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오전 10시, 인천시청역 지하1층에 마련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장애인 부모들이 묵념하고 있다.ⓒ에이블뉴스

30일 오전 10시, 인천지하철 1호선 인천시청역 지하 1층. 한 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 향이 피어올랐습니다. 지난 26일 투쟁 끝 마련된 윤석열대통령 집무실 근처인 서울 4호선 삼각지역에 이어 두 번째 차려진 분향소입니다. 8년전 세월호 참사 분향소가 자리했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 인천에서는 지난 23일 연수구 한 아파트에서 60대 어머니가 30대 뇌병변 중증장애인 딸을 살해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이틀 후 진행된 구속영장 심사에 앞서 어머니는 기자들 앞에서 “너무 미안하다. 같이 살지 못해서”라며 울먹였습니다. 공교롭게도 같은 날 서울 성동구에서는 40대 어머니가 발달장애가 있는 6살 아들을 안고 아파트에서 뛰어내린 안타까운 사건이 계속됐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이미 2020년 3월 제주에서, 4월 서울에서, 6월 광주에서, 2021년 2월과 4월 다시 서울에서, 5월 충북에서, 11월 전남에서, 올해에도 3월 경기도에서 이번 사건과 같이 가족이 장애인을 살해한 후 본인도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올해 6학년인 자폐성장애 딸을 키우는 임은정 씨.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인천지부 부평1지회장을 맡고 있다.ⓒ에이블뉴스

올해 6학년인 자폐성장애 딸을 키우는 임은정 씨(45세, 여)는 지난달 19일 발달장애인 가족 555명과 함께 머리를 밀었습니다. “머리 깎고 싶은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저도 여잔데. 아무리 늙어도 여자잖아요.”

오늘 아침에도 특수학교에 딸을 등교시키느라 전쟁을 치렀다고 합니다. 1시간 걸리는 학교를 보내기 위해 새벽 6시 30분에 깨우는 엄마가 야속한지 아이는 머리를 뜯고 물건을 던집니다. 매일 밤잠 못 드는 아이는 불을 켜고 울고 소리도 지릅니다. 이웃들에게 미운털이 단단히 박힌 지도 오래입니다. 조금이나마 미움을 받지 않으려고 치료실을 다니고, 약을 먹여봐도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임 씨가 가장 두려운 것은 딸이 ‘성인이 되는 것’ 입니다.

“졸업하고 나서는 갈 곳이 없어요. 그러면 저도 머리가 돌아버려서, 예비살인자 안 되리라는 법이 없지 않아요? 저희도 사람이고 늙는데.”

중증장애인이 근조리본을 달고 있는 모습.ⓒ에이블뉴스

27세 다운증후군 아들을 키우는 박은순 씨(57세, 여)에게 ‘그동안 자녀를 어떻게 키우셨냐’는 질문을 하자, 곧바로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27년전, 장애라는 인식조차 없던 시절, 매일같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극단적 선택? 수도 없이 생각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아들만 보면 ‘내 탓이요. 내 탓이요’ 하며 가슴 치며 괴로웠다고 합니다.

활동지원사로 일하며 와상장애인의 일상을 지원했던 은순 씨는 이용자의 어머니와도 매일 같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이용자의 엄마는 우울증이 심했어요. 그냥 만나면 같이 우는 겁니다. 너무 이야기할 사람이 없으니까,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나는 그 마음이 너무 다 이해되니까….”

30일 오전 10시, 인천시청역 지하1층에 마련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중증장애인들이 헌화하고 있다.ⓒ에이블뉴스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의 소망은 그저 ‘평범하게 사는 것’입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가 줄곧 외치는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 구축’은 거창한 게 아닙니다.

발달장애인도 비장애인과 함께 지역사회에 평범히 살 수 있도록 국가가 삶을 책임져달라는 겁니다. 낮에는 활동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할 수 있도록 ‘예산’을 마련해달라는 말을 대통령에게 전하기 위해 삭발을, 단식을, 또다시 삭발하고 있습니다.

부모연대 조영실 인천지부장은 영정 앞에서 “발달장애인 부모들이 예비살인자가 아닌, 동반자가 될 수 있도록 지켜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이날 분향소를 찾은 장애인 부모들은 10년 후 나의 모습이 아니길, 나의 장례식장이 이토록 비참하지 않도록 눈물로 빌었습니다. 그리고 노란 포스트잇에 저마다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인천시청역 지하1층에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추모메시지가 담긴 노란 포스트잇이 붙어있다.ⓒ에이블뉴스

‘장애라는 이유로 사람이 사람을 죽이지 않는 세상이면 좋겠습니다.’,‘다시는 이러한 죽음이 없도록 정부의 제도적 지원을 강력히 요구합니다.’, ‘현생은 고통스러웠지만 그곳에서는 차별 없고 평안하게 쉬소서.’, ‘이런 억울함이 어디있는가’, ‘죽어도 되는 사람은 없다’.

tvN 토일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방송 화면 캡처.ⓒ에이블뉴스DB

최근 다운증후군을 가진 장애예술인 정은혜 작가가 출연한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화제입니다. 장애인의 관점만이 아니라, 어릴 적 부모를 잃고 ‘아픈손가락’ 영희의 보호자가 된 영옥(한지민 분)의 무거운 책임감을 현실감 있게 담아냈다는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른다.'는 영옥의 독백은 장애인 부모들에게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착하고 큰 사람들'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운 남는 드라마가 아닌 누군가에겐 지독한 현실임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전국 수많은 ‘영희네’가 죽지 않도록 책임 있는 약속이 필요합니다.

인천교통공사 측의 협조로 인천시청역 지하1층에 마련된 분향소는 오는 6월 5일까지 일주일간 운영합니다. 지나가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분향할 수 있도록 국화꽃이 준비돼 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30일 오전 10시, 인천시청역 지하1층에 마련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영정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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