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명장애인생활센터에서 일하며 웃음을 되찾은 세론씨.ⓒ에이블뉴스

“천사같던 세론이가 5년동안 집에 가둬져 있다보니까 우울증까지 왔어요. 발달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죠.”

광명장애인생활센터에 들어서자 웃음꽃이 활짝 핀 직원들의 표정과 깔깔대는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 중심에는 바로 25세의 한 청년.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홍세론씨(25·지적1급)다.

센터 직원이기도 한 세론씨는 벌써 이곳에서 정규직으로 일한지 3개월이 다 되간다. 오전 9시30분이면 어김없이 출근해 바닥청소부터 물걸레질까지 마친 뒤, 오후 6시30분까지 센터 직원들의 사무보조를 돕고 있다.

기자가 방문한 그날도 세론씨는 쓰레기봉투를 사용하기 쉽게 접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옆에는 세론씨가 제2의 엄마로 생각한다는 활동보조인 김연숙씨가 작업을 돕고 있었다. 세론씨는 김씨를 항상 ‘엄마’라고 부르며 잘 따르는 편이다.

김씨는 “세론씨가 센터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면서 활동보조를 시작하게 됐다. 다운증후군이 천사병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것처럼 세론씨는 항상 밝고 모든 사람을 좋아한다”며 “처음에는 말을 못알아들었지만 대화를 자꾸 유도하니까 이제는 거의 다 알아듣는다”고 말했다.

취재날인 5월14일 생일을 맞아, 센터직원들에게 축하노래와 선물을 받았다.ⓒ에이블뉴스

김씨는 세론씨에게 수시로 질문을 한다. “세론씨, 몇 살이에요?”. 이에 세론씨는 “7살이요”라며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그 모습에 한바탕 웃던 김씨는 “세론씨, 좋아하는게 뭐예요”라고 묻자 세론씨는 “엄마 귀여워”라며 동문서답에 가까운 답을 하며 활짝 웃었다.

하루종일 대화를 즐겨한다는 김씨와 세론씨의 대화는 항상 웃음만 가득하다. 묻는 질문에 ‘동문서답’을 하는 세론씨는 언제부터 그래왔던 걸까? 김씨는 “세론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5년동안 집에만 있었기 때문에 동문서답도, 학습내용도 다 까먹은거 같다”고 답했다.

지난 2007년 안산에 위치한 한국선진학교에서 졸업장을 받은 세론씨는 당당히 사회로 나가 사무실에서 일하는 비장애인 또래와 달리, 헤진 트레이닝복을 입고, 집안에서만 생활했다. 그를 받아주는 직장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학창시절 합주부로 생활했고, 우수상과 표창장을 받아 모범이 돼왔던 세론씨지만, 그것은 학교안에서 뿐이었다. 사회는 조금 ‘특별한’ 세론씨를 맞을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식당을 하는 세론씨의 부모님은 아침일찍 아침밥과 점심으로 먹을 빵과 우유를 식탁에 올려놓고 잠든 세론씨를 집안에 방치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력으로 무너져가는 가정을 지키고자하는 부모님의 가슴은 타들어갈 수밖에 없던 것.

세론씨의 어머니 박정희씨는 “아침마다 식탁에 빵과 우유를 올려놓고 집을 나왔지만 마음만은 편치 않았어요. 그 집 안에서 세론이는 대화도 못하고, 혼자 쓸쓸히 음악만 들었어요”라며 “혼자 있는 그 낮이 너무 싫어서 밤낮이 바뀌어서 생활을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갈곳이 없어 집안에 방치됐던 세론씨의 생활은 5년이나 계속됐다. 학교에 다닐때도 항상 밝고, 천사같았던 세론씨는 말수가 줄었고, 그로인한 스트레스가 그를 심하게 압박했다. 손톱도 갈라지고, 웃음이 많았던 세론씨의 얼굴이 울상으로 변했다.

“세론이는 예전에는 항상 웃으면서 지내던 아이였어요. 누구나 보면 낯도 안가려서 항상 웃게 만들던 아이였죠. 근데 혼자 방치되고 나서는 엉엉 우는 적이 많아요. 한번 울면 통제가 안돼더라구요. 근데 저는 왜 우는지 알지도 못할 정도예요.”

남들과는 특별한 세론씨는 어릴때도 별난 아이였다. 어머니 정희씨와 나들이를 갈때면 모든 사람을 붙잡고 “안녕하세요. 우리엄마는 박정희예요”라고 인사하는가 하면, 위험한 장난을 치는 유치원생에게는 “그러면 안돼!”라고 호통을 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그런 아이들과 주변 사람들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호기심과 피하려는 눈길 때문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어릴때 세론이가 모든사람 붙잡고 인사를 해서 창피했어요. 어디 다른 곳 가서 우리아이는 장애인이라고 말도 못할 정도로 편견이 심해서 내자신 스스로 부끄러워할 때가 많았었어요. 아직 (세론이의)동생은 마음을 열지 못해서 세론이를 무시하고 그런 경우가 있는데, 세론이랑 잘 놀아주기도 하고 그랬으면 하는게 엄마 바램이죠.”

<위>세론씨의 든든한 두 엄마, 어머니 박정희씨(오른쪽)와 활동보조인 김연숙씨(왼쪽) <아래> 학창시절 받은 표창장을 자랑하는 세론씨.ⓒ에이블뉴스

혼자 방치된 세론씨가 직장을 갖게된 것은 아버지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다. 세론씨의 아버지는 전단지를 돌리는 일을 하다, 센터를 알게 됐고, 아버지의 부탁으로 세론씨는 직장도, 친구도 얻었다.

현재 센터 마스코트로 자리잡을 정도로 세론씨는 완벽히 적응했다. 얼마전 장애인의 날 행사에는 댄스를 선보여 상으로 라면박스도 받기도 했다.

함께 근무하고 있는 센터 전현정 팀장은 “세론씨가 처음에는 적응이 안되서 힘들어했는데 지금은 열심히 근무하고 있다. 사실 중증장애인 자립생활센터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중증장애인을 고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발달장애인도 충분히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좀 알아줬음 좋겠다”며 “발달장애인이 초중고 과정이후 갈 데가 없는데 그 후에 직업학교로 이어져 취업까지 알선되는 서비스가 고려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론씨가 한살 한살 나이를 먹을수록 정희씨의 마음도 심란해진다. 바로 혼자 남겨질 세론씨 때문이다. 발달장애인이 나오는 방송을 볼때면 가슴이 아프다는 정희씨는 “내가 죽고 세론이가 혼자 남을때 누가 저렇게 돌봐줄지 걱정된다. 세론이 동생은 돌보지 않을 것 같고, 아이의 노후보장까지 완벽히 되는 서비스가 마련되는 것을 봐야 눈이 감겨질 것 같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희씨는 “세론이는 센터에서 일하고 있지만 아직도 집안에서 방치되고 있는 발달장애인들이 너무나 많아요. 지체장애인일 경우는 사고하는 데 아무런 이상이 없어서 직업도 갖고 결혼도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결혼도 못하고 일도 못한다”며 “고등학교 이후 직업을 가질수 있게 평생교육이나 직업연계가 확실히 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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