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윤 전국장애아동보육시설협의회 고문. ⓒ에이블뉴스

장애인 등급제 폐지에 대한 주장이 강하게 전개되고 있다. 왜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주장은 앞의 기고에서 다양하게 사례를 통해서 제시한 바 있다.

이 외에 또 다른 주장은 이렇게 제시할 수 있다. 현행의 장애인등급제는 20여년전에 만들어졌다. 그동안 사회는 급변했고, 장애인 복지 현장도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 과거에 보이지 않는 모습들이 많이 등장했다.

예를 들면 20년전에 “그룹홈(Group Home)”은 광주 엠마우스 복지관에서 자체사업으로 시행했던 낯선 일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장애인복지시설 중의 하나로 당당하게 자리매김했다.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관한 법률의 제정은 그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다. 아울러 장애인 당사자와 부모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 아마 2005년 이후의 많은 제도들은 장애인 당사자 혹은 부모가 노력한 결실이라고 해도 부정할 수 없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이러한 움직임 뒤에는 장애인당사자와 부모가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인식했다. 그리고 그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나름대로 전문적인 지식을 소유했다. 지식을 바탕으로 정책을 만들고, 그 정책을 반영하기 위하여 행동할 수 있는 방법도 터득했다. 나아가 다양한 조직들이 연대를 통하여 목소리를 모아내는 힘과 저력을 증명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障碍)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라는 점,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사회의 책임이라는 점을 뼈저리게 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장애인등급제 폐지에 대한 장애인 당사자들의 주장은 그 힘을 얻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장애인등급제 폐지를 위한 전제인 장애의 정의에 대해 장애인복지법을 근거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현재 장애인 등급제를 심사하기 위하여 제시된 근거를 보면 “신체적 정신적 기능”에 대한 부분을 심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면 장애인복지법에서 장애란 어떻게 정의되어 있는가?

제2조(장애인의 정의 등) ① “장애인”이란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자를 말한다. ②이 법을 적용받는 장애인은 제1항에 따른 장애인 중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장애가 있는 자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장애의 종류 및 기준에 해당하는 자를 말한다.

1. “신체적 장애”란 주요 외부 신체 기능의 장애, 내부기관의 장애 등을 말한다. 2. “정신적 장애”란 발달장애 또는 정신 질환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한다.

제3조(기본이념) 장애인복지의 기본이념은 장애인의 완전한 사회 참여와 평등을 통하여 사회통합을 이루는 데에 있다.

제2조 1항을 살펴보면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오랫동안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자”로 정의되어 있다. 여기에서 살펴보아야 할 것은 두가지다. 신체적 정신적 장애와 일상생활 혹은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점이다. 이 문구는 마치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이루어진 것 같다. ‘일상생활 혹은 사회생활에서 상당한 제약을 받는 것’이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인한 것으로 표현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만으로 일상생활 혹은 사회생활에서 제약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마비(下肢痲痺)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는 불편하다. 그러나 휠체어를 제공하면 이동에 있어서 불편함을 상쇄된다. 그러나 휠체어가 제공되어도 편의시설이 제공되지 않으면 불편함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신체적 장애에는 두가지가 제공되어야 한다. 재활보조 장비와 사회적 편의시설이다. 물론 여기에는 장애에 대한 사회의 긍정적인 태도와 학업·노동에서의 공평한 기회 제공, 쉼과 여가 혹은 문화생활 영위에이 기회 제공 등이 이루어지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사회적 편의시설과 기회제공에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장애인복지법 제2조에 의한 장애의 정의는 수정되어야 한다. 설령 수정하지 않는다 하여도 과연 누가 일상생활 혹은 사회생활에 제약을 제공하느냐에 대한 부분을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를 규명하려고 하면 결국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장애를 정의할 때 “장애를 장애로 만드는 것은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아니라 일상생활·사회생활에 제약을 가하는 사회”라는 부분을 강조해야 마땅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복지법 제2조 2항에는 단지 “신체적 장애, 정신적 장애”만이 기술되어 있을 뿐 사회적 장애에 대한 부분을 빠져있다는 것을 읽을 수 있다. 이는 장애인복지법 제2조 1항의 내용을 2항이 좁게 정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하여 장애인 등급제 역시 장애인복지법 제2조 2항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인하여 1항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자체 모순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기에 제4조의 장애인의 권리에 있어서 1항, 2항의 내용은 단지 문자로 존재할 뿐이다. 3항에서 “우선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내용 역시 사문화되기 쉬운 조항으로 전락한다. 그 이유는 2조 2항은 단지 신체적 정신적 장애에 국한되어 있을 뿐, 사회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만들어가는 제약 부분에 있어서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제4조(장애인의 권리) ①장애인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으며,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는다. ②장애인은 국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정치·경제·사회·문화, 그 밖의 모든 분야의 활동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③장애인은 장애인 관련 정책결정과정에 우선적으로 참여할 권리가 있다.

제5조(장애인 및 보호자 등에 대한 의견수렴과 참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장애인 정책의 결정과 그 실시에 있어서 장애인 및 장애인의 부모, 배우자, 그 밖에 장애인을 보호하는 자의 의견을 수렴하여야 한다. 이 경우 당사자의 의견수렴을 위한 참여를 보장하여야 한다.

장애인복지법 제2조 2항이 제대로 정의되지 않으면 제4조, 제5조의 권리와 의견수렴과 참여 부분에 있어서 사회가 제공하는 장애 부분에 대한 내용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를 심사할 때 단기 신체적 정신적 기능 부분에 대한 의사의 진단과 심사가 중요할 뿐이며, 이에 따라 장애인 등급표 역시 신체적·정신적 기능만을 어설프게 표기할 뿐이다.

장애인이 이 사회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고통을 겪는 것은 이미 자기화 되어 있는 신체적 정신적 장애라 불리는 부분 때문이 아니다. 사회가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제약 즉 편견, 편의시설의 부족, 차별화된 구조, 공정하지 않는 기회의 제공, 사회가 제공하는 제약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장애인 개인에게 책임을 지우는 비정상적인 의사결정구조와 책임을 지우는 부분들 때문에 장애인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교통이나 이동권을 포함한 일상생활을 비롯하여 교육·여가·노동·문화·종교생활 등 각 부분에 있어서 장애인이 장애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제약을 한번 생각해 보라. 바로 이 부분을 고려하지 않고, 이 부분에 대한 사회적 서비스 제공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지 않는 장애인등급제는 폐지되어야 한다. 바로 이러한 제도가 장애인을 더욱 장애인으로 낙인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회적 서비스, 사회적 장애 부분을 고려한 장애인등록심사기준이 마련돼야한다. 이것이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하고, 새롭게 장애인문제를 바라보아야 할 관점(right perspectives)이 된다. 또, 장애인등급제의 핵심은 장애의 정의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이 글은 이계윤 전국장애아동보육시설협의회 고문이자 장애인서비스 지원체계 개편 기획단 ‘장애판정·등록분과’ 위원이 보내온 기고문입니다. 에이블뉴스는 언제나 애독자 여러분들의 기고를 환영합니다. 에이블뉴스 회원 가입을 하고, 편집국(02-792-7785)으로 전화연락을 주시면 기고를 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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