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각장애인이 장애인 할당제를 염원하는 피켓을 들고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에이블뉴스DB

[2019년 결산]-⑤제21대 총선

2019년 기해년(己亥年), 올 한해도 장애계는 크고 작은 이슈들로 시끌벅적했다.

30여년 간 시행되어왔던 장애등급제 폐지가 지난 7월부터 시행됐고, 이어 10월에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결과로 휠체어 탑승 장비를 장착한 고속버스가 시범운행 되는 쾌거를 이뤘다.

하지만 실제 장애인들의 삶에 피부로 와 닿지 못한다는 한계는 여전하다.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며 기존 의학적 평가에서, 사회 환경적 요인까지 적용하는 ‘서비스 종합조사표’가 도입됐지만, 정부가 기획한 최대 16.16시간을 받을 수 있는 장애인은 한 명도 없으며, 그마저도 기존 시간보다 탈락하는 사각지대가 계속 발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시범 운행된 고속버스도 차량이 단 10대에 노선이 4개로 턱없이 부족하다는 등 많은 한계가 있을 뿐만 아니라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예산 반영과 운영에 대한 로드맵 마련이라는 문제가 남아 있다.

이와 더불어 만 65세가 되면 활동지원을 받을 수 없는 연령제한 폐지, 갈 길이 먼 장애인연금 인상 문제, 부족한 장애인식 문제로 불거진 정치인들의 잇따른 장애비하 발언 등이 도마 위에 오르며 이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럼에도 아직 희망은 있다. 내년 4월 15일 실시되는 ‘제21대 총선’을 통해 장애계를 대변할 국회의원을 배출한다면, 그간 소외돼왔던 장애인 정책과 예산에 큰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

에이블뉴스는 올해 ‘가장 많이 읽은 기사’를 토대로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7개를 선정, 한해를 결산한다. 다섯 번째는 ‘제21대 총선’이다.

장애인비례대표 10%를 당선권 내에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장애인단체.ⓒ에이블뉴스DB

내년 국회의원을 뽑는 ‘4.15 제 21대 총선’이 100여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예비후보자 등록 등 정당에서 선거체제에 돌입한 가운데, 장애계에서도 총선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2020년은 2년여 남은 문재인정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이자, 장애계를 대변할 당사자 의원이 국회에 진출해 산적한 장애인 관련한 법안을 활발히 논의하고, 관련 예산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입니다. 당사자 의원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제20대 총선에서의 뼈아픈 역사를 딛고, 웃을 날이 올까요?

장애인 정치세력화는 장애인당사자주의에 입각해 무엇보다 장애인 관련 법안들을 마련하는데 장애인의 참여가 필요하다는 공감대에서 시작했습니다. 이에 장애계는 2000년 제16대 국회부터 ‘비례대표 10% 장애인 할당’을 포함해 장애인을 위한 공약을 마련해 각 정당에 체계적으로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2004장애인단체총선연대가 당시 한나라당, 민주당, 열린우리당 당사 앞에서 장애인 비례대표 10% 할당 촉구 1인 시위를 전개했다.ⓒ에이블뉴스DB

성적표를 간단히 정리해볼까요? 16대 ‘0명’, 17대 ‘2명’,18대 ‘5명’, 19대 ‘2명’, 20대 ‘0명’

16대에서는 단 한명의 장애인 의원도 배출시키지 못한 이후, 장애인 의원의 국회 진출은 2004년 17대 국회에서부터 본격화됐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과 열린우리당 장향숙 의원이 국회에 진출하면서, 장애 운동의 경험을 바탕으로 ‘장애인차별금지법 제정’ 등 각종 의정활동에서 능력을 발휘해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 낸 겁니다.

이 같은 기세는 2008년 제18대 국회로 이어지며, 무려 5명의 장애인 의원을 배출하는 기쁨을 맛봤습니다.

당시 한나라당 이정선, 민주당 박은수, 민주노동당 곽정숙 의원, 친박연대 정하균 의원은 비례대표로,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은 지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해 장애인차별금지법, 장애인특수교육법 개정, 장애인연금법 제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등의 의정활동을 펼쳤습니다.

각 당에 추천할 장애계 대표를 선발하는 2012장애인총선연대 배심원단 투표 모습.ⓒ에이블뉴스DB

그러나 2012년 제19대 총선부터 ‘삐걱’이기 시작했습니다. 장애계의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 국회에 진출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며, 장애계에서 각 당에 추천할 인물을 선출했지만….

