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 시작전, 감독관들이 학생들에게 시험방법과 유의사항에 대해 전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

뇌성마비학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르는 서울 경운고등학교. 이른 새벽 찾은 경운학교는 여느 고사장과 같은 후배들의 응원소리도 요란한 꽹과리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장애학생들의 열정이 느껴져 오히려 더 활기차게 느껴졌다. 장애수험생들을 위한 다양한 배려도 인상적이었다.

이곳에서는 총 29명의 장애인 수험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당초 36명이 응시했으나, 4명은 수시모집에 합격하고, 나머지 3명은 결시해 총 7명이 줄었다. 전국적으로는 지난해보다 63명 늘어난 총 731명의 장애인 학생이 응시하고 있다.

▲미래를 향한 긍정적 마인드를 엿보다=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오전 7시, 이건희 학생(19·지체장애)이 어머니와 함께 수능시험장에 가장 먼저 들어섰다. 언론사 카메라 플래시가 일제히 터지자 다소 놀란 듯 했으나 이내 환한 미소로 기자들의 질문에 응답했다.

이건희 학생은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 꿈이다. 나름의 노력은 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많아 걱정스럽다. 시험을 잘 봐서 목표하는 대학에 들어가 그동안 뒷바라지 해주신 어머니께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다른 학생들도 속속 고사장에 도착했다. 시험실로 향하는 장애학생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하지만 시험에 대한 각오와 미래에 대한 꿈을 이야기하는 동안만큼은 다들 미소를 보였다.

이진선 학생은 “많이 긴장돼 잠도 잘 못 잤다. 1년 동안 재수를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했다. 좋은 성적을 얻어 컴퓨터프로그래머가 되고 싶다. 수능은 내 꿈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는 이철주 학생은 “지금까지 공부해온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아쉬움도 있다. 노력한 만큼 좋은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대학에 들어가면 열심히 공부해서 장애가 있는 아동들을 위해 일하는 좋은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많은 학생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한 수험생이 있었다. 57세에 수능에 도전한 이창수씨. 양장점을 운영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이씨는 “장애를 가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사가 되는 것이 꿈이다. 늦은 도전이지만, 장애를 가진 사람도 의지만 있다면 언제든 도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올해부터 약시학생들과 뇌성마비 학생들의 시험시간이 1.5배로 기존(교시별 20분)보다 더 늘어났다. ⓒ에이블뉴스

▲그곳엔 특별한 무엇이 있다=뇌병변 장애학생들이 시험을 치르는 경운학교에서는 일반 고사장과는 몇 가지 다른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장애학생들이 시험을 잘 볼 수 있도록 돕기 위한 편의가 제공된다는 점이다.

올해부터 약시 학생들과 뇌성마비 학생들의 시험시간이 1.5배로 기존(교시별 20분)보다 더 늘어났다. 이에 따라 일반 수험생들은 오후 6시 5분이면 시험이 끝나지만, 뇌성마비 학생들은 그보다 3시간 늦은 9시 5분이돼야 수능시험이 마무리 된다.

시험시간 확대에 대해 대부분의 학생들은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주어져 안심된다”는 반응이었지만, 경운학교 한 관계자는 “20분씩 주어지던 시간도 남아 학생들이 지루해했는데, 올해는 시간이 너무 많이 늘어나 학생들이 더 지칠 것”이라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독방에서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이 있다는 점도 특이하다. 이곳 경운학교에서는 1명의 학생이 독방을 차지하고 시험을 치렀다. 팔을 사용하는 것이 자유롭지 못하고, 손 떨림이 심해 시험 감독관이 수험생을 대신해 문제지와 답안지를 작성해 준다.

또한 독방을 쓰지 않는 학생들도 답안지 작성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손, 눈 등에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해 감독관들이 대신 OMR카드를 작성해 주는 것. 이를 위해 별도의 이기실도 마련돼 있다. 교시가 끝나면 답안지와 문제지를 이기실로 가져와 대신 마킹을 해준다.

시험 감독관들이 모두 특수교육 관련자라는 점도 독특하다. 시험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장애학생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교사들을 선별해 배치했다는 것이 학교 측의 설명이다.

복도감독관들이 장애학생들의 이동지원을 해준다는 점도 장애학생 고사장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각 층별 복도에는 2~3명의 복도감독관들이 배치돼 있는데 이들은 학생들의 화장실 이용과 휴식시간 활동을 지원한다.

수험생 학부모대기실도 별도로 마련돼 있다. 학부모들은 이곳에서 자녀들을 기다리며 이야기도 나누고 차도 마신다. 점심시간이 되면 학생들이 있는 교실로 올라가 식사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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