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장애인연합 유영희 상임대표. ⓒ에이블뉴스db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라마구’가 쓴 ‘눈먼 자들의 도시’를 읽었다. 어느 날,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 백색실명은 무섭고 빠른 속도로 온 도시에 전파되고, 그로 인해 인간이 얼마나 황폐해지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그 중 크게 공감했던 문장 하나를 소개 하고자 한다.

‘가장 심하게 눈이 먼 사람은 보이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말은 위대한 진리에요.’ 밑줄을 그으며 ‘보이는 것을 외면하는 것은 죄’라고 중얼거렸다.

여성장애인의 삶은 열악하다. 비장애여성과의 비교는 그만두고, 같은 장애인이지만 장애남성과의 격차는 심각하다.

2014년 보건복지부의 장애인실태조사에 의하면, 교육정도에서 남성의 중졸 이하는 45.4%였다. 반면 여성장애인인의 72%가 중졸이하의 학력이라고 응답하였다. 월평균 개인 수입에서 남성장애인은 128만6000원인데, 여성장애인은 52만3000원에 불과하다. 2016년 대한민국 1인 가구 최저 생계비인 64만9932원에도 못 미치는 빈곤상태에서 많은 여성장애인들이 삶을 유지하고 있다.

이 금액으로 문화생활은 물론 건강한 삶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장애를 가진 여성이라는 이중차별이 빚은 결과는, 생애주기별 삶의 전 영역에서 차별과 폭력을 감수하며 살게 만들었다. 배우지 못한 설움은 평생의 한이 되었고, 생애주기마다 다가오는 고충을 털어 놓을 곳이 없어 스트레스와 우울의 늪에 빠져 살았다.

한 줄의 빛처럼 정부는 여성장애인교육사업(보건복지부)과 어울림센터(여성가족부)를 운영해왔다. 당사자 단체 혹은 복지관에서 여성장애인의 기초학습능력 증진과 생애주기별 고충상담 및 사례관리를 위해 일을 했다. 교육 사업은 인건비 한 푼 없이 오로지 사업만 진행했다. 어울림센터는 3명의 종사자가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으며 여성장애인의 사회참여와 생애주기별 고충상담을 위해 일해 왔다.

2013년부터 폐지와 통합, 예산삭감이라는 정부의 방침이 여성장애인을 흔들었다. 유사중복이라는 언급은 급기야 2015년 양 부처의 사업을 보건복지부로 통합할 것을 결정하고야 말았다. 위로라면 사업의 규모가 축소되지 않도록 하며, 여성가족부의 사업 내용을 담아내고 교육사업의 수행기관에도 인건비를 지급하라는 것이었다.

2017년부터 보건복지부는 여성장애인역량강화지원센터를 운영하겠다고 한다. 2016년 말로 두 사업을 모두 종료하고 신규로 가되, 두 사업이 지녔던 고유의 목적 사업을 다 담는 것이 센터가 해야 할 주요 사업이다. 문제는 예산이다.

예산은 전혀 증액되지 않고 여성장애인역량강화지원센터를 운영하려다 보니 기존 어울림센터의 예산이 대폭 줄고, 3인의 종사자를 2인이나 1인으로 줄여야한단다. 교육 사업을 수행하던 기관 입장에서 보면 잘 된 일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초학습교육을 주로 하던 것에 생애주기별상담 및 사례관리까지 해야 한다면 마냥 좋아할 일도 아니다. 기존 어울림센터에서 3인의 종사자가 하기에도 힘들었던 사안에 기초학습교육까지 담으려면 보통 일이 아니다.

수년 동안 최저임금에 불과한 처우를 견디며, 여성장애인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하던 종사자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인원 감축에 대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담당부처를 바라보며, 그 자신이 같은 입장이라도 그럴까 싶은 물음표가 생긴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어울림센터 종사자들을 위한 비상구는 없다. 여성장애인들은 권리를 찾기 위하여 맨주먹으로 벽을 두드려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

여성장애인이 제대로 뿔났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6조와 제24조, 장애인복지법 제7조와 제9조 2항,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에 관한 법률 제 34조, 양성평등법 제 33조가 있어도, 법은 법으로서 효력이 없다. 2016년, 120만에 달하는 여성장애인을 위한 여성장애인교육사업과 어울림센터 그리고 출산지원금을 아우르는 총 사업비는 15억 5900만원에 불과했다. 국회에 제출된 ‘2017년 정부예산안’은 9800만원만 증액이 되었다.

이 흔들림이 종내는 완전 폐지로 가는 건 아닌지 불안하다. 아니 무섭다. 그래서 우리는 여성장애인관련 사업 예산증액과 여성장애인역량강화지원센터를 제도화 할 것을 요구한다.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여성장애인지원법이 절실히 필요하다.

여성장애인의 삶이 이토록 열악함을 알면서도 평균치만 논하며 보지 않는 것은 횡포다. 정부든 국회든 연구자이든 그 누구이든, 여성장애인의 삶의 문제가 이렇듯 빤히 보이는데 이를 외면하는 것은 힘없는 자를 향해 자행되는 범죄다.

‘눈먼 자들의 도시’에서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이 백색실명에 접어든다. 평안하고 안전한 삶에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만날는지 아무도 모른다. 어느 날 류머티스라는 질병을 만나 12번의 수술을 겪으며, 지체1급 여성장애인이 되어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게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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