비례대표 선출을 주도했던 김정록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상임대표, 최동익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상임대표가 양당에 후보등록을 하면서 국회에 진출, 당사자 의원 배출에 웃어야 할지, 장애계를 배신한 상황에 분노해야 할지 애매한 상황에 놓였습니다. 이후 당내에서 두 의원들의 평가는 좋지 못했고, 제20대 국회에서 한 명의 비례대표도 배출하지 못하는 참패로 이어지게 됩니다.

2016년 장애계는 충격에 빠졌고, ‘자업자득’, ‘각개전투의 패배’,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났다’는 비판과 반성이 뒤섞였죠. 4년 후 제대로 된 장애인 비례대표 배출을 위해서 장애계의 역량강화, 정치세력화를 위한 장애인의정지원센터 등이 필요하다고 앞 다퉈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위)장애인차별철폐 2020 총선연대 출범식 모습.(아래)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장애인 비례대표가 공약이다’라는 주제로 장애인최고지도자포럼 개최한 모습.ⓒ에이블뉴스DB

그리고 4년이 지나고,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장애계 상황은 어떨까요?

일단 ‘공약’을 중심으로 한 장애인운동계 2020장애인차별철폐총선연대가 세계장애인의 날 기점으로 출범, 적극적으로 공약 반영에 목소리를 낼 예정입니다.

반면, 제20대 총선까지 각 총선연대를 꾸려 ‘공약’ 개발에 집중해왔던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장총련),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한국장총)은 적극적 활동 대신 각 포럼, 토론회 등을 통한 ‘비례대표’ 요구를 해오고 있습니다.

한국장총의 경우 이미 지난 4월 조용히 공약을 준비해온 것은 사실이지만, 공식적으로 출범식을 통해 공약을 전달하는 형태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도 그간의 총선연대 활동을 통해 공약 개발에 힘을 실었지만, 기대와 달리 반영률이 저조, 정치세력화에 무게를 두자는 의견이 모아졌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더욱이 총선에서 한 공약을 누가 지키고,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지, 주체가 없습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이용석 정책실장,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안진환 상임대표 사진.ⓒ에이블뉴스DB

“총선 공약은 데코레이션입니다. 공약이 이행됐는지, 안됐는지 책임 물을 사람이 없습니다. 중간에 당도 막 바뀌고요. 진보든 보수든 똑같습니다…. 국회의 분위기를 알려드릴까요? 의원과 면담하면 ‘장애를 가진 의원이 있다면 빨리 진행될 텐데..’ 합니다. 이게 현실입니다”(한국장총 이문희 차장)

장총련 또한 총선연대 움직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장총련 또한 현실정치의 장에 범장애계를 대표하는 장애인당사자를 세우는 것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각종 총선연대, 대선연대 공약 작업 밤새서 무지하게 했습니다. 100개에서 50개로, 30개로 만들어서 했는데, 반영된 것이 하나도 없어요.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거 하지 말죠. 똑똑한 사람 한 명 국회에 넣어서 그분과 연대해서 싸웁시다. 현실적으로, 보다 효율적으로 전략화 합시다.”(장총련 이용석 정책실장)

장애인자립생활 진영 또한 4월부터 장애인 관련 법, 제도 압박을 위해서는 ‘장애인 비례대표’가 반드시 배출돼야 한다고 투쟁의 목소리를 올린 바 있습니다.

“문재인대통령이 탈시설을 언급했지만, 국회가 장애감수성, 소통력, 공감력이 없으면 올바른 장애인정책 수립은 아주 먼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장애인 정치세력화가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의 구조적 한계를 뛰어넘기에는 유효합니다. 당사자가 내년에도 못 들어간다면 정책은 퇴보할 것입니다.”(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총연합회 안진환 상임대표)

선거마다 쏟아지는 선심성 공약만으로는 진정한 장애인 정책이 될 수 없습니다. 또 그 정책이 예산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하나 마나’겠죠. 또 장애인당사자가 국회에 들어간들, 단순히 출세를 위한 욕심에서라면 장애인들의 삶은 한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할 겁니다.

이제 100여일 남은 현재, 장애인들을 대변해 그들의 요구를 법과 제도로 실현시킬 수 있는, 장애인들의 진정한 대표가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그간 소외돼왔던 장애인 정책과 예산에 큰 변화를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내년 4월을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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