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소주 한잔하기 위해 동네 참치체인점에 갔답니다. 주방장은 단골 손님인 우리에게 <교수님 오셨다>고 반기는 인사를 했고, 술 한 잔씩 마신 우린 무심코 담배를 피워 물었습니다. 그 때 옆자리에 앉아 있던 50대 취객이 <교수라는 사람이 공중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냐!>며 반말로 시비를 걸어 왔습니다. 비록 금연구역은 아니었지만 <교수라는 사람이...>라는 말 때문에 꼼짝 못하고 곤욕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주방장이 우리에게 시비 걸고 있는 손님에게 <사장님! 오해 하신 것 같습니다. 이 분은 대학 교수님이 아니라 참치학교 교수님입니다. 제게 참치 다루는 기술을 가르쳐 준 참치교숩니다>라고 말했지요. 그러자 시비 걸던 그 손님 갑자기 부드러운 목소리로 <아! 그래? 대학 교수가 아니라 참치교수란 말이지? 그럼 담배 피워도 돼!>라고 합디다. 한편으로는 기가 막히고 한편으로는 부끄러웠습니다. 졸지에 난 참치 교수가 되고 만 것입니다.

그 일 이후 내 자신에 대해 참 많은 걸 생각했습니다. 교수에게 그 얼마나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는지에 대해 생각하면서 두렵기도 했습니다. 모든 직업에는 그 직업에 따른 도가 있고 직업윤리가 있다지요. 백정도 개백정은 아니하고, 염을 해도 처녀염은 하지 않는다지 않습니까? 그럼 교수라는 직업에 요구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신문에 방송에 대서특필된 <국립대학 초유의 교수임용비리사건!> 말로만 듣던 참으로 부끄러운 일들이 바로 우리 대학에서 일어났습니다. 우리 대학,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저는 알고 있습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저는 보았습니다. 겉으로 표현은 뭐라고 하던 사심과 야심 때문입니다. 사심과 욕심을 부리면 모두 망한다고 심사를 거부하고 간절하게 요청해보기도 했지만 허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원망보다, 이런 일을 막아내지 못한 자신의 무력함에 한없는 비애를 느낍니다.

사회정의를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이를 실천하는 사회사업가로서, 내 자신의 정체성이 지금처럼 혼란스러웠던 적이 없습니다. 인간적 의리와 사회적 정의 사이에 심각한 딜레마도 겪습니다. 그러나 분명코 나는 사회적 책무성과 윤리성을 요구받지 않는 참치교수가 되긴 싫습니다. 먼저 진정 대의와 정의를 위해 살려고 애쓰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며 반성합니다. 그리고 비록 고달프고 손해를 보더라도 사회적 책임과 정의를 실현하는 교수가 되겠다고 소망하면서 누군가 사술(邪術)로 정의를 어지럽힌다면 단호히 맞서겠다고 다짐합니다.

참치교수가 되기 싫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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