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더위에 지친 국토대장정 대원들이 다리 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한국DPI

8월 20일, 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대구DPI 서준호 사무국장과 경찰의 길 안내로 약 1시간 정도의 시내행군을 통해 오전 10시 대구시청에 도착하였고, 약 30여명의 대구지역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함께 대구지역 결의대회를 기자회견 형식으로 약 30분간 진행한 다음 곧바로 다음 목적지인 칠곡을 향했다.

오후 1시 30분에 덕산교회에 도착하여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하였고, 전동휠체어 충전을 위해 2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교회건물 옆에 노인대학으로 이용되는 공간을 목사님이 내어 주셨다. 짧은 시간이지만 1시간 정도의 단잠을 자는 대원들도 있었다.

국토대장정을 하는 우리가 안쓰러우셨는지 목사님은 길을 떠나는 우리에게 3가지 정도의 마술을 보여주시면 지친 몸을 달래주셨고,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기도도 해주셨다. 다시 길을 떠나는 대원들 등을 일일이 두들겨 주시면 파이팅도 잊지 않으셨다.

구간대원들이 빠지고 전체일정을 소화하는 본대원들만 남아서 그런지 행군의 지금까지의 평균 4킬로미터 속도의 두 배에 달하는 8킬로미터로 달렸고, 경찰의 호위가 적극적이어서 그런지 31킬로미터를 단숨에 달렸다.

원래 5시 30분 도착을 목표로 하였으나 1시간이나 단축된 4시 30분에 도착하였다. 칠곡군 장애인복지과 과장이 몇 명의 직원과 함께 우리를 맞이해 주었으며, 숙소로는 칠곡군 장애인협회로 정해져 짐을 풀었다.

주출입구 경사로를 통해 건물 안으로 진입하면 턱이라고는 하나도 없었고, 체력단련실과 교육장, 자원봉사자실, 장애인 전용목욕탕이 갖춰져 있었다. 잠은 아무데서나 편한 데로 잘 수 있도록 개방해 주었고, 드럼 세탁기가 있어서 몇몇 대원은 밀린 빨래도 할 수 있었다.

8월 30일로 예정된 수원까지는 구간대원의 결합 없이 본대원들 만의 행군이다. 지난해 제1기 국토대장정 대원이 4명이나 있고, 13일부터 지금까지 8일 동안 행군에 익숙해진 소수 정예부대라 큰 걱정은 없다.

왠만한 궂은 날씨도 모두 이겨냈다. 문제는 졸음이었다. 오늘도 몇 번의 전동휠체 끼리 충돌이 있었고, 일부대원은 화물차들이 씽씽 달리는 안쪽 차선 쪽으로 돌진하다 급하게 되돌아오는 위험천만의 경우가 상당히 있었다. 평가회의 때도 이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아무쪼록 아무런 사고 없이 완주했으면 한다.

8월 21일, 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문경희 대원의 전동휠체어가 최고속도에 문제가 있어 어젯밤에 내려온 한국DPI 황석재 총무국장이 가져온 이영석 대장의 휠체어로 갈아타서 그런지 행군이 속도를 붙이기 시작했다. 4번 국도를 이용했는데 칠곡경찰서 소속 경찰차가 대열의 앞뒤에 서서 에스코트했다.

초반 국도상황은 완만한 경사로 이루어진 평이한 길이었으나 워낙 경사길이 길어서 핸드싸이클을 운전하는 이권희 대원의 체력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이력이 났는지 제법 잘 버티는가 싶었다. 사실 서울 등 중부권은 폭우로 고생한다지만 이곳은 땡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날씨로 땀이 너무 많이 나서 휴식도 자주 가졌다.

오후 2시에 남김천 휴게소를 출발하여 최종 목적지인 김천제일교회를 향했는데 500미터 정도 전진하니 굉장히 가파른 경사의 고개가 버티고 있었다. 문제는 이권희 대원이었다. 근육통에 시달리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스프레이 파스로 버틸 만큼 어깨가 좋지 않은 상태여서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행군대열의 순서를 일시적으로 변경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우선 선두차량이 앞을 서고 바로 뒤이어 이권희 대원이 출발하고 상당한 거리를 띄우고 본대가 출발함으로써 초반 속력을 유지한 채 고개의 일부를 오른 다음 사력을 다하자는 것이었다. 휴게소 앞이 약간 내리막길이라 오히려 역방향으로는 이동한 다음 그 내리막길을 내달려 초반 가속도를 붙인 후 오르막길을 올랐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했고 그 거리도 족히 1킬로미터는 더 되어 보였다. 한참 뒤에 출발한 본대원의 전동휠체어가 금방 이권희 대원의 뒤에 붙었다. 모두들 파이팅을 외치며 응원했고, 이권희 대원도 ‘악’소리를 연거푸 내며 사력을 다했다. 그렇게 20분 정도의 사투 끝에 고개의 정상에 올랐고, 그 후부터는 내리막길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이권희 대원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었다.

물론 오르막보다는 수월한 것이 사실이지만 내리막길에서는 핸드싸이클의 속도가 전동휠체어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에 대열의 맨 뒤에 위치하여 그 속도를 맞춰야 하므로 계속 브레이크를 잡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됐건 구간대원이 빠진 상황에서 본대원만 행군하고, 성능 좋은 전동휠체어로 교체까지 하였으며, 이권희 대원이 다행히 오르막 고개를 생각보다 빠르게 행군함으로써 실제 예정된 시간보다 2시간이나 일찍 김천역에 도착하였다. 잠시 쉬고 있는데 다른 지역과는 다르게 지나가는 시민들이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몇 분은 직접 우리 대원들에게 다가와 국토대장정의 취지와 목적에 대해서 묻기도 했고, 반시설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해 짧은 토론도 벌어졌다.

처음에는 장애인을 보살펴 주는 시설은 많아지는 것이 좋은 게 아닌가라고 생각했던 시민들이 시설이 가지는 근본적인 문제와 자립생활에 역행한다는 것, 사회와 격리되고 분리됨으로써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 인권유린의 사각지대에 내몰리는 등의 장애인 시설의 한계에 대한 설명을 들은 후 잘못 이해하고 있었다며 반시설에 대해 동의해 주었다. 이러한 것이 국토대장정의 힘이고 성과가 아닐까 생각해보는 순간이었다.

내일은 영동까지 39킬로미터를 행군해야 한다. 전동휠체어 충전에 온 신경이 다가 있다. 중간 중간 충전이 잘 되고 있는지 점검할 계획이다. 중부지역의 폭우가 내려온다는데 오후쯤이면 만나게 될 것 같다. 뙤약볕에 맞서며, 폭우까지 뚫고 가야하는 힘든 행군이 예상된다.

또 추풍령 고개도 넘어야 한다. 모두가 내일이 기대도 되지만 걱정도 되는 모양이다. 모두들 서로를 응원하기 위해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내심 한마디 한마디가 비상하다. 아무쪼록 행군시간에 상관없이 최종 목적지까지 무사히 행군할 수 있도록 우리 대원들 모두가 대장을 중심으로 합심하여 어려운 상황을 잘 이겨 넘기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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