그 사실을 알고는 유승호가 입원한 병원에서 조형사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 했으나 유승호는 싫다고 뿌리치며 지하철을 타러 간다.
김하늘도 안내견 달이(슬기 역)를 데리고 지하철을 탔는데 무심코 건너편 전동차의 김하늘을 바라보던 유승호가 놀란다. 범인이 김하늘을 따라왔던 것이다. 김하늘은 아이폰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유승호는 김하늘의 아이폰 영상을 보면서 지시한다. - 지하철에서 범인에게 쫓기면서 아이폰 영상으로 어떻게 도주로 지시를 받을 수 있는 건지...... 영화가 끝난 후 필자가 동행했던 시각장애인과 얘기해 보았지만 아무래도 실제 상황에서는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다.
줄기차게 비는 내리는데, 조형사는 사이코패스인 범인의 윤곽을 잡고 김하늘과 유승호를 김하늘의 엄마 김미경이 운영하는 보육시설 희망의집으로 보낸다. 다치기 전 김하늘은 경찰대학 학생이었는데 실습 중에 희망의집 동생뻘 되는 동현을 찾으러 갔다가 교통사고로 동현을 잃고 김하늘은 망막을 다쳐 눈이 멀었던 것이다.
김하늘은 자신의 실수로 동현을 보냈다며 괴로워했었는데 김하늘은 유승호에게서 동현을 느끼는 것일까. 김하늘의 엄마는 아이들을 데리고 공연을 보러가고 조형사를 해친 범인은 김하늘과 유승호를 찾아온다. 범인은 조형사의 휴대폰으로 유승호에게 문자를 보냈던 것이다.
김하늘을 구하려다 유승호는 범인에게 당하고, 김하늘과 범인의 쫓고 쫓기는 숨 막히는 추격전이 벌어진다. 여기서 잠깐, 김하늘은 경찰대생이었는데 최소한의 무술은 익혔을 것이다. 그렇다면 아무리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해도 전직 경찰대생이라면 범인을 메다꽂아야지 왜 연약한 여자로 도망만 다니는 걸까.
유승호는 범인에게 얻어맞아 다치고 도망가던 김하늘은 기억속의 동현을 떠올리며 벽돌로 차 유리를 부순다. 동현을 살리기 위해서. 순간 삑삑삑 경보음이 심하게 울리고 범인은 김하늘에게로 다가온다.
김하늘의 손에는 울트라케인(초음파 지팡이)과 벽돌 한 장이 들려 있었다. 범인이 다가 올수록 울트라케인은 점점 크게 울린다. 드디어 범인이 김하늘의 곁으로 다가오자 김하늘은 힘껏 벽돌로 범인을 내리찍었다. 범인의 죽음으로 동현에 대한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죄책감을 잠시 내려놓고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신과 화해하는 주인공 김하늘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김하늘이 사용했던 울트라케인(Ultra Cane)은 초음파를 사용해 전방에 있는 장애물을 알려주는 보조기기이다. 울트라케인을 처음에는 지팡이에 장치했기에 워크메이트 또는 초음파지팡이라고 했었다. 영화에서는 휴대폰 같이 손안에 쥘 수 있는 조그만 장치인데 영화에서나 가능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울트라케인은 전방에 있는 장애물을 알려주는 장치인데 우리 주변은 온통 장애물 투성이라 울트라케인이 울릴 때 어느 쪽에 무슨 장애물이 있는지 너무 시끄럽고 혼란스러워 잘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아직 우리나라 경찰대학에 시각장애인 학생이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지만 영화에서 김하늘은 다시 경찰대생이 되고 유승호는 전투경찰이 되었으나, 조형사는 범인의 손에 죽었다. 보통 형사들은 2인 1조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영화가 비록 스릴러라고는 하지만 조형사를 혼자 내몰아 그렇게 죽게 한 것은 좀 너무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김하늘의 엄마 김미경이 운영하는 희망의집도 보육시설로 사회복지시설이고, 김하늘이 경찰대생이었을 때 유흥가에서 흥청거리는 동현을 구하려고 했던 점도 청소년 교정의 일종이니 시각장애인 뿐 아니라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 일조를 한 것 같다.
