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을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장애인보장구 무료지원사업 홍보전단. <에이블뉴스>

“장애인협회에서 자부담금 20%가 부담스러운 건강보험가입 장애인과 기초생활수급장애인(정부지원 100%)분들 중 20명에게 관련 단체와 저희 장애인 이동 보장구 사업단에서 후원금으로 어려운 장애인에게 성능 안정성이 검증된 고가(310만원 상당)의 전동휠체어, 전동스쿠터를 무료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현재 부산지역에서 떠돌고 있는 장애인보장구 무료 지원사업과 관련한 홍보 문구다.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 이 홍보문구에는 후원단체로 사단법인 KTMA협회 부설 장애인이동보장구지원사업단, (주)중소기업진흥원, ‘대한노인회지원사업단, 장애인협회 등 단체 4곳의 이름이 적혀 있고, 판매원으로 주)SEN모터스라는 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특히 문의처로 ‘주)중소기업진흥원 부설 장애인이동보장구지원사업단’이 적혀 있었고, 이사 이름과 전화번호까지 명시돼 있었다. 이 홍보문구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어 사무실이 부산시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것을 확인하고, 지난 20일 직접 사무실에 찾아갔다.

5층짜리 건물 4층에 위치한 이곳 사무실에는 장애인보장구와 관련한 안내 표지는 전혀 없고, ‘사단법인 한국텔레마케터협회’라는 간판이 걸려있고, 사무실 문 입구에는 ‘사단법인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사상지회’라는 안내표지판이 놓여있었다.

유명 장애인단체들 이름을 무단 도용

당시 사무실에는 남자 직원 1명과 여자 직원 1명이 있었고, 한 장애인의 보호자가 찾아와서 전동휠체어와 관련한 상담을 하고 있었다. 보장구사업단 관계자들은 그 장애인 보호자에게도 전동휠체어와 관련 애프터서비스를 푸르메재단과 절단장애인협회에서 해준다고 말했다. 보장구사업단측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도 A/S에 대해 문의하니 이렇게 답변했었다.

푸르메재단과 절단장애인협회는 장애인계에 널리 알려진 곳으로 과연 이 말이 사실인지 대표자들에게 전화를 걸어봤다. 푸르메재단측은 보장구사업단측의 얘기와는 다르게 “이번 사업과 아무런 관련도 없다”고 일축했고, 절단장애인협회측도 “전혀 무관하다”고 깜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푸르메재단과 절단장애인협회에 따르면 사단법인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서울지역본부 관계자들이 푸르메재단 관계자와 절단장애인협회 관계자와 만나 이번 사업을 같이 하자고 제안했지만, 양 단체는 전동휠체어가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기에 함께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던 사실이 있었다.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서울지역본부측 관계자는 “푸르메재단 이름이 나오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대표자에게 전화를 걸어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고 말했다. 푸르메재단과 절단장애인협회는 이번 사태에 대해 법적인 대응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애인이동보장구지원사업단 사무실이 있는 부산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건물. <에이블뉴스>

사무실 입구에는 장애인보장구와 관련한 안내문구는 전혀없고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사상지회 안내표지판만 있다. <에이블뉴스>

무료는 거짓…알고 보니 일부 지원사업

부산 보장구사업단측이 벌이고 있는 사업은 전동휠체어와 전동스쿠터를 무료로 지원하는 사업이 아니라 건강보험급여와 의료급여 차액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310만원 짜리 전동휠체어를 무상으로 장애인에게 지급하는 것이 아니었다.

건강보험 가입한 장애인의 경우, 건강보험급여 167만2천원을 제외한 나머지 차액을 지원하고,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권자의 경우, 의료급여 209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차액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홍보 전단지에서 소개하고 있는 310만원 상당의 전동휠체어(careline1214)가 지급되지도 않는다는 점도 문제점이었다. 홍보전단 속 전동휠체어 모델을 판매하는 회사와 전혀 협의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산 보장구사업단측은 장애인들에게 지원되는 제품의 모델명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A/S문제에 대해서도 “전혀 상관이 없다”고 말하는 푸르메재단과 절단장애인협회 이름만 들먹일 뿐 전혀 대책이 세워져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부산 보장구사업단측은 사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시인하면서 “위에서 홍보하라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고 답변했다.

