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운트 버논 재활센터 건물. ⓒ샘

미국 워싱턴 마운트 버논 재활센터에 도착하니 아침 아홉시 반, 아직도 약속 시간까지는 반시간 정도 남아있다. 창구에서 신청 수속 서류를 작성하고 대기실에서 휠체어 신청 담당자를 기다렸다. 재활 센터는 꽤 한산했다.

이제 사용할 날이 많지 않은 삶의 훌륭한 동반자이자 애물단지 였던 휠체어를 필요이상 굴려 대기실 안을 돌아다녔다. 스르륵 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좋게 들린다. 5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들어온 소리여서 정이든 모양이다.

퀵키 리듬, 이름만큼이나 빠르고 민첩한 휠체어다. 최대 속도가 미국의 휠체어 제한 속도 시속 8마일을 살짝 넘어, 거리를 지나 다니다 보면 아는 사람들은 항상 폭주족이라고 놀리곤했다. 내 휠체어를 보면 장애 보다는 속도를 연상하는 것도 과히 기분 나뿐 일은 아니었다. 백화점, 혹은 전철역에서 빠른 속도로 진가를 발휘해 사람들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간발의 차이로 전철을 놓지는 데 나는 올라타니...

내 애마의 또 하나의 특징은 휠체어의 키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버튼을 눌러 휠체어를 높이면 성인키만큼 높아진다. 휠체어에 앉으면 늘 사람들을 올려 보면서 이야기 한다는 것이 조금은 불편했다. 파티 석상에서 같은 키로 대화하면서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속도가 상당하고 키를 높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내 휠체어는 가격이 2천만원에 이른다. 웬만한 자동차 한 대 가격이다. 다행히 보험 처리가 되어서 매 5년마다 자기 돈 한푼 들이지 않고 휠체어를 가질 수가 있다. 참 세상 좋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키가 훤칠한 젊은 여성이 나를 부른다. 그녀가 나를 침대와 휠체어들이 즐비한 한 룸으로 안내했다. 꽤나 사교적인 성격에 시원한 외모를 지니고 있었다.

“웨인이 오고 있는 중이예요. 그가 올 때까지 제가 준비해야 되는 것이 있어서요.”

웨인은 휠체어 스페셜리스트다. 그에 의해 지역 휠체어에 관한 제반 일들이 이루어진다. 첫 번째 만났던 5년 전 이후로 잦은 만남은 아니지만 독특한 정겨운 표정과 말씨 때문에 무척 가깝게 느껴지는 사람이다.

그녀는 내 몸과 휠체어 여기저기에 줄자를 들이대고 서류에 수치를 적었다. 웨인이 생각보다 늦어 우리는 업무적인 이야기 외에 많은 대화를 할 수가 있었다. 대부분이 미국 전동 휠체어 관련 불평이었다.

“미국 수동 휠체어는 꽤 수준이 있는데 전동 휠체어는 아직 엉망이예요.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예요.”

그녀의 말이 맞다. 지난 오년 동안 잦은 고장으로 어려움을 겪은 것이 한두번이 아니다. 리듬이란 이름에 걸맞게 계절마다 주기적으로 고장나는 데정말로 견디기 힘들 정도였다.

잔디 위를 지나다 보면 과부화를 견디지 못해 정지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 잔디밭의 나라인 미국에서 휠체어로 잔디에 들어갈 생각도 못하게 되고, 버스 안에서 작동을 멈춰버려 곤란을 겪은 적은 또 얼마나 많았던지. 고장이 나도 하필이면 고장이 나지 말아야 할 장소, 혹은 고장나지 말아야 하는 때에 고장이 나서 업무에 엄청난 지장을 초래하곤 했다.

부속 값은 또 왜그렇게 터무니 없이 비싼지. 보험에서 웬만한 것은 처리해 주지만 세달씩 걸리는 시간을 견딜 수가 없어 사비를 들이곤 했다. 발판 나사 하나 바꾸는 데 십만원 씩 든다는 것을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이런 저런 일로 야밤에 돌아다녀야 하는 경우가 많아 헤드라이트를 달아야 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헤드라이트는 보험에서 카버가 되지 않아 자비를 들여 설치를 해야 되는 데 50만원이라고 한다.

그 외에 휠체어에 꼭 있었으면 하는 것이 아기들 유모차에 있는 것 같은 차양이다. 유모차에는 평소에 뒤로 넘겼다 햇빛이나 비를 가리기 위해 가볍게 앞으로 덮을 수 있는 카노피가 있는데 휠체어에는 그게 없다.

비가 오거나 여름에 드라이브를 하려면 얼마나 불편한지 모른다. 추운 날에는 전기 방석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대부분 간단한 일인데도 게으른 미국의 휠체어 업자들은 손을 쓰고 있지 않다.

“카노피가 아직도 없다는 건가요?”

내가 물었다.

“기껏 있는 것이 우산 꽂이 예요. 우산을 펴서 휠체어에 꽂을 수 있게 하는 도구예요.”

나처럼 팔에 힘이 약한 사람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듯 하다.

“늦어서 미안해요. 오다가 트래픽(교통체증)에 걸려서...”

웨인이 악수를 하며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

그와 새 휠체어 신청에 대한 사무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요즘에는 보험 회사들이 여간 까다로워진게 아니예요. 이제 빠른 휠체어는 더 이상 카버하지 않는대요. 최대 속도가 6마일짜리까지만 보험 처리해 줍니다.”

이건 무슨 날벼락. 시속 8.5마일도 이제는 느리게 느껴져 12마일 짜리가 나오지 않았을까 기대하고 왔는데 오히려 속도가 줄다니.

“경제난 때문에 날이 갈 수록 처리되는 것들이 줄어들고 있어요.”

나도 나지만 휠체어 문제로 눈살이 찌푸려질 미국 장애인들의 어려워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관계 당국에 당사자가 편지 좀 보내요. 기술 개발도 하고 처리되는 휠체어도 좀 늘리라고...”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정말 그래야 될 것 같다.

한국 기술진이 부럽다. 한국 같으면 휠체어 천정 만드는 것 하루면 해낼 것 같다.

마운트 버논 재활센터 창구. ⓒ샘

휠체어 스페셜리스트 웨인과 보조인. ⓒ샘

필자의 휠체어. ⓒ샘

재활센터의 지역 버스. 지역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이용할 수 있다. ⓒ샘

대기중인 장애인용 밴. 원거리거나 버스 이용이 용이하지 않은 장애인들이 이용한다. ⓒ샘

* 샘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전 미상원 장애인국 인턴을 지냈다. 현재 TEC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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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 지체장애인으로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사회학과를 졸업, 미국 탐 하킨 상원의원 장애국 인턴을 역임했다. 또한 서울장애인체육회 워싱턴 통신원, 서울복지재단 워싱턴 통신원,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했다. 출간한 수필집 ‘사랑, 그 빛나는 조각들’은 1992년 올해의 우수도서로 선정됐으며, 2009년에는 워싱턴 문학 수필부문 가작에 당선됐다. 각종 미국 장애인 소식을 전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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