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외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긴급행동.ⓒ에이블뉴스

18일 오전 7시 30분, 서울 신용산역 4번 출구에서 시작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긴급행동은 2시간여 만인 9시 40분께 혜화역 승강장에서 마무리됐다.

전장연은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약 15분간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추경)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절규하며, 윤석열 대통령이 있는 대통령집무실 인근 삼각지역까지 행진을 이어갔지만, 이날 윤 대통령은 집무실로 출근하지 않았다. 오전 10시 광주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리는 5·18 기념식 참석차 이미 KTX에 탑승한 시간이었다. 윤 대통령 대신 전장연의 시위를 지켜본 시민들은 차 안에서 경적을 울리거나 삿대질하며 항의했다.

삼각지역에서 혜화역까지의 오체투지 투쟁 또한 외로운 싸움이었다. 이미 전장연의 행동을 대비한 듯, 전장연이 탑승한 열차 칸에는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시민이 없었다. 몇몇 취재진과 경찰, 그리고 매일같이 함께 하는 지하철 보안관뿐. 전장연의 외침은 대답없는 공허한 메아리로 흩어졌다.

18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외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긴급행동. 투쟁을 외치는 장애인 활동가 뒤로 차량에 타고 있는 시민이 보인다.ⓒ에이블뉴스

전장연은 올해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추경안 59.4조원 중 장애인권리예산을 포함시켜달라고 요구하며, 이번 긴급행동을 지난 16일부터 사흘째 진행하고 있다.

정부의 추경안은 윤 대통령의 공약인 '온전한 손실보상'을 지키기 위해 매출액 30억원 이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최소 600만원의 손실보전금을 지원하는 방안 등이 담겼다. 전장연이 요구하는 평생교육, 탈시설권리, 활동지원 등 장애인권리예산은 1원도 편성되지 않았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오는 19일부터 종합정책 질의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심사에 돌입한다. 이 기간 ‘장애인권리예산’이 언급되길 바라며 전장연은 20일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18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외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긴급행동.ⓒ에이블뉴스

“윤석열 정부의 첫 번째 추경안에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기본적으로 살아갈 권리가 반영돼야 하지만, 단 1원도 편성되지 않았습니다. 예산 없으면 우리의 권리는 빈 깡통에 불과합니다. 장애인도 자유롭게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법에 나와 있지 않습니까?”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이형숙 회장 등 전장연 활동가 10여 명은 이날 7시 45분경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점거한 채 약 15분간 점거 시위를 펼쳤다. 8차선 도로 중 2~3개 차로가 통제됐고, 차에 타고 있던 일부 시민들은 경적을 울리며 항의했다. 자진 해산을 요구하는 경찰들의 요구에 “신고된 집회”라면서 충돌도 벌어지기도 했다. 길 가던 한 행인의 거친 항의도 계속됐다.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가 18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15분간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외친 후, 삼각지역까지 행진하고 있다. (위)전장연의 행진으로 차량 부분 통제를 알리는 전광판 모습(아래)버스정류장에서 전장연의 행진을 지켜보는 시민들 모습.ⓒ에이블뉴스

이후 삼각지역 방향으로 행진을 이어가는 전장연의 모습에 버스정류장 앞 시민들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목숨 건 그들의 목소리를 제대로 듣는 이 하나 없었다. 외롭고 쓸쓸했다. 용산행복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진 활동가가 삼각지역에서 삭발 후, 오체투지로 지하철에 탔지만, 그 칸엔 이야기를 들어줄 시민들이 없었다. 시민들은 전장연을 피해 다른 칸으로 옮겨가 자리는 텅텅 비었다. 그 자리엔 경찰과 몇몇 취재진, 전장연 활동가들로 채워졌다.

온몸으로 오체투지를 펼친 이상진 활동가는 “이동권이 보장될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크게 외쳤다.

삼각지역에서 혜화역까지 오체투지 진행 중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들어줄 시민 하나 없이 자리는 텅텅 비었다.ⓒ에이블뉴스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을 촉구하며 삭발투쟁을 이어간 지 이날로 벌써 34일째. 지난 3월 30일 첫 삭발자로 나선 이형숙 회장의 머리카락은 어느새 많이 자라났다. 이 회장의 뒤를 이어 70여 명의 활동가가 삭발했다. 머리카락이 든 삭발함은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청역 농성장에 마련돼 있다.

이형숙 회장은 “환승 통로에 이미 삭발함이 많이 쌓였다. 윤석열 정부가 권리예산 반영을 빨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또 국회까지 끝까지 갈 수밖에 없다. 어쩌면 농성장의 삭발함이 환승통로 담벼락을 넘길 수 있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삭발은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몸부림이기에 멈출 수 없다고 했다. “5월 추경과 2023년도 기획재정부 예산 가이드라인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드시 편성해주세요.” 이 회장은 거듭, 그리고 또 거듭 강조했다.

추경을 심의 중인 장애인 국회의원들.(위)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아래)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종성, 최혜영 의원 페이스북

한편, 추경을 심의 중인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장애인 국회의원들의 메시지 또한 각각 달랐다. 국민의힘 이종성 의원은 ‘장애인거주시설’ 예산을 챙긴 반면,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은 ‘OECD 평균 장애인예산 도달’을 강조했다.

이종성 의원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2차 추경안 상임위 심의 결과에 대해 ‘제가 증액을 요청한 장애인거주시설 종사자 한시지원금 23억2000만원, 장애인거주시설 방역관리료 6억5000만원 등도 포함돼 있다’고 보고했다.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코로나19로 서비스 지원체계가 끊긴 장애아동 가구 지원에 대한 긍정적 검토’, ‘한시적 생활지원금 지원사업이 시설장이 아닌 당사자들에게 제대로 지원되고 사용되었는지 복지부에 전수조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인 ‘개인예산제’에 대해서도 “제대로 된 개인예산제 실현을 위해서는 반드시 장애인 예산 증액이 뒷받침돼야 한다”면서 “OECD 평균 장애인예산 도달을 위한 계획 마련과 장애인지예산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말씀드렸다”고 강조했다.

전장연은 20일까지 추경에 장애인권리예산 반영을 촉구하며 도로를 점거하는 긴급행동을 이어가겠다는 계획이다.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용산행복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이상진 활동가.ⓒ에이블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페연대가 18일 오전 아모레퍼시픽 본사 앞 횡단보도를 15분간 점거해 “추가경정예산에 장애인권리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외친 후, 삼각지역까지 행진하고 있다.ⓒ에이블뉴스

혜화역에 도착해 마무리 집회중인 모습.ⓒ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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