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연이어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 성폭력 피해자는 점점 늘어가고 있고, 피해자 증인 과정에서 모욕감과 수치심 등 2차 피해도 발생 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법무부는 법령상 규정된 성폭력 피해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충분한 증언이 될 수 있도록 법관들을 대상으로 '성폭력 피해자 증인 보호을 위한 재판 가이드북' 마련하고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이경환 변호사가 '여성·아동·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증인 보호를 위한 재판 가이드북(안)'을 발표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법무법인 태평양 이경환 변호사는 지난 24일 ‘여성·아동·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증인 보호와 지원 방안’ 토론회에 참석해 ‘여성·아동·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증인 보호를 위한 재판 가이드북(안)(이하 가이드북)’을 공개했다.

이 가이드북은 성폭력 피해자 증인 지원방안과 성폭력사건 담당 법관의 적정한 재판진행과 양형을 위한 지원 방안을 모색하고자 만들었다. 법무부는 이날 나온 각 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참고해 최종 가이드북을 확정한 뒤 각 재판부에 배포할 계획이다.

가이드북은 ▲성폭력의 이해 ▲피해자 증인에 대한 보호조치(신뢰관계인 동석제도 포함) ▲증인신문으로 인한 2차 피해 방지조치 ▲성폭력 범죄의 양형 ▲기타 피해자 보호 조치 등 총 5개 장으로 나뉜다.

신뢰관계인 피해자와 동석 허용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성폭력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성폭력특별법)이나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아청법), 형사소송법에는 ‘동석’의 의미를 구체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아 재판부에 따라 신뢰관계인이 증인 바로 옆에 있을 수도 있고, 방청석에만 있도록 하는 경우도 있다.

이 변호사는 "신뢰관계인이 증인 바로 옆에 앉지 못하고 방청석에만 있을 경우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의 목적인 심리적 안정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수 있다"며 "신뢰관계인을 증인 바로 옆에 동석시킨다고 해 증언이 왜곡되는 것은 아니고, 필요한 경우 소송지휘권을 행사해 신뢰관계인의 발언을 금지시키거나 등석을 불허할 수도 있다. 증인이 원하는 경우 신뢰관계인이 바로 옆에 동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신뢰관계인 동석 제도는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을 돕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가 어떤 사람을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지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보다 피해자의 의사를 더욱 존중할 필요가 있다.

이 가이드북에는 가능한 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 해 형사소송규칙 제84조의 3 제 1항 ‘그 밖에 피해자의 심리적 안정과 원활한 의사소통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인정해 신뢰관계인 동석을 허용해야 한다고 명시해놨다.

특히 아동·청소년 피해자나 장애인 피해자의 경우, 사건에 따라 부모나 가까운 가족이 동석하게 되면 피해자가 동석자의 눈치를 보거나 동석자가 바라는 대로 진술을 하려고 하기때문에 증언 내용이 왜곡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사전에 부모보다는 상담원이나 사회복지사, 선생님 등과 같은 제 3자가 신뢰관계인으로 적절하다는 점을 미리 알려 뒤늦게 부모의 동석을 배제해 피해자가 신뢰관계인 없이 증언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 외에도 피해자와 부모가 함께 증인으로 소화된 경우, 같은 증인들끼리 증언 시 법정에 같이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증인으로 소환하지 않은 제3자를 신뢰관계인으로 동석하도록 안내해주는 것이 적절하다. 재판진행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신뢰관계인을 반드시 1명으로 한정하지 않고 여러 명의 동석을 허용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도 있다.

이와 관련 이 변호사는 “신뢰관계인의 역할은 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므로 원칙적으로 인정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신뢰관계인의 역할이 재판진행 및 실체적 진실 발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며 “제반 사정을 고려해 소송지휘권의 적절한 행사를 통해 필요한 경우 신뢰관계인이 발언권을 신청해 발언할 수 있도록 하되 증언의 내용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을 고지하고, 신뢰관계인의 개입이 재판진행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면 발언을 금지하거나 동석을 불허하는 등의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적 장애 있는 피해자 특성 감안, 증인신문

■증인신문으로 인한 2차 피해 방지조치=이 변호사는 “피해자들이 증언을 한 뒤 가장 많은 불만을 호소하는 내용이 사건과 관련이 없어 보이거나 인격적으로 비난하는 내용의 증인신문이 이뤄지는데도 검사는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고, 판사도 전혀 제지하지 않는 점이라고 말했다”라면서 “피해자의 증언에도 영향을 미쳐 실체적 진실 발견이 저해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성기삽입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합의에 대한 성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사건에 대해 증인에게 사정 여부를 질문하거나, 성적 접촉 당시 흥분을 했는지에 대한 여부를 질문하는 것이 포함된다.

