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팩스 주택국 건물. ⓒ샘

세계에서 가장 장애인 제도가 발달된 나라 미국의 수도 워싱턴 디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하나 있다. 이곳의 복지제도는 미국에서 몇 번째쯤 될 것 같으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최고라고 대답할 것이다. 부자는 물론이고 가난한 장애인들도 사회복지 기금을 받아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이라고... 그러나 대답은 전혀 아니다가 맞다.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 디시로 이주해 미 전국을 대상으로 사회복지제도에 대한 등급을 매긴 순위를 전해 듣고 충격을 받았었다. 50개 주 중에서 49위, 밑에서 두 번째다.

직접 데이터를 확인한 것이 아니어서 신빙성에는 문제가 있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49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속기간이 길고, 제도가 합당하지 않고, 또한 혜택이 제한 적이거나 터무니없이 부족한 것이라는 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최근 주택국에 다녀왔다. 다녀가라는 연락을 받고 행여나 해서 간 것이다. 장애인 주택을 신청해 놓은 지 6년째 맞고 있다. 이제 됐을까 하는 희망에 직원에게 서류를 조사해 보라고 했더니 아직 멀었다고 한다. 도대체 6년 씩이나 기다려도 멀었다니... 꽤 큰 건물 빌딩에 적지 않은 직원들... 장애인이 주택 신청해 6년 씩이나 기다릴 정도의 무능함을 보이면서 혈세만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오늘처럼 절실하게 생각이 든 적도 없다.

"무언가 잘못된 것 아닌가요?"

내가 물었다.

"잘못된 것 없습니다."

필요 이상 강조하는 것을 보면 잘못되도 한참 잘못돼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주정부 보험이 있는 장애인들에게 매 5년마다 한 번씩 휠체어를 지급한다.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신청하고 3개월만에 휠체어를 손에 넣을 수가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 디시에 와서 1년을 훨씬 넘는 기간을 기다려야 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에 있을 때는 사소한 고장은 그 자리에서 고치거나 부품이 없을 때는 며칠이면 고쳐 졌지만 워싱턴 디시는 달랐다. 한번 신청하면 간단한 고장도 3개월 이상이 걸리는 경우가 허다했다.

대학에서 장애학을 들을 때 어떤 장애인이 사회 보장 기금 한달에 3백달러(30만원 가량)를 받아 어떻게 사느냐고 한탄을 했다는 기사를 들고 나와 토의를 한 적이 있다. 그의 말이 믿기지가 않았다.

캘리포니아에 살 때 비록 장애에 대한 차이는 있지만 보통 매달 9백 달러가 넘는 금액을 받고들 살고 있었으니까 3백 달러를 받는 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를 않았다. 직접 와서 확인해 보니 3백 달러 정도는 아니었으나 캘리포니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령액을 받으며 살고 있었다.

가장 많은 시간을 기다린 것은 자동차 운전이었다. 기자의 경우 장애가 심한 편이어서 일반 장애인 운전 학원에서 배우는 것이 불가능하다. 정부에서 허락을 하지 않는 것이다.

정부에서 지정한 장애 운전 스페셜리스트로부터 배워야 하는 데 그런 사람이 미국에 한명 밖에 없다. 택사스에 거주하는 자동차 운전 강사를 만나는 데만 1년이 걸렸다. 그나마 장비를 제대로 챙겨오지 않았다며 돌아간 후로 5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다.

주택국의 안내지들. 안내만 요란했지 거의 쓸데 있는 프로그램이 없다. ⓒ샘

간병인 제도 또한 불합리하다. 캘리포니아에서는 가족을 간병인으로 채용할 수가 있다.

기자의 경우 캘리포니아에 거주할 때 아내를 간병인으로 채용해 편안하게 도움을 받고 정부로부터 급료를 지급받았다.

미국 평범한 가정에서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간에 간병을 하고 페이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이나 배우자가 밖에 나가 직업을 가져야 하기 때문에 간병인을 별도로 채용해야 한다.

타인을 채용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불편한 점이 없지 않다. 워싱턴 디시는 가족이 간병하는 것을 철저하게 막고 있었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외부에서 채용해야 하는 것이다.

처음 사회복지사를 만나 간병인이 필요해 서류를 작성하다 여성 간병인을 보내 준다는 말에 기겁을 해서 거절했다. 간병인은 목욕까지 담당하는 데 감히 여성에게... 그럴만한 용기가 내게는 없었다.

‘내가 몸이 불편할 때 남성 간병인을 썼었는데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여성인 사회복지사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돌아갔다.

어쩔 수 없이 아내가 다른 일을 해야 하고 내가 좀 힘들더라도 부끄러움 때문에 간병인을 거절한 죄(?)로 스스로 해야 되는 일이 많아 불편을 겪으면서 바람직하지 못한 제도가 마냥 원망스럽다.

워싱턴 디시가 이처럼 장애 복지 제도가 발달하지 못하는 이유를 경제적으로 여유있는 장애인이 많은 탓으로 돌리고 있다.

복지제도를 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기득권이 없는 계층의 사람들이 정부를 향해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데 아무래도 다른 주보다는 자립한 장애인들이 많아 복지제도 개선의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직도 다수인 미자립 장애인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다.

* 샘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 미상원 장애인국 인턴을 지냈다. 현재 TE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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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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