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서울시장에게 탈시설 대책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기자회견을 벌이고 있는 중증장애인들. ⓒ에이블뉴스

"이제 더 이상 시설에서는 살기 싫습니다. 10년, 20년 시설에서 보낸 세월이면 충분합니다.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사회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함께 살고 싶습니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면 양곡리에 위치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수 십 년을 살아온 중증장애인 8명이 “더 이상 시설에서의 삶을 거부한다”면서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면서 살겠다”고 서울시내로 나왔다.

이들은 바로 시설생활 21년의 주기옥(63)씨, 시설생활 28년의 방상연(38)씨, 시설생활 22년의 김동림(47)세, 시설생활 20년의 김진수(60)씨, 시설생활 27년의 하상윤(37)씨, 시설생활 19년의 김용남(51)씨, 시설생활 6년의 황정용(51)씨, 시설생활 26년의 홍성호(56)씨.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사회복지시설비리척결과탈시설권리쟁취공동투쟁단, 석암재단생활인인권쟁취비상대책위원회 등 3개 단체는 4일 오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8명의 자립생활 선언을 알렸다.

주기옥씨 등 8명은 이날 오전 시설에서 나오면서 가져온 냉장고, 장롱, 빨래걸이, 옷보따리 등의 이삿짐을 마로니에공원 한 켠에 쌓아두고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이들은 당장 잘 곳이 없어 마로니에공원에 천막을 치려했으나 경찰이 막고 나서자 스티로폼을 깔고 노숙을 하기로 결의했다.

이와 관련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단체는 “5일 오후 2시 탈 시설 장애인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긴급 진정을 제기하고, 서울시 장애인복지과 관계자들을 만나 자립생활 대책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경찰들에 의해 둘러싸인채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 ⓒ에이블뉴스

"축하하고 싶지만 축하할 수 없는 현실 안타까워"

이날 기자회견에는 많은 장애인단체 및 인권단체 활동가, 정당 관계자 등이 찾아와 시설 장애인들의 자립생활을 위해 조속한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박경석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시설에서 나온 분들은 지금 거주지를 옮길 주소가 없어 활동보조서비스나 정착금을 신청할 수가 없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어도 우리는 수용시설이 아닌 지역사회에서 살고자 투쟁한다”고 자립생활에 대한 장애인들의 강한 의지를 알렸다.

또한 “오세훈 서울시장은 서울시내 38개 시설을 대상으로 장애인의 탈시설 욕구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탈시설 계획을 세우겠다고 했는데 전수조사 결과가 나온 후에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며 “조사 결과 장애인의 70%인 2,100명의 장애인이 주거· 활동보조가 지원되면 지역사회에서 살고 싶다고 했는데 이에 대한 아무 대책도 마련하지 않는 것은 범죄”라고 규탄했다.

최용기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공동대표는 “10년, 20년을 시설에서 무기력하게 살아야 했던 동지들이 오늘 시설에서 나왔다. 이들이 무척 자랑스럽다”며 환영인사를 건넨 후 “하지만 이들이 지역사회로 나왔다고 자립생활이 가능한 것이 아니다. 이동권·노동권·주거권 등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는 이제 시설에서 나온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당당하게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투쟁해야 한다”고 외쳤다.

신언직 진보신당 서울시당위원장은 “한편으로는 자기존재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시설에서 나온 여러분들이 존경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아무 대책도 없는 현실이 마음 아프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연대한다면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믿는다. 진보신당도 잘못된 행정을 펼치는 서울시와 정부에 대한 투쟁에 함께 하겠다”고 다짐했다.

장시정 사회당 서울시당 위원장도 “우리가 함께 열심히 투쟁한다면 이 사회는 장애인과 비장애인들이 함께 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며 “서울시는 장애인에게 이동권·교육권·활동보조서비스·주거권 등을 제공해야 하는데도 시설에 가둬놓고 있다. 장애인의 정당한 권리를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힘을 실었다.

안형진 민주노동당 서울시장 장애인위원회 위원장은 “시설에서 나온 여러분들이 앞으로 얼마나 힘들지를 생각하면 탈시설을 축하한다는 말을 못 하겠다”며 "정당한 자립생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함께 싸우겠다”고 외쳤다.

장애인들이 행복한 도시는 시설이 없는 도시라고 전하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의 피켓. ⓒ에이블뉴스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개 장애인단체가 시설에서 나온 8명의 장애인들과 함께 5일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서울시의 탈시설·자립생활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에이블뉴스

4일 김포시 석암베데스다요양원에서 나온 8명의 장애인들이 노숙농성에 돌입하며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한편에 시설에서 가져온 짐을 쌓아두었다. ⓒ에이블뉴스

자립생활 선언에 첫 반응 보인 경찰 “불법 집회” 운운하며 해산 요구

중증장애인 8명의 자립생활 선포에 대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인 곳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이날 오전 중증장애인들이 시설에서 타고 나온 차량이 마로니에공원에 도착하자 채증을 시작해 장애인단체 활동가들과 충돌했다. 이 과정에서 장애인단체 활동가 1명이 연행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또한 경찰은 이날 기자회견장 주변을 전경 100여명을 동원해 둘러싼 채 “피켓을 들고, 플래카드를 걸고, 구호를 외치는 것은 기자회견이 아니라 집회”라면서 “즉각 해산하라”고 3차례에 걸쳐 경고방송을 하기도 했다.

이 같은 경찰들의 행위에 대해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기자회견마저 불법집회로 몰아세우려 한다”며 비난을 쏟아냈다. 시원시원한 랩과 노래로 공연을 펼친 실버라이닝의 한낱씨는 “이명박 정부 들어 여러 불허방침과 광고가 부쩍 늘었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서울시의 복지정책에 대한 광고를 자주 볼 수 있는데 광고 속 해맑게 웃고 있는 사람들 속에 장애인은 없다. 장애인들은 시설에 있기 때문”이라며 “좋은 시설에서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놓고 일하는 사람들은 장애인의 현실에 관심이 없다”고 꼬집었다.

배여진 인권단체연석회의 활동가도 경찰들을 가리키며 “구호를 외치고 피켓을 들면 불법집회라고 하는데 그럼 묵묵히 서있기만 하는 것이 기자회견인가”라고 비판했다. 이어 “오세훈 시장은 시설에 20, 30년 갇혀 살고 있는 장애인들의 삶에 대해 얼마나 고민했는지 묻고 싶다. 돈이 없고 빽이 없으면 국민도 아닌가”라고 비판하며 “모든 시설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자립생활을 할 때까지 우리도 연대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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