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반시설과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9명의 장애인이 ‘국토대장정’을 시작했다. 이들은 23일간 부산을 시작으로 창원, 울산, 대구, 대전, 인천 등을 거쳐 오는 9월 4일 서울에 입성하게 된다. 전국을 돌며 장애인 시설의 문제점과 인권침해·유린 등의 현실과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을 위한 ‘장애인자립생활보장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릴 예정이다. 국토대장정을 공동주관한 한국장애인연맹(DPI)의 자료협조를 받아 긴 여정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편집자주>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14일 김해시청 앞에 도착했다. ⓒ한국DPI

8월 14일, 작성자: 이권희 (서울장애인인권포럼 대표) 대원

이번 국토대장정에 참여한 대원들의 각오와 결의는 힘든 행군 속에서도 얼마나 일찍 기상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25킬로미터를 행군한 첫날의 피로가 만만치 않을 테지만 둘째 날인 오늘은 어제보다 더 이른 오전 5시에 대부분 기상하였다. 화장실이 좁아 세면부터 하는 대원들이 있는가하면 순서를 기다리며 이부자리를 정리하는 대원들로 새벽부터 북적였다. 30분 정도의 식사시간과 기념촬영을 끝으로 28킬로미터의 행군에 돌입하였으나 첫 번째 난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행군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에스코트를 담당한 경찰 측이 원래 예정되어 있던 경로(주최 측이 실사한 경로)보다 약 5킬로미터 단축되는 경로가 있는데, 약간의 문제는 숙소인 김해시장애인복지관을 나오자마자 50여 미터 전방에 있는 자그마한 고개하나를 넘어야 한다는 제안이었다.

이권희 대원의 핸드싸이클이 약간 힘들 것이 예상은 되었으나 자그마한 고개라 하여 쉽게 수용하였는데, 문제는 여기서 부터였다. 일단 자그마한 고개가 아니라 상당한 경사와 길이의 대단한 고개였고, 그런 고개가 한 개가 아니라 총 3개였으니 말 그대로 산을 넘는 것이었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한 결과 산 정상은 해발 약 270미터...허걱...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산은 넘었으나 결국 이권희 대원은 탈진하여 위문숙 대원의 차량운전 역할과 바꾸어 둘째 날의 경로를 완주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무리한 경로로 변경되었을까? 사전에 예정되었던 경로는 답사 이후 대규모 공사관계로 길이 고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안전사고의 위험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자칫 대원들의 군기를 잡기 위해 일부러 어려운 코스로 변경한 거 아니냐고 의심한 대원(이권희 대원 혼자였지만)이 일으킬 뻔 한 내부 반란이 잠재워지는 순간이었다.

점심을 해결하며 해발 270미터 등정에 방전된 전동휠체어 배터리를 충전했다. 오후 3시 45분경 다시 행군을 시작하여 2시간 만에 최종 목적인 숙소에 도착했는데 광대현 마을회관이었다. 조금 좁긴 했지만 경로당으로 사용하는 잘 꾸며진 방과 샤워실, 주방, 시원한 에어컨이 오늘의 피로를 씻어 주기에 충분했다.

예정대로 저녁 9시 평가회의 진행했으며, 대장님과 몇몇 대원들은 이번 국토대장정에서 가장 중요한 울산에서의 거점투쟁에 대한 구체적 전술회의 12시까지 가졌다.

힘든 일정이긴 했나보다. 전동휠체어마다 기종이 다르긴 하지만 중간에 2시간이라는 충전시간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총 4번의 배터리 방전으로 대원이 대열에서 벗어났고, 뒤따라오던 스텝차량이 두 번을, 마지막 도착점에 도착한 후 다시 돌아가 대원을 실어오기를 두 번했다. 내일은 또 어떤 사연들이 생길까? 정말 대원들이 다치는 사고만 아니었으면 하고 기원한다.

행군일지를 쓰고 있는 지금 새벽 1시 30분. 하늘은 금방이라도 비를 뿌릴 것처럼 먹구름으로 가득하지만 우리 대원들은 내일을 걱정할 새도 없이 연신 코를 골아댄다. 내일은 창원으로 들어가 용지공원에서 천막치고 노숙을 한단다. 씻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누군지는 몰라도 마지막 샤워장을 이용하는 물줄기 소리만이 자그마하게 새어나온다.

미리 내려온 12일부터 이제 3일째 동침하는 우리 대원들! 서로 나누는 대화도 많이 늘었고, 자주 농들도 주고받는다. 서로를 격려하기 위해 힘들지만 외치는 파이팅과 반시설 구호 소리는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난 확신한다. 23일 전체 일정을 결의한 본 대원들이 사고 없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완주할 것이며, 국토대장정 종료 후에도 이 나라에서 시설정책이 간판을 내리고 단 하나의 시설도 남지 않을 그날까지 투쟁을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행군일지를 마감하는 지금 칼잠이라도 잘 자리 하나가 없다. 밖에 쳐진 간이 천막으로 가서 이놈의 모기들에게 반시설 투쟁의지로 가득한 뜨거운 피를 나눠가져야겠다.

아참! 오늘의 최종 행군거리는 예정된 28킬로미터에서 6킬로미터 줄어든 22킬로미터였다.

국토대장정 대원들은 궂은 날씨에도 서로 격려하며, 이동하고 있다. ⓒ한국DPI

이날 국토대장정 본 대원 뿐만 아니라 지역 단체의 회원들도 함께 이동했다. ⓒ한국D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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