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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로 달라진 시각장애인 직업의 세계

제이넷티비 다큐, <시각장애인 또 다른 창>에서 방송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10-13 17:29:57
90년대 초로 기억한다. 여의도공원이 여의도광장이었던 시절, 한 남자가 차를 몰고 광장으로 돌진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남자는 "눈이 보이지 않게 돼 답답한 마음에 그랬다"고 하소연했다. 그 소식을 접한 우리 동네 아주머니들, "아니, 세상이 얼마나 발전했는데 좋은 안경 하나 사서 끼면 될 걸 사람을 치고 그래?" 성토대회를 펼쳤더랬다.

아, 정말 그 때는 몰랐다. 도수 높은 최신형 안경을 끼더라도 시력 보완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눈이 보이지 않는다 하면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사는 것인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보이거나 보이지 않거나 단순히 이분하여 이해했던 거다.

그런데 다리 아픈 사람도 브레이스 같은 보조기를 차는 사람에, 목발 짚는 사람, 휠체어를 타는 사람 같이 장애 경중이 다른 것처럼 시각장애도 그렇게 다양했다. 지금 돌아보니 그 때 그 사람은 저시력 장애인이었던 것이다.

여의도공원을 지날 때면 그 때 그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 지 문득 궁금해지곤 한다. 시력을 완전히 잃었더라도 기현씨처럼 운명을 개척해나갈 의지만 있다면 어디서든 잘 살고 있을 것이다.

기현씨는 미래에 대한 기대 창창했던 대학 일학년 때, 부정교합 수술을 받다가 끝내 앞을 보지 못하게 되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재활상담을 공부하러 미국유학을 떠났다. 작년에 보스턴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기까지 그녀는 장애여성이면서 시각장애인, 미국생활을 한다는 특이한 이력으로 케이비에스 제3라디오에서 방송리포터로 일하고 있다.

<김기현의 재활일기>라는 이름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의 한 코너를 담당한 그녀는 컴퓨터로 방송자료를 직접 찾고 혼자서 원고를 작성한다. 워낙 영어로 된 사이트와 자료를 많이 보기 때문에 한 때는 미국에서 제작한 음성 프로그램을 썼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원어민 수준의 발음으로 영어를 읽어주는 음성지원 프로그램이 나온 뒤로는 이를 사용한다.

그녀가 쓰고 있는 <센스리더 프로페셔널 에디션>은 그간의 단점을 보완하여 영어 발음이 나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어 음성엔진도 덧붙여서 일어 자료를 찾아보거나 공부하는 사람에게도 편리하다.

맹학교 수업시간. 같은 반에서 공부하지만 시각장애의 경중이 다른 학생들은 자신에게 알맞은 보조기기를 활용한다. 전맹인 지왕이는 책상 위에 교과서 대신 늘 갖고 다니는 <한소네>를 올려 놓는다. 그리고 손가락 끝으로 책을 읽는다.

좁쌀 알갱이 같은 셀이 점자를 표시하는 점자정보 단말기 <한소네>는 교과서 파일을 점자로 번역해준다. 반면, 저시력 장애가 있는 학생들은 교과서 글씨를 크게 보여주는 <확대 모니터>나 조명이 달린 <확대경>을 사용한다.

고등학교 1학년 지왕이의 장래 희망은 컴퓨터 선생님. 유난히 컴퓨터를 좋아해 정보경진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 지왕이는 "컴퓨터 선생님이 되어 시각장애인이 많이 쓰는 프로그램에 대해 가르칠 거예요"라며 야무지게 소신을 밝힌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의 정보망이 되고 있는 웹사이트 <넓은 마을>에서 최신 정보를 얻고 있다.

부지런히 정보를 검색해왔기에 <책 읽어주는 도서관>이라는 휴대폰도 신청할 수 있었다. 이 제품은 엘지전자에서 시각장애인용으로 개발한 것으로, 휴대폰 문자메시지나 메뉴까지 모두 음성으로 읽어주는 기능이 있다. 일반 매장에서 시판되지 않고 잠깐 동안 무상 지급되었기에 시중에서 구입할 수 없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또래 청소년들처럼 전자기기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한 지왕이는 컴퓨터 게임을 좋아한다. 시각장애인들이 즐겨하는 <온라인 볼링게임> 최신 버전은 그래픽 화면이 나와 지왕이를 흥분의 도가니에 빠져들게 했다. 소리와 촉각에 의지하는 시각장애인에게 모니터 화면에 그림이 보이고 안 보이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지만 그게 그렇지 않단다.

온라인 게임을 프로그래밍하는 병욱씨는 "저시력 장애인이나 가족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서는 시각장애인용 게임에도 그래픽 환경이 뒤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누구보다 이에 대한 필요성에 대해 먼저 눈뜬 그는 놀랍게도 색깔도, 글자도, 점과 선도 구별할 수 없는 전맹의 시각장애인. 필요한 사람이 먼저 우물을 판다고 그는 시각장애인용 온라인게임에 그래픽 환경을 접목시키고 있다.

"그래픽이 화려한 온라인 게임을 효과음 위주의 시각장애인 게임에서 어떻게 재현해낼까"하는 것은 눈이 보이지 않는 병욱씨에게는 풀기 어려운 숙제가 분명하다. 불가능해 보이는 이 일을 그는 컴퓨터 음성지원 프로그램을 이용해 해내고 있다. 그리고 공간 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어린이 장난감 레고 조각을 활용한다.

평면 모니터를 들여다보아도 병욱씨의 눈앞은 늘 그렇듯이 암흑이다. 그래픽 이미지를 넣기 위해서는 모니터 화면 비율부터 파악해야 하는데, 병욱씨는 레고 조각의 동그란 점을 손끝으로 짚으며 모니터 비율을 감지한다. 일반 노트북은 가로 세로 비율이 팔대 육, 와이드 화면은 십육대 구에 해당하니까 레고 조각의 점을 만지면 이미지가 들어갈 테두리가 짐작된다는 것이다.

아직도 시각장애인들의 직업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안마사. 그렇지만 컴퓨터의 발달은 시각장애인 직업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고 있다. 방송 리포터, 컴퓨터 선생님, 온라인 게임 프로그래머, 그리고 또 다른 분야를 개척해낼 수 있는 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활성화가 뒤따라야 가능할 것이다.

컴퓨터로 달라진 시각장애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는 제이넷티비(www.jnettv.co.kr)' 다큐 프로그램 <날개를 달자>에서 방영중인 <시각장애인 또 다른 창>에서 생생하게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

*예다나 기자는 ‘장애 경력 19년’을 자랑하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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