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과 활동지원사 모습.ⓒ에이블뉴스DB

“도대체 가족 활동지원 허용 법안은 언제 통과되는 건가요. 너무 힘듭니다.”

얼마 전 중증 발달장애인 자녀를 키우는 부모로부터 이 같은 문의가 들어왔다. 지난 19일 한국자폐인사랑협회 주최 ‘자폐성장애인의 자립과 권리 보장을 위한 정책토론회’에서 “자폐성 장애인 가족 활동지원을 허용해 달라”는 목소리를 담은 본지 보도를 보고, 자신의 절실한 상황을 다시금 털어놓은 것.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을 허용하는 법안이 국회에 제출된 지 5개월이 흘렀지만, 여전히 국회 상임위에서 잠자고 있다.

장애계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으며, 법 개정이 아닌 보건복지부가 향후 자체적으로 시행령 개정 추진 의지 등을 이유로 상임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확인된 것.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지난해 10월 2일 활동지원을 구할 수 없는 중증장애인 가정의 현실을 담아, 예외적으로 장애인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을 전면 허용하는 ‘장애인활동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바 있다.

또 이에 앞서 8월에는 같은 당 윤후덕 의원이 수급자의 장애 정도가 매우 높아 활동지원인력이 기피, 가족으로부터 활동지원 급여를 적절하다고 판단될 경우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확인한 결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지난해 말 검토보고서를 통해 두 개의 법안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도 한차례 상정이 이뤄졌다.

먼저 검토보고서에 따르면, 장애인 활동지원이 최중증장애인에 대해 급여 제공시 가산급여를 추가로 지급하고 있으나, 단가가 작아 미매칭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에,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을 통해 장애인의 삶의 질을 증진하고 가족의 경제적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제도 도입취지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고 가족의 돌봄 부담을 경감하기 위한 점 ▲부정수급 및 서비스의 질 관리 부재 등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 ▲장애인의 급여신청이 급증해 연간 1260억원의 추가재정소요가 발생 예측 등을 근거로 ‘검토’가 필요하다고 봤다.

이에 보건복지부 또한 개정안 취지는 공감하나, 제도 도입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측면, 서비스 질적 수준 확보 곤란, 현금 급여화로 인한 재정 누수 등의 부작용이 우려돼 ‘신중 검토’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냈다.

장애인 단체 측 의견을 확인해보면, 한국장애인재활협회는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확대에 동의하는 ‘수용’ 의견과 함께, 활동지원인력의 급여 제공 기피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부정수급 등에 관한 세부적 시행규칙 마련 등의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발달장애와 같이 장애특성으로 인해 활동지원급여의 제공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 제공 요건에 ‘장애특성’을 추가할 필요가 있고, 당사자가 가족의 지원을 희망하는 경우에만 인정할 수 있도록 보완하는 ‘수정수용’ 의견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반면, 한국척수장애인협회와 한국뇌병변장애인인권협회는 제도 목적을 고려할 때, 중증장애인이 활동지원인력을 구하기 어려운지에 대한 원인 분석을 하고, 수가 차등화 등의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시 돼야 한다며 ‘신중 검토’ 의견을 밝혔다.

지난해 5월 3일 한국장애인부모회와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가족에 의한 장애인 활동보조 허용을 거듭 촉구했다.ⓒ에이블뉴스DB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4일 제364회 국회 제11차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된 바 있다.

회의록을 찾아본 결과, 국회 보건복지위 송병철 전문위원은 법안을 설명하며, “장애인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또 장애인 방치 우려 또 가족이 급여 제공 시 부정청구 등에 대한 관리감독의 어려움 그다음에 가족에 의한 급여 제공 확대가 활동지원인력의 급여 제공 기피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의견 등 여러 가지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입법방향을 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자리한 복지부 권덕철 차관은 “중증장애인 활동지원 인력의 연계 어려움에 대해서는 공감하지만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등 장애인단체의 찬반이 굉장히 엇갈리고 있다. 일선 지자체에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반대의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장애인 활동지원인력의 휴게시간에 대해 가족에 의한 활동지원급여를 제공하는 시범사업을 운영 중에 있는데, 향후 그 결과를 보고 대상‧범위를 제한적으로 할 것인지 시행령을 개정해 추진하려고 한다”면서 “법률 명시보다는 복지부가 시범사업 실시 결과를 토대로 하위법령에서 제한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소위에 참석한 의원들 또한 권 차관의 제안에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어요”라며 동의했고, 기동민 소위원장 또한 “정부에서 제안한 대로 그렇게 결정할까요?”라며 법안 심사는 마무리됐다. 이후 다시 법안심사소위에 상정되지 않았다.

결국 20대 국회가 1년 남은 이 시점에서, 아직 장애계에서도 찬반이 극명히 엇갈리는 논란의 법안임을 감안하면, 본회의에 통과될 가능성이 낮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점은 복지부가 지난해 ‘제5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18~2022)’ 속 ‘장애인 활동보조 가족 허용 검토’ 내용을 담아냈고, 권 차관 또한 정부 자체적으로 하위법령을 개정해 제한적으로 추진해보겠다는 의지를 밝힌 부분으로, 앞으로 복지부 정책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다.

한편, 사단법인 밀알천사 남기철 이사장은 지난 19일 자폐성 장애인 가족 활동지원 허용 등이 담긴 1만명 서명서를 자유한국당 신상진 의원에게 전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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