아청법이나 대법원예규 및 규칙 등에서 증인의 인격권, 인권, 명예 등이 침해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점이나 형사소송규칙에 의한 모욕적인 신문 등이 제한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증인신문의 내용을 주의 깊게 검토하고 재판부 스스로 그와 같은 신문을 하지 않도록 해야 된다.

단, 재판부가 직권으로 지나치게 자주 피고인 측의 증인신문을 제한할 경우 중립성 및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으므로, 증인 본인이나 검사, 법률조력인, 신뢰관계인 등이 증인신문 내용에 대해 이의제기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방식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또한 아동이나 정신적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경우 진술능력이 충분하지 못한 특성을 감안해 증인신문을 할 필요가 있다고 규정했다.

질문에 대한 이해능력이 부족한 증인에게 하나의 질문을 길게 하거나, 여러 개의 질문을 한꺼번에 하거나 어려운 법률용어를 사용하는 등의 경우 피해자가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답변을 하게 돼 결과적으로 증언의 신빙성이 부족하게 되는 결과가 야기할 수 있다는 것.

증언과 관련된 질문방식에 대해서는 증인의 특성에 맞춰 질문을 수정하도록 지휘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규정했다.

신문이 길어질 경우 휴정을 하거나 증인에게 휴식이 필요한 지 물어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증인이 아동이거나 장애가 있는 경우 본인 또는 신뢰관계인에게 어느 정도의 신문 이후 휴식을 가지면 좋은지 미리 확인해두는 것도 좋다.

특히 법률조력인 제도는 도입은 되었으나 공판절차 출석권, 피해자의 소송행위에 대한 포괄적인 대리권 등으로 권한이 추상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상황.

이에 대해 이 변호사는 “법률조력인은 법률에 구체적인 권한의 규정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공판 진행시 법률조력인의 출석은 허용하되 발언이나 의견제시를 하지 못하게 한다면, 아청법에 규정된 출석권의 의미가 무색하게 될 뿐만 아니라 제도의 취지 자체가 몰각되는 결과가 발생될 수 있다”며 “공판출석을 허용하고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할 경우 피해자가 원하는 경우 바로 옆에서 동석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입법취지에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법의 중립성 및 공정성이 의심될 경우 법률조력인인이 피해자를 대리하며 합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면서 이의제기를 한다면 재판부로서 양측의 의견을 숙고해 신문의 허용, 불허 등을 결정함으로써 중립성 및 공정성에 대한 불필요한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가이드북(안)에 대해 토론자로 참석한 각계 전문가들은 필요성과 방향에 대해서 동의했다. 이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신뢰관계인 제도에 대한 내용에서 보완해야 할 내용을 제시했다.

이 교수는 “피해자의 신청이 있으면 신뢰관계인 동석을 원칙적으로 허용하는 방향으로 운영해야 하지만 만약 신뢰관계인이 신문에 부당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는 경우에는 법원이 경고조치를 취한 뒤 신뢰관계인에게 퇴정을 명하는 방식으로 실무운영을 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검토 통해 대법원 규칙·예규 등에 반영

대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심의관 정상규 판사는 “연구영역 결과물 중 현재의 재판실무상 규범화할 필요가 있는 부분은 추가적인 검토를 통해 대법원 규칙, 예규 등에 반영하겠다”면서 “현재의 재판실무에서 실현될 수 있는 부분은 법관연수나 세미나 등에서 법관들 사이의 토론과 인식공유를 통해 재판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인권국 박지영 여성·아동정책팀장도 현재 법무부에서 진술조력인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성폭력 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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