그리고 김하늘이 처음 엄마 김미경을 찾아 갈 때 시각장애인 심부름센터 차를 이용하는데 실제로 심부름센터 차량은 사전 예약제로 운행되고 있다. 부산의 경우 차비는 기본이 2,000원이고 한 시간까지는 5분에 1,000원, 한 시간이 넘으면 5분에 5백원이란다. 그밖에도 장애인콜택시가 운행되고 있는데 콜택시 두리발의 요금은 택시요금의 40% 정도 된다고 한다.
김하늘은 안내견 달이와 생활하는데 김하늘이 시각장애인이 된지 3년쯤 되었고 달이와 같이 생활한다면 재활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달이와 함께 횡단보도에서 어쩔 줄 몰라 당황하는 모습은 안타까웠다. 비장애인들이야 눈 감으면 저럴 수도 있겠구나 싶겠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좀 오버 같기도 했다. 만약에 혹시라도 시각장애인에게 그런 일이 생긴다면 누구라도 보는 사람이 달려와서 도와주어야지 그렇게 내버려두다니 참 비정한 사회 같다.
사실 안내견과 생활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많지는 않지만 달이가 주인 김하늘을 위해 범인에게 달려들다가 범인의 칼에 맞아 피가 낭자한 것은 정말 끔찍하고 슬펐다.
영화 안내에는 ‘블라인드’가 오감추적 스릴러라고 했다. 인간의 감각이란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로 육근에서 비롯된다. 그 중에서 김하늘은 눈과 혀 즉 시각과 미각은 사용하지 않았다. 김하늘이 뺑소니 사고 신고를 하면서 본능적인 감성으로 맡아보고, 만져보고, 들어보고, 느껴본 것을 진술했지만 어떻게 오감이 될 수 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함께 영화를 봤던 봉사자가 대부분의 시각장애인들은 눈을 감고 있던데 김하늘은 눈을 뜨고 있는 게 신기했다고 했다. 김하늘은 눈이 보이는 사람이다. 아무리 노련한 연기자라 해도 눈이 보이는데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쉽지 않을 텐데, 김하늘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눈 뜬 시각장애인 연기는 정말 잘 해 준 것 같다.
안상훈 감독은 “장애인들이 연민의 대상이 아니라 배려의 대상이고, 같이 살아가는 이웃이란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는데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다음 말은 하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진정한 장애는 마음, 정신에 문제가 있는 것이란 것을 담고 싶었다.” (노컷뉴스에서 발췌. 2011-07-28)
이 말은 장애인복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옛날이야기다. 대부분의 축사나 격려사에서도 그렇게 말하지만 그 사람들 역시 장애인복지를 잘 모르기는 마찬가지다. 장애유형에는 지적장애를 비롯하여 발달장애 정신장애도 포함되어 있어 마음의 장애나 정신장애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눈을 감고 산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특히 여성 시각장애인이 살기는 더 어렵다. 그러나 영화 ‘블라인드’에서 김하늘과 유승호 등 출연자 뿐 아니라 관계자 여러분도 시각장애인에 대해서 조금은 알 수 있었을 터이니 그나마 다행이고 고마운 일이다.
우리는 이 영화 속의 조형사처럼 장애인의 능력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선행될 때 이 영화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사회를 실현하는 데 기여하지 않을까 싶다.
필자가 본 ‘블라인드’에 화면해설은 따로 없었기에 무언의 장면은 옆에 있는 시각장애인에게 작은 소리로 설명해 주었다. 화면해설 없이 시각장애인은 어떻게 영화를 보며, 청각장애인은 또 어쩌란 말인가. 비장애인이 그냥 재미로 보기에는 그런대로 괜찮은 영화인 것 같다. 비 내리는 날의 공포 스릴러로 등골이 오싹해 지겠지만 지금은 여름이다.
사족이지만 필자는 부산 서면 씨너스 영화관에서 ‘블라인드’를 보았다.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입구에 점형(위치표시용) 유도블록이 설치되어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앞을 보는 필자와 같이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혼자서 흰지팡이에 의지하고 있었다면 그는 출구로 나와서 어디로 가야 할 지 몰라 헤매었을 것이다. 적어도 씨너스 입구에서 도로까지는 선형(방향표시용) 유도블록으로 연결되어 있어야 했던 것이다.
* 이 내용은 문화저널21(www.mhj21.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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