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23일 영동에서 옥천 입성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국토대장정 대원들. ⓒ한국DPI

8월 23일, 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오전 6시가 조금 넘자 대원들이 모두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상처럼 가볍게 세면을 한 후 개인 짐들을 챙겨 스텝차량에 옮겨 실었다.

아침은 어제 먹다 남은 올갱이국과 컵라면으로 대신했다. 아침 일찍 시작하는 행군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다들 한 그릇씩만 먹고, 숙소를 배려해준 교회 측을 생각해 청소도 신경 썼다.

대원들을 배려해 준 영동교회 장로님과 집사님께 인사를 건넨 후 바로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어제처럼 폭우는 아니지만 부슬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그 빗줄기는 하루 종일 계속됐다.

출발한 지 1분도 채 되지 않은 거리에 급경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핸드싸이클을 비롯한 모든 대원이 최선을 다해 고개를 넘는데 성공했다.

평범한 길이 기다리고 있는 듯 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길이가 1.5킬로미터는 족히 넘어 보이는 고개가 기다리고 있었다.

전동휠체어는 일정한 속도를 유지할 수 있으나 핸드싸이클은 가속도를 이용해야 오르막길을 무난히 오를 수 있어 핸드싸이클을 이용하는 대원들이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대원들도 바로 뒤따라 붙었다. 그렇게 조금씩 정상을 향해 전진, 약 30분간의 노력 끝에 모든 대원들이 정상을 넘었다.

이제 더 이상 힘든 고개는 없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장거리의 고갯길이 나타났다.

그렇게 20킬로미터를 행군했는데 시간이 오전 11시 30분이었다. 옥천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구간대원 3명이 합류했는데도 불구하고 1시간 30분만에 오르막길을 달렸다. 평균 행군속도가 10킬로미터 이상이었다.

국도변에 있는 칼국수 식당 앞에 대열은 멈춰 섰다. 칼국수로 점심을 먹으면서 충전도 했다. 사장님이 점심 먹은 대원이 의자에서 선잠을 잘 때 의자를 몇 개 붙여서 눕게 해주었고, 베게대용으로 두루마기 휴지를 나눠주어 편히 자도록 배려해 주었다.

장애인이 불쌍해서 혹은 반시설 정책에 동의해서 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고생 많고, 안쓰럽다며, 끝까지 완주할 것을 당부했다.

추풍령은 추풍령인가보다. 오후 행군 내내 2~3개의 오르막 고개가 더 있었다. 다행히 경사는 완만했으나 그 길이가 만만치 않았다.

전동휠체어도 힘들어 했다. 아니나 다를까 옥천센터 대원 2명의 배터리에 문제가 생겨 멈춰 섰다. 문경희 본대원의 휠체어도 멈춰서기 일보직전이었다. 다행히 여유분의 전동휠체어가 있어 교체해 옥천군청에 도착할 수 있었다.

원래 옥천군청은 경로에 없었는데 옥천센터 사무국장이 워낙 옥천군청 장애인복지과 직원들이 장애인복지 생각이 부족하다고 피력해 급하게 끼워 넣은 경로였다.

옥천군청에 도착한 대원들은 비를 피해 민원봉사실 로비로 향했고 장애인복지과장과 간단한 인사와 짧은 대화도 나누었다.

의외로 과장은 반시설과 자립생활에 대한 의지가 있었으나 아래의 실무자들이 잘 이해하지 못해 실질적인 집행이 제대로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됐다.

최종 목적지인 충북도립대학교에 도착했는데 옥천센터 활동가와 회원들이 반갑게 맞아 주었다. 숙소는 1층 사회복지과 전용 강의실로 정해졌고, 1층에sms 남녀 화장실(장애인화장실 포함), 2층에는 샤워장도 딸려 있었다.

강의실 책상을 이용해 즉석 식탁이 꾸려졌고, 이내 저녁상이 차려졌다. 반찬 집에서 주문한 7가지 반찬과 밥으로 맛있게 식사를 마친 후 교류회도 진행했다.

옥천군의 장애인복지정책과 지역장애인당사자들의 현실을 전해 들었고, 서울 및 인천, 대전지역 중심의 노하우를 전해주는 이야기가 한참 오갔다.

간단한 음주를 통해 분위기가 무르익었고, 우리 대원과 옥천센터 활동가와 회원들이 자연스럽게 자립생활과 반시설의 정당성에 대해서 이야기 나눴다.

전형적인 농촌기반 자립생활센터인 옥천센터와 도시형 자립생활센터 활동가 간의 대화는 서로 다른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방안에 대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됐고, 서로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의견들이 제안되기도 했다.

이심전심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싶다. 금방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형성됐고 호형호제하면서 사적인 얘기도 나누었다.

마치 10년 된 친구이자 동지처럼 서로의 신념과 활동목적, 자립생활 운동에 뛰어든 계기, 개인 가정사와 자기 희망 등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내일의 목적지는 대전이다. 20킬로미터 조금 넘는다. 오후 4시에 대전시청 앞에서 대전지역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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