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결산]-⑥종합조사표

다사다난(多事多難). 매년 끝자락에 서서 장애인계를 뒤돌아 볼 때 드는 생각이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발달장애인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며 청와대 삼보일배 행진, 대규모 삭발투쟁 등 대정부 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했다. 이 결과 청와대가 9월 발달장애인과 부모들을 초청한 가운데 ‘발달장애인 평생케어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상황은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추진을 위한 예산 확보가 뒷받침 되지 않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내년 장애등급제 폐지의 상황도 녹녹하지는 않다. 장애등급을 대신할 종합조사표에 깊은 우려가 제기됐다. 시뮬레이션 결과 특정 장애유형의 서비스가 대폭 줄어드는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이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해서는 활동지원사 휴게시간, 가족허용 등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했다. 무엇보다 주목될만한 키워드는 장애인 공익소송이다. 몇 년 동안 지속된 신안 염전노예사건 국가배상청구소송, 에버랜드 장애인 놀이기구 탑승거부 소송에 관해 2심 재판부가 장애인들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이 밖에도 검찰이 1980년대 대표적인 인권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을 비상상고하고 진상규명의 의지를 밝히는 것은 물론, 문무일 검찰 총장이 피해자와 가족을 직접 만나 사과한 것도 올해 빼놓을 수 없는 이슈였다.

에이블뉴스는 한 해 동안 ‘가장 많이 읽은 기사’ 1~100위까지 순위를 집계했다. 이중 장애계의 큰 관심을 받은 키워드 총 10개를 선정해 한해를 결산한다. 여섯 번째는 '종합조사표'다.

장애인과가난한사람들의3대적폐폐지