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하는의사회를 통해 장애인주치의사업에 참여한 명광자씨 모습.ⓒ에이블뉴스

2017년 12월 시행을 앞둔 ‘장애인 건강권 및 의료접근성에 관한 법률’ 속 가장 뜨거운 감자는 제18조 ‘장애인주치의제도’다. 법률 제정 당시 의료계의 심한 반대를 겪었으며, 시행 후에도 큰 지지를 받을지는 미지수다. 장애인들이 일차의료기관에서 옆집 아저씨처럼 건강 이야기를 하는 건 그저 꿈일까? 현재 정부가 TFT를 통해 구체적인 법의 내용을 채워가는 가운데, 민간에서 먼저 ‘장애인주치의사업’ 첫 발을 뗐다.

“사업을 시작할 때는 정말 막연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장애인주치의사업이 장애인의 건강을 지키는데 중요한 기반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1년간의 시범사업을 마친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이하 한국의료사협연합회) 장애인주치의사업단 임종한 단장은 뿌듯함을 표했다. 물론 장애인들도 ‘대만족’이었다.

“자신과 눈을 맞추며 이야기한 유일한 의사였다”, “이 선생님은 우리 형편을 너무나 잘 아시고 우리 일이라면 밤낮이 없어요. 제가 가족들한테도 못 하는 부탁을 이 선생님은 언제든 들어주세요.” “오늘은 행복 간호사님과 사소한 얘기를 나눴다. 무언가 얘기를 하고 나니 속이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한국의료사협연합회는 25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우리 마을은 모두가 건강해요’ 장애인주치의사업 1차년도 성과보고대회를 가졌다.

한국의료사협연합회의 장애인주치의사업은 사회공동모금회가 지원하는 2014년 기획 어젠다 중심의 성과관리모델 개발 시범사업으로 선정, 지난해 6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진행했다. 서울, 경기, 강원, 전남, 전북, 부산의 6개 권역 총 1300명을 대상으로 14개 사업 참여단위가 함께 했다.

장애인들이 병의원 이용 및 진료를 받는데 가장 불편한 점은 바로 의사들의 인식. 이에 장애인주치의는 단지 약과 검사 처방을 내는 치료중심이 아닌 장애인들이 실제 생활에서 건강을 지키도록 세심을 배려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장애인주치의사업에는 건강코디네이터의 역할도 큰데, 등록부터 사례관리까지 장애인의 건강을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인물이다. 개인의 건강필요를 찾아내 주치의와 연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인주치의사업 절차는 장애인이 주치의사업을 등록하면 기초조사를 통해 건강코디네이터와 주치의가 사례관리회의를 거쳐 우선순위와 개인별 목표를 설정한다. 이후 방문, 유선 등을 통해 진료, 상담, 건강관리 등을 진행하는 것. 물론 그에 대한 평가와 목표도 재수립된다.

한국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연합회 오춘희 총괄실장이 장애인주치의사업 1차년도 사업에 대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구체적으로 예방활동, 치료 및 진료상담, 주치의와 건강코디네이터의 일상적 사례관리, 가족 및 당사자 정서지원, 장애인감수성교육 등을 주로 다뤘다.

장애인주치의를 만나본 장애인당사자들의 반응은 역시 ‘만족’이었다. 병원으로 가는 물리적 거리가 부담스러워, 장애인식이 없는 의사의 행동에 상처받아 등 각각의 상처로 병원을 멀리하던 당사자들에게 큰 웃음을 안겨준 것.

부산 영도에 거주하는 지체장애 2급 명광자씨는 이동의 부담감으로 장애인치과를 알아도 엄두를 내지 못했다. 틀니 사용상의 깊은 통증과 어려움이 있었지만 파키슨병을 앓고 있는 남편과 왕복 3시간의 외출은 너무 큰 모험이었던 것.

그러던 명씨, 행동하는의사회 장애인주치의사업을 통해 밝은 미소를 되찾았다. 방문간호를 통해 스케일링과 잇솔질 교육을 받았으며, 그 후 장애인치과로 연계, 전반적인 치주치료와 보철치료를 받은 것.

“그동안 불편함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그냥 참기만 했습니다.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이야기 해본 적 없습니다. 그러던 내 삶은 장애인주치의 사업을 만나 웃을 일이 많아졌습니다. 주위 사람들이 제 표정이 밝아졌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사단법인 노들의 경우 지체·뇌병변장애인 62명을 대상으로 방문진료 53회, 방문간호 8회, 내원진료 310회 등을 진행했다. 특히 ‘의료는 인권이다’라는 주제의 시민한마당을 통해 다수의 시민들에게 장애인주치의제도를 알리는 기회가 됐다.

박누리 건강코디네이터는 “30대 남성분 박모씨가 장애인주치의사업을 신청하셨다. 집에 누워 계셔서 몸이 굉장히 굳어있는 상태였다. 이번 사업으로 처음 침 치료를 받게 된 것"이라며 "지속적인 방문으로 심적 안정감이 매우 크신 것 같다"고 말했다.

장애인주치의사업에 참여한 사단법인 노들 박누리 건강 코디네이터, 장애인주치의사업에 대한 연구를 진행한 한림대학교 최용준 교수.ⓒ에이블뉴스

이날 한림대학교 최용준 교수가 발표한 ‘장애인 주치의 사업 연구용역’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가정 방문을 통해 주거 환경, 주 돌봄자와의 관계 등을 파악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처방이 가능해 높은 만족도를 받은 것.

특히 최초로 당사자들과 만나는 건강 코디네이터의 역할이 컸다. 메신저나 문자서비스 등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복지 서비스의 요구를 파악하고 사업 팀 구성원에게 정보를 제공한 것. 연구에 참여한 장애인은 건강 코디네이터를 두고 “세상과 연결하는 끈”이라고 표했다.

차트만 보고 이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했던 의료진들의 입장도 바뀌었다. 연구 속 구성원 A씨는 “한 사람과 꾸준히 만나면서 그 사람의 사는 것도 이해하고 방문을 하게 된다”며 “평소보다 자세하게 이야기도 듣고 하니까 의료적인 면에서도 도움이 되고 이후에도 관계를 맺게 된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의료사협연합회 오춘희 총괄실장은 "지난해 장애인건강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고 2년간의 시간이 있다. 그 시간동안 시행령을 만들고 다듬는 시간이 있고, 시범사업들도 진행될 것"이라며 "장애인의 건강을 중심을 둔 다각적인 협력 관계를 통해 살아있는 법이 만들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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