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부터 본격 시행된 장애인 활동지원제도. 이는 혼자서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이 어려운 장애인에게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그 가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제도로, 많은 장애인들이 집 밖을 당당히 나설 수 있도록 뒷 받침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하루종일 누워서 생활하는 와상장애인이나 호흡기 장애인 등 일부 장애인에게는 24시간 도움을 받을 수 없는 활동보조인이 가족의 부담을 덜 수 없다는 우려의 시각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30년간 수발…고달픈 생활의 연장=30년전 사고로 인해 사지마비 판정을 받은 지체1급 장애인 박민호(가명·62)씨는 수화기를 통해 긴 한숨을 토했다. 항상 그의 곁에서 모든 생활을 돕고 있는 아내와의 생활이 너무나 고달프다는 것.

경기도 평택에 거주하는 박씨는 사고로 인한 경추신경 손상으로 전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중증으로, 혼자서는 앉아서도, 손가락을 굽힐 수도 없다. 그런 그를 위해 아내 장모씨는 30년간 신변처리는 물론, 24시간 그의 곁에서 함께하고 있다.

그로 인해 변변찮은 수입 없이, 장씨의 잠깐 잠깐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어렵게 유지하고 있는 상황. 이마저도 세월이 흘러 중년 막바지에 다다른 장씨에게는 경제활동이 어려워 전세보증금으로만 생활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생활을 보조해준다는 활동지원제도의 시행은 환영할 만한 일이었을까? 판정을 위해 찾아온 국민연금공단 직원은 그에게 하루 4시간정도의 서비스 시간을 받을 수 있다고 제시했다. 하지만 활동보조인이 떠난 나머지 20시간은 부인의 몫. 부담을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4만원 가량의 자부담으로 인해 생활만 더 힘들어질 지경에 박씨는 서비스를 거절했다.

박씨는 “30년동안 아내가 수발을 하고 있으니 경제활동을 못하고 있다. 예전에는 잠깐잠깐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나이가 들어 이제는 일할 때도 없고 전세보증금으로 어렵게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며 “전세보증금으로 인해 기초수급자 등록이 불가하다. 이 상태로는 길바닥에 나앉을 지경”이라고 토로했다.

또한 박씨는 “가족이 활동보조인이 받는 70%정도만이라도 받아 활동하게 된다면 조금이나마 생활을 이어갈 수 있다. 24시간 활동보조는 절대 불가할 것 같으니 차라리 가족이 활동보조인을 할 수 있게 보완한다면 남들에게 아쉬운 소리도 하지 않아도 되고, 생활이 좀 나아지지 않냐. 내 아내가 활동보조인 교육을 받아 다른 사람의 수발을 들고, 다른 사람이 나의 수발을 든다는 게 참 모순인 거같다”고 덧붙였다.

■원칙적 ‘반대’, 하지만 예외도 있어=장애계에서는 원칙적으로 가족에게 활동보조를 받는다면 오히려 장애인 자립을 막기 때문에 반대 하지만 일부 특수한 경우에 한해서는 좀 더 유연함을 둘 필요성도 있다는 의견을 갖고 있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연합회 관계자는 “활동지원제도가 사회참여, 가족 부담 경감을 위한 제도로, 가족이 하게 된다면 당초 법의 취지도 맞지 않고, 부정수급문제도 갈등이 생길 수 있다”며 “장애인 당사자들이 부모로부터 활동보조를 받을 수 있다면 과연 사회참여가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가족을 활동보조인으로 허락했을 시,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단말기 체크를 할 때 어떤 서비스가 있었는지, 이동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명확히 알 수 없을뿐더러, 가족에 의해서 본인이 직접적으로 서비스를 선택하는 부분에서 갈등이 생길 수 있다는 것.

이어 그는 “특수한 장애, 호흡기나 와상장애인 등 사회참여가 기본적으로 불가능한 장애인에게는 제한적으로 필요한 부분은 있다. 특히 호흡기 장애인 같은 경우는 대인 밀착형 서비스가 필요해 가족의 도움이 불가피하게 수반돼야 한다”며 “그런 특수한 경우에 있어서는 특례조항을 둬서 법의 해석을 유연하게 할 필요성은 있다”고 덧붙였다.

한 IL센터 관계자는 “자립생활을 위해 만들어진 활동보조인이 가족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면 자립생활을 막는 길이 될 수 있다”며 “오히려 가족 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서비스를 받으면 마음 놓고 요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당장 가족을 이용하는 건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장애인 당사자에게 좋지 못한 일 이 될 것”이라면서도 “정말 가족이 함께해야할 일부 장애인에게 있어서는 조금은 유연해질 필요도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활동보조인을 가족이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소득보장제도가 되 있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관계자는 “소득보장 문제가 잘 돼있지 않아 활동지원제도로까지의 문제로 이어지는 것 같다.연금 정책이 활성화 돼야 하는 문제지, ‘활동보조를 함으로써 소득을 받겠다’라는 것은 이념에 맞지 않다”며 “가족의 부담 문제는 현재 정부에 24시간 활동보조를 해달라고 계속적으로 요구하지만 현재 안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만약 와상일 경우, 3개월 정도 와상증세를 보일 때 가족이 수발할 수 있도록 하고, 상태가 조금 호전되면 그 후에는 다른 활동보조인을 두는 정도의 예외조항은 필요한 것 같다”며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성은 있는 거 같다”고 덧붙였다.

■'현물급여' 취지 벗어나…정부, “고려 안해”=이에 정부는 활동지원제도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으로서, 가족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현물급여인 법의 취지와는 맞지 않다고 답변했다. 이는 일부의 시각일 뿐, 현 제도를 통해서 혜택을 받는 부분이 크다는 것.

복지부 관계자는 "활동제공기관이 없는 도서벽지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에게는 가족이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제한적으로 기준을 뒀다. 전염병에 감염됐거나, 천재지변 등 불가피한 경우에 대해서만 허용하고 있는 상태"라며 "현물급여인 서비스가 가족에게 서비스를 하게 되면 현금급여로 바뀔 수 있다. 현재로서는 가족에게 활동보조인을 허용하는 것은 고려되지 않는 부분이다"이라고 답했다.

이어 그는 "제도의 취지는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24시간 누군가 돌봐야하는 장애인이라고 해도 일부시간을 다른 분이 도와줌으로 인해 휴식시간, 개인 취미활동을 확보할 수 있다"며 "물론 가족이기 때문에 더 잘할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다른 활동보조인이 옴으로써 객관적으로 당사자를 볼 수 있고, 마음 놓고 보조인에게 욕구를 요구할 수 있다. 정말 외부인의 손길이 닿으면 안 되는 대상자가 아니고서야 굳이 가족에게 서비스를 받게 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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