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룡기업에서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 김춘식씨. ⓒ에이블뉴스

“여자분 두 분과 나란히 앉아서 일하니 기분은 좋죠 뭐”

좀처럼 말이 없지만 항상 웃음 띤 표정의 김춘식씨(43. 지체4급). 비룡기업(대표 지창영)에 취업한 지 이제 한 달 남짓, 회사에 조금씩 정이 들기 시작했다. 업무야 늘 하던 일이라 별로 어렵지 않다. 출퇴근 시간에 적응하고 나이 어린 상사 등 기존 직원과 호흡 맞추기도 웬만큼 익숙해졌다.

전체 직원 12명인 작은 업체인 비룡기업에서 그가 하는 일은 편집 디자인. 명함부터 양식지, 봉투, 브로셔나 전단지, 스티커 판촉물 기획물, 책자, 포스트, 사원증에 이르기까지 인쇄물 편집은 뭐든 척척 해낸다. 직장 동료들 사이에서도 벌써 인정받는 분위기다.

다만 집이 멀다보니 그게 문제라면 문제. 강서구 신월 3동인 집에서 7시 경 출발하면 8시 40분에서 9시경 사무실에 도착한다. 아침은 당연히 굶는다. 그래선지 회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은 꿀맛.

전문직이라 취업도 비교적 쉽게 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나이 차이도 있고 말수도 적다보니 약간 그런 부분도 있었는데, 생각보다 잘 어울리시고 업무적인 부분에서도 잘 하고 계십니다.”

비룡기업은 김춘식 주임을 만나기 전까지 2,3개월 동안 취업은행 등을 통해 구인을 해왔다. 생각보다 편집 기술을 가진 장애인을 만나기 힘들었는데, 다행히 김춘식 주임과 인연이 됐다고. 특히 지체장애인의 경우, 편집 디자인 분야의 취업은 전망이 밝다는 게 비룡기업측의 얘기다.

김춘식 주임은 신구전문대 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가르치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아 충무로로 진출했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서 흔히 일컫는 종이밥을 먹은 지 10여년. 이번에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예 프리랜서로 나섰다. 실력이 받쳐주니 가능한 일이었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사정이 어려워지고 다시 취직을 결심했다. 그렇게 만난 회사가 바로 비룡기업이다.

구직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전하는 그는 “전문직이라선지 취업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장애인을 고용하겠다고 주저없이 말하는 지창영 사장과 김춘식씨. ⓒ에이블뉴스

“우리 김춘식 주임은 성실하게 출 퇴근 시간 잘 지키고 업무도 잘 하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다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인데, 같이 가야죠. 사업이 잘 되면 그 때는 당연히 장애인을 또 고용할겁니다”

비룡기업 지창영 사장은 차후에 직원을 채용할 일이 있으면 또 장애인을 고용할 것이라고 주저없이 말한다. 김춘식씨는 자신의 행동 하나 하나가 이렇게 사주의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욱 열심이다.

숨은 실력자 김춘식씨를 알아본 비룡기업은 병원에서 나오는 알콜솜이나 주사기, 인체조직 등 각종 감염성 폐기물을 수거 해서 소각장까지 냉동탑차로 운반하는 회사이다. 80년대 후반부터 20여년간 같은 일을 하다보니 현재 수도권 소재 1천여 개 병원을 관리하고 있다.

“병원 일을 하면서 거래하는 병원의 각종 인쇄물들을 제작하면 되겠다는 생각이 든거죠.”

그래서 비룡기업은 2년 전부터는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이야기’라는 뜻의 ‘세아이’라는 사업부를 새로 만들었다.

김춘식씨는 바로 이 ‘세아이’의 디자인 파트 주임으로 일하고 있다.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세아이’

“디자인실장님을 비롯한 젊은 사람들이 투입이 되면서 회사가 젊은 마인드로 바뀐거죠. ‘벌어서 우리가 다 쓰자’가 아니라 ‘벌어서 남도 주자’는 마인드로 뭉쳤습니다.”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세아이’ 덕분에 사내 분위기도 확 달라졌다. 2년 전부터 디자인사업을 진행하고 여기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지금은 불우한 이웃까지 돕고 있다.

얼마 전 ‘세아이’의 사회적 기업 신청을 했지만 조건이 맞지 않아 일단 보류 상태다. 지금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현재 ‘세아이’가 인쇄를 맡아 하고 있는 병원은 50여 곳. 비룡기업 거래 병원이 1천여 곳인만큼 향후 ‘세아이’의 미래 상당히 밝다. 인맥이나 네트워크 구성이 이미 돼 있으니 이제 천천히 소화만 해나가면 될 것이다.

‘세아이’의 수익금으로는 동대문구청 사회복지과가 진행하는 프로젝트, 지역 내 ADHD 아동의 초기 검사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검사비는 1인당 15만원 가량. 관내 5개 복지관에서 전문 상담사들의 상담을 거쳐 검사비용을 지원한 지 1년째로 올해만 약 20명의 검사비를 지원했다.

젊고 창의적인 생각이 톡톡 튀는 '세아이' 멤버들. ⓒ에이블뉴스

이상원 비룡기업 기획실장을 주축으로 뭉쳐진 ‘세아이’ 맴버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회의를 한다. 회의를 통해 직원들은 업무 외적인 부분의 발전적이고 창의적인 아이템을 공유 한다. 소외된 계층과 지역사회 돕기 아이디어도 여기서 나왔다.

“앞으로는 태양열이나 전기자동차 같은 친환경 분야에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세아이’는 요즘 친환경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다. 비룡기업이 갖고 있는 인프라를 최대한 활용해 폐기물 운반 차량을 전기차로 바꾸자는 것이다.

현재의 폐기물 소각장의 열에너지를 충전에너지로 바꾸고, 소각 시설에는 태양열 집진기를 설치해 전기로 바꿀 경우 매일 출입하는 폐기물 운반차량의 전기 충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다만 아직 법적으로 전기차량은 저속 운행만 가능해서 고속도로를 진입해야 되는 폐기물 운반차량은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 조만간 환경부 등에 이 사안을 건의할 생각이다.

“관공서에도 예를 들어 동대문 구청에 저희가 일정부분을 부담을 해서 태양열 시설을 설치하고 그 수입으로 저소득층 독거노인이나 형편이 어려운 분들을 도와줄 수가 있는 거죠.”

‘세아이’는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지금은 그저 형편이 되는대로 주변에서부터 착한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작정이다.

“우선 형편이 되면 사무실부터 바꿀 생각입니다.”

카페안에 사무실과 스튜디오를 두고 근무하고 싶다. 오가는 사람들이 차 한 잔을 마시면서 명함을 만들 수도 있도록.

중도 장애인들에게 새로운 삶의 의지가 될 수 있도록 편집 디자인 교육도 하고 싶다. 병원에서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는 사회 밝은 이야기를 나누는 문화소식지도 만들고 싶고, 태양광 발전소로 에너지 빈곤층도 돕고 싶다.

새내기 사원 김춘식씨도 요즘 그 속에서 함께 하는 세상을 꿈꾸고 있다.

무궁무진한 젊은 아이디어가 톡톡 튀는 ‘세아이’의 꿈이 이루어 지기를, 그래서 더 많은 장애인들이 취업할 수 있기를….

김춘식씨도 ‘세아이의 대박’을 위해 열심히 디자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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