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자를 읽고 있는 시각장애인 당사자 모습.ⓒ에이블뉴스DB

2020년 11월 4일은 ‘제94주년 한글점자의 날’입니다. 일제강점기하에서 일본어 점자를 익혀야 했던 현실을 안타깝게 여긴 송암 박두성 선생(1888~1963)이 3년간의 연구 끝에 6개의 점으로 구성된 훈맹정음(한글점자)을 반포한 1926년 11월 4일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올해 ‘한글점자의 날’이 더욱 뜻깊은 이유는 또 있습니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15일 훈맹정음’ 제작·보급 유물과 점자표·해설 원고 등 총 64점의 유물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기 때문입니다.

이날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는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한국시각장애인도서관협의회 등이 주최한 ‘제 94회 한글점자의 날’ 기념식이 거행됐습니다.

코로나19 감염병 예방을 위해 행사가 대폭 축소됐고, ‘점자 기념일의 노래’ 제창을 대신해 감상에 그쳐야 했지만, 한글점자를 사랑하는 시각장애인 당사자들의 열망만은 식지 않았습니다.

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글점자의 날’ 기념식.ⓒ에이블뉴스

“일제강점기 나라를 빼앗겼던 어려운 시기에 시각장애인의 교육에 대한 신념과 끈기를 바탕으로 훈맹정음을 만들어주신 송암 박두성 선생의 숭고한 뜻에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합니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한글점자는 흰 지팡이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유산입니다. 최초의 장애인 관련 유산으로 훈맹정음 관련 유물이 문화재 등록이 예고됐습니다. 시각장애인의 문자이자, 민족의 문화유산임이 증명된 것입니다.” -박종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직무대행-

“훈민정음 이후 창제된 훈맹정음은 480여 년이라는 거리가 있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았습니다. 시각장애인들이 교육을 습득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중요한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전병극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

한국장애인개발원 페이스북에 소개된 ‘한글점자의 날’ 내용.ⓒ한국장애인개발원 페이스북

곧 100주년을 맞이하지만, 몇몇 시각장애인 관련 단체와 기관만이 케이크를 자르고 있을 뿐, 대부분 사람의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2017년 5월 시행된 점자법이 무색하게도 말이죠.

‘점자는 한글과 더불어 대한민국에서 사용되는 문자이며, 일반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점자법 제4조에 담긴 내용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점자가 일반 활자와 동일한 효력을 지니고 있을까요?

(위)향균필름으로 인해 점자표기가 가려진 버튼(아래)훼손된 촉각안내판.ⓒ에이블뉴스DB

시각장애인 당사자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에 따르면, 교과용 도서 등에 점자 표기 오타율이 높아 시각장애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고 있습니다. 또 극히 일부의 의약품에만 점자가 표기돼 있어 시각장애인들의 의약품 오남용 위험 노출 문제도 국정감사에서 제기되기도 했습니다.

제21대 국회의원선거에서 거소투표를 하며 혼자 투표할 수 있도록 점자투표용지 등을 제공해달라고 선관위에 요청했지만, 이를 거절당하는 사례도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공공장소에 설치된 점자안내판은 관리가 소홀한 상태로 방치된다는 문제점도 꾸준히 나오곤 합니다. 음성으로 모든 것을 대체하는 것보다, 일단 점자를 활용할 수 있는 환경부터 선행돼야 하지 않을까요?

“점자 사용하는 장애인이 많지 않고, 중도장애인은 점자 배우기를 두려워한다고들 합니다. ‘왜 또 아직도 점자 타령하냐’ 라는 일부도 있습니다. 점자 사용이 많지 않은 것은 점자를 배우기 싫어서가 아니라, 점자 사용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가 있으면 뭘 합니까? 길이 없는데.”-박종운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장 직무대행-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점자를 읽고 있다.ⓒ에이블뉴스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또한 점자 사용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들이 매년 점자 문서화를 요구받은 현황과 제공실적 제출 내용이 담긴 ‘점자법 일부개정법률안’‘ ▲저작권 제한 없이 시각장애인의 원활한 정보를 제공하는 ’저작권법 일부개정법률안‘ ▲점자 선거공보의 면수 제한 기준을 폐지한 내용이 담긴 ’공직선거법 일부개정법률안‘을 각각 발의한 상태입니다.

김 의원은 기념식에서 “많은 공공기관과 편의시설에 점자표기가 보여주기식에 머물고, 학습권, 선거권, 건강권의 권리가 제한받고 있는 현실”이라면서 “점자발전과 시각장애인의 정보 접근성 개선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4일 ’제94주년 한글 점자의 날 기념 학술대회‘ 모습.(왼쪽)서울맹학교 이인학 교사(오른쪽)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강완식 팀장.ⓒ에이블뉴스

우리 곁에서 사라져가는 점자, 하지만 누군가에는 정말 소중한 언어입니다. 그 언어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었고, 직업을 가졌습니다. 이날 오후 학술대회에서는 점자 사용 활성화를 위한 시각장애인계의 고민도 공유됐습니다.

서울맹학교 이인학 교사는 4차 인공지능 시대에서의 점자 위상을 위해 민원서류 발급의 전자점자 접근 시스템 구축 등 전자점자 발전과, 점자학습이 필요한 학생에게 학습 수준별 권 단위의 ’점자 익히기‘ 교과용 도서 제공 등 점자교육 인프라 강화를 제언했습니다.

아울러 점자 사용 인구에 대한 올바른 통계치 제시를 위해 생활점자, 학습점자, 연구점자 등 점자 사용 인구의 범주화가 필요하다면서, “점자 발전을 위해서는 점자 소비자들의 끊임없는 관심과 애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노원시각장애인복지관 대체자료지원팀 강완식 팀장은 일상생활에서 점자를 폭 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도구들이 개발 보급돼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현재 점자를 사용하는 도구로는 점자판, 점자타자기와 더불어, 대당 5~600만원에 달하는 점자정보단말기가 있습니다. 점자정보단말기는 너무 가격이 비싸고, 정보통신보조기기 보급 사업은 ‘로또’에 당첨돼야 이용할 수 있는 현실입니다.

점자판의 경우 필기 시에는 뒤집어서 하고 읽을 때는 바로 읽어야 하는 어려움, 필기의 불편함 등으로 이용률이 많이 저조합니다.

일반 대중이 쉬게 접근할 수 있는 수준의 기기가 개발됐으면 좋겠다고 제언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앞서 언급한 비싼 가격의 점자정보단말기 등 점자 관련 개인용 도구의 건강보험 적용도 이뤄지길 희망했습니다.

문화재로 등록 예고 된 훈맹정음 유물 사진.ⓒ에이블뉴스DB

현재 국회에서는 ’한글 점자의 날‘을 법정지정일로 지정하는 점자법 개정안이 논의 중입니다. 상임위를 통과해 법사위에 계류된 상태인데요. 법정기념일로 지정된다면 한글점자를 사용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자부심, 국민들의 인식도 함께 높아지지 않을까요?

시각장애인과 세상을 잇는 여섯 개의 점인 ’한글점자‘, "시각장애인들의 꿈이 장애물에 가로막히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김정숙 여사의 약속이 꼭 지켜질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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