그럴듯한 홍보문구…동사무소까지 침투

상담이 끝난 장애인 보호자를 만나 어떻게 전동휠체어 무료 지원을 알게 됐는지 물었다. 그는 장애인 보장구를 무료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홍보전단을 갖고 있었는데, 중요한 점은 그 전단이 들어있는 봉투가 만덕2동사무소 서류봉투라는 점이다.

만덕2동사무소측 관계자는 “팩스로 전단지를 받았고,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 약 50명의 장애인에게 이 전단을 전달했는데, 나중에 무료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문의가 오는 장애인들에게 신청을 하지 말라고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전단이 뿌려진 곳은 동사무소뿐만이 아니다. 북구청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홍보 전단을 팩스로 받은 적이 있는데, 업체를 홍보하는 것이라는 판단 하에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외에 부산장애인총연합회측도 이 문건을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사건을 전해들은 한 장애인단체 관계자는 “저가의 제품을 수입해 소비자가격을 높게 책정하고 차액을 지원한다는 명목 하에 벌이는 무료 전동휠체어 보급사업이 끊이지 않고 있다”면서 “당국의 대책 마련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타 지역에서도 비슷한 사업 추진 중

현재 이와 비슷한 전동휠체어 무상공급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은 부산지역만이 아니다. 인터넷상 한 장애인카페 게시판에는 부산지역과 거의 흡사한 홍보문구가 올라와 있었다. 이 홍보 문구를 보고 카페 회원들은 “좋은 일을 한다” “널리 홍보해서 많은 장애인들이 혜택을 받았으면 좋겠다” 등의 댓글을 달아 환영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는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서울지역본부의 제안을 받아 지난 2월 6일부터 대상자 추천을 받고 있는 중이었다. 홍보 문구만 보면 ‘310만원 짜리 전동휠체어를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인데, 실상은 건강보험급여와 의료급여를 제외한 차액을 지원하는 사업이었다.

‘심사 후 2월부터 대상자 주소로 배송한다’는 문구까지 포함이 되어 있지만 당장 장애인들이 전동휠체어를 지원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서울지역본부 관계자는 “사업진행에 차질이 있어 현재 확정된 것이 거의 없다”고 답변했고, 한국사회복지관 관계자는 “우리는 모집만 했을 뿐 한국텔레마케터협회측이 모든 것을 주관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한국사회복지관협회도 한국텔레마케터협회 서울연합회측의 제안을 받아 '전동휠체어 무상공급' 대상자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에이블뉴스>

박종태(45)씨는 일명 '장애인 권익 지킴이'로 알려져 있다. 박씨는 고아로 열네살 때까지 서울시립아동보호소에서 자랐다. 그 이후 천주교직업훈련소에서 생활하던 중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고, 92년 프레스 기계에 손가락이 눌려 지체2급의 장애인이 됐다. 천주교 직업훈련소의 도움을 받아 직업훈련을 받고 15년정도 직장을 다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세상에 되돌려줄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92년부터 '장애인 문제 해결사' 역할을 해왔다. 97년 경남 함안군의 복지시설 '로사의 집' 건립에서 부터 불합리하게 운영되는 각종 장애인 편의시설 및 법령 등을 개선하는데 앞장서왔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6월 한국일보 이달의 시민기자상, 2001년 장애인의날 안산시장상 등을 수상하기도 했다. '해결사'라는 별명이 결코 무색치 않을 정도로 그는 한가지 문제를 잡으면 해결이 될때까지 놓치 않는 장애인문제 해결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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