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그 척박했던 장애운동계에 새로운 빛이 생겼다. 1986년, 울림터와 한국 DPI 본격적인 장애운동이 시작된 것. 서울올림픽 준비에 여념이 없던 정부에 확성기를 들고 외쳤다. “진정한 장애인올림픽은 장애인고용촉진법의 제정이다.”

그 결과 1992년 장애인 의무고용 등이 담긴 ‘장애인고용촉진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됐다. 절대로 쉽게 생겨난 것이 아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있었기에, 희생으로 만들어진 법이었다.

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주최 ‘2015 장애인당사자대회 컨퍼런스’.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 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은 30년간의 장애인 당사자운동의 성과와 과제를 발표했다.

30년간 굵직굵직한 성과는 많았다. 장애인고용촉진법 제정의 운동을 물꼬로, 장애인 이동권, 전동휠체어 건강보험 적용, 가장 최근인 발달장애인법 제정까지. 배 총장이 소개한 법·제도적 성과는 총 7개로 정리됐다.

장애인당사자운동의 성과를 발표하는 장애물없는생활환경시민연대 배융호 사무총장.ⓒ에이블뉴스

■비극적 죽음, ‘이동권 운동’ 성과=“여러분들 대표적인 운동이죠, 장애인 이동권 보장 운동입니다.” 2001년 1월22일, 오이도역에서 설치된 수직형 휠체어리프트에서 장애인이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수직형 휠체어리프트를 지탱하던 로프가 떨어지며 그대로 추락한 것.

승강설비로 인정되지 않았던 휠체어리프트, 업체의 자체기준으로 설치된 ‘어설픈’ 설비였지만 정부는 오리발만 내밀며 책임을 피하기 급급할 따름이었다.

“장애인을 더 이상 죽이지 말라!” 장애인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는 독했다. 지하철 선로를 점거했고, 1인 시위, 노숙, 버스타기까지. 3년간에 걸쳐 투쟁 끝에 성과를 낳았다. 서울시의 저상버스 도입, 장애인콜택시 도입, 지하철역사의 엘리베이터 설치까지. 가장 큰 결실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증진법’이었다.

배 총장은 “이동편의증진법 제정은 그동안 금단구역으로 남아 있던 대중교통 등 교통수단에 대한 장애인의 접근을 보장하게 됐으며, 계획만 있던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의무화하는 계기를 만들었다”며 “장애인 이동군은 복지부에서 할 일이라고 팔짱만 끼고 있던 당시 건설교통부를 정책과 시행에 끌어들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주최의 ‘2015 장애인당사자대회 컨퍼런스’ 모습.ⓒ에이블뉴스

■“차별 당연하지 않도록“ 목소리 통해 바꾸다=“장애인을 차별하지 말라, 장애인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제도를 바꾼 대표적인 사례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을 빠뜨릴 수 없다.

복지시설에서의 장애인 폭행, 감금은 우리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했다. 국내의 기존 장애관련 법률들도 장애인 차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는 있으나, 구체적인 조치는 없었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열망에 불이 켜질 수밖에.

2001년 부산에서의 전국 국토 순례대행진을 시작으로, 2003년 전국 50여개 장애인단체가 결집한 ‘장애인차별금지법제정추진연대’가 결성됐다.

배 총장은 “장애인차별금지법안을 만들기 위해 당사자와 단체 활동가 등이 구성된 법제정위원회를 구성하고 토론회와 공청회 등을 거쳐 법안을 만들었다”며 “점거 농성, 거리투쟁 등의 노력 끝에 2007년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회고했다.

이후에도 장애인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활동지원제도를 만들어냈던 장애인자립생활운동, 부모들의 눈물이 담겼던 장애아동지원법 및 발달장애인법 제정 운동, 장애인권리협약 참여까지. 당사자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소중한 제도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토론자로 나선 장명숙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 나사렛대학교 인간재활학과 우주형 교수,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에이블뉴스

■“장애인당사자 정책참여 제도화 필요”=장애인당사자운동, 수많은 성과를 남겼음에도 많은 숙제가 남겨져있다. 장애인 관련 정책의 경우, 여전히 정부의 의지에 따라 참여가 결정되기 때문에 당사자의 정책참여를 제도화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다.

배융호 총장은 “장애인 관련 정책의 결정과정에서 반드시 당사자가 일정 수 이상 참여하도록 제도화돼야 한다. 복지부외 다른 부처의 경우 당사자의 참여를 고려하지 않고 있으며 허울뿐인 의견수렴인 공청회 뿐”이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장애 관련 정책의 수립에 반드시 당사자가 일정 수 이상 참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배 총장은 “신체적, 정신적 손상 외에도 장애인당사자로서의 인식과 당사자성을 갖춘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며 “장애인정책의 경우 전문적 지식 보다는 현장경험이 매우 중요하다. 학력 위주의 전문적 지식과 함께 풍부한 경험이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명숙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는 ‘장애인에 대한 모든 결정에는 당사자의 반드시 보장돼야한다‘고 당사자의 결정권과 선택권을 명백히 하고 있다. 참여를 결정하는 결정권자중에 당사자가 있어야 한다”며 “참여한 당사자들이 뜻을 모아 제도화될 때 인재가 더욱 육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사렛대학교 우주형 교수는 “정책결정과정에 대한 당사자들의 참여 제도화는 당연히 돼야 한다. 인재육성을 통한 당사자성 강화도 중요하다”면서도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의 경우 부모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성과다. 당사자주의를 부모나 가족으로 폭넓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장애인당사자운동의 재도약을 위해 공부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을 함양과 함께 인문학 공부, 기록의 정리가 필요하다는 것.

이 사무총장은 “한국 장애인운동계에서는 벽에 전시용으로 사용하고 있는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의 정신에 대해 공부하고 분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며 작년 유엔 장애인권리위원회에서 권고안을 냈는데 아직 많은 장애인들이 잘 모르고 있다. 숙지하고 공부하는 지침서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함께 열린 장애인복지대상활동가상 시상식에서는 한국근육장애인협회 정영만 회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장애인노동상담센터 조호근 센터장,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이승일 법인지원부장, 누리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경은 사무국장, 프라엠에셋 최재성 지점장 등 총 5명이 수상했다.

3일 서울 백범김구기념관 컨벤션홀에서 열린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주최의 ‘2015 장애인당사자대회 컨퍼런스’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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