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급 시각장애인 전순득씨는 나이제한에 걸려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겨 일상생활조차 영위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밝히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에이블뉴스

"활동보조서비스가 끊긴다고 한 달 전쯤 통보를 받았는데, 한 달 동안 다른 대책을 마련하려고 했지만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아무런 준비도 못했어요. 막상 서비스가 끊기고 나서는 꼼짝없이 집안에 갇힌 상태로 한 달 동안 소금과 밥으로 버텼어요."

1급 시각장애인 전순득(65)씨는 월 180시간의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아 외출과 건강관리를 하며 살아왔는데, 올해 2월부터 만 65세가 됐다는 이유로 활동보조서비스를 받지 못하고 집안에 갇혀서 살아야만 했다.

쌀이 떨어져 굶다가 버티다 못해 위험을 무릅쓰고 혼자서 밖으로 나왔고, 겨우 관할 동사무소와 구청을 찾아가 자신의 처지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전씨는 월 27시간의 서울시 가사간병도우미서비스를 받아 일주일에 한 두 차례 먹을 거리와 생필품을 사러나갈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월 27시간은 하루 평균 1시간도 되지 않는 시간으로 전씨가 자립생활을 영위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독거특례를 인정받아 월 180시간을 지원받아오던 전씨에게는 노인이 됐다는 이유로 자립생활을 그만하라는 정부의 조치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전씨는 노인이 됐기 때문에 노인요양보험 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데, 시각장애인의 경우 현행 노인요양보험체계를 통해 서비스 판정을 받기란 매우 어려운 실정으로 서울시의 가사간병도우미서비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노인요양보험 서비스를 받는다 해도, 현행 보험체계에서는 장애노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종전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수준으로 서비스 시간을 배정받는 것은 힘들다.

4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계동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장애인사회서비스 권리확보와 공공성쟁취를 위한 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장애인활동보조 연령제한철폐 촉구 기자회견'에서 당사자 증언에 나선 전순득씨는 목청을 높여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전씨는 "어릴 적 호적기재가 잘못돼 지금 내 실제 나이는 58살이에요. 활동보조서비스를 이용하면 얼마든지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어요. 지금은 외출도 쉽지 않아 몸이 여기저기 아파요"라고 호소했다.

4일 오전 11시 보건복지가족부앞에서는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 연령제한폐지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에이블뉴스

전씨와 같은 사례들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증장애인 활동보조서비스의 나이제한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목소리가 크게 제기되고 있다. 일상에서부터 사회생활에까지 많은 부분에서 활동보조서비스에 의지해야하는 중증장애인들에겐 활동보조서비스에 비해 자부담 비율이 높고 일상생활 지원시간도 줄어든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전씨와 같은 시각장애인의 경우, 거동에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유로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판정에서 1급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등 장애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박홍구 소장은 "대상제한으로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반쪽자리 제도로 전락한 활동보조서비스가 이마저도 나이제한으로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가로막고 있다"며 "가족들의 부담이 늘어나 어쩔수 없이 노인요양시설로 들어가야 하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나이가 들면 장애가 사라지는 것도 아닌데 장애인에게 활동보조를 끊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장애인단체들은 기자회견을 마치고,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에게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의 나이 제한 폐지를 촉구하는 서한을 전달했다.

다음은 서한 전문.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님께 드립니다.

대한민국의 복지를 관장하는 보건복지가족부 장관님,

복지는 후퇴하지 않는다고 배웠는데 대한민국의 복지는 그렇지 않습니까?

복지가 인간의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 할 때, 복지의 후퇴가 개인에게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올 것은 필연일진대, 왜 복지부는 장애인복지를 받던 사람을 강제적으로 그보다 불리한 노인복지체계로 전환시켜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까?

사람을 위한 행정이라고 배웠는데 대한민국의 행정은 그렇지 않습니까?

행정상으로는 작은 오차일지 모르겠으나 장애인의 생명이 달려있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장애인복지와 노인복지 행정이 사람을 제도에 끼워맞추려 개인의 피해를 외면한다면 누구를 위한 복지행정입니까?

65세가 넘거나 되어가는 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장애인활동보조를 받으며 생활하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서비스가 끊깁니다. 장애를 가진 노인은 일반적 노인보다 더 많은 서비스를 필요로 한다는 것은 상식일진대, 복지부는 왜 장애인을 인정하지 않고 노인복지체계로 강제적으로 전환시키고 있는 것입니까?

장애인으로 장애인활동보조 이용하며 어렵사리 살아가다, 65세가 되니 하루아침에 갑자기 “당신은 장애인이 아닌 노인”이라며 활동보조가 완전히 끊기고, 수 십 시간이나 부족하고 수 십 만원이나 자부담이 비싼 노인요양보험을 신청하라고 합니다.

애초에 간단한 행정상의 문제였다면 해법도 간단할 것입니다. 65세 이상의 장애인에게 선택권을 주거나, 기존 서비스가 유지되도록 하는 단 한 줄의 장애인활동보조 지침상의 개정이면 될 것입니다.

행여 복지부가 장애인의 존재와 장애인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고, 복지행정을 개인의 삶보다 우선으로 여기고, 장애인의 삶의 고통을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긴 문제가 아니길 바랍니다.

혹은 최근 장애인장기요양제도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보여지듯, 행여 장애인활동보조의 개악을 준비하면서 벌써부터 장애인의 삶을 후퇴시키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묻고 싶습니다.

문제가 어디에서 기인했건 지금 당장 시정되어야 합니다. 사람의 목숨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사망사건만 목숨이 달린 문제가 아닙니다. 가족들의 부담으로 시설에 보내지고, 가정이 파탄나고, 하루종일 집밖을 못나와 갇혀사는 삶, 그 모두가 더 없이 중대한 사람의 목숨이 달린 문제들인 것입니다.

장관님! 잘못된 행정으로 인해 고통받는 장애인의 현실을 직시하시기 바랍니다.

활동보조서비스를 절실히 필요로 함에도 예산상의 혹은 행정상의 이유로 받지 못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부족한 서비스시간에 자신의 삶을 끼워맞추어야 하는 중증장애인들이 있습니다.

그나마 있던 서비스를 잘라내는 권위적 행정이 아니라, 필요로 하는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 권리로 보장되는 장애인활동보조, 서비스 대상과 시간을 확대하여 장애인의 삶을 개선시키는 제도를 간절히 원합니다.

2009년 8월 4일에 드립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 장애인사회서비스 권리확보와 공공성쟁취를 위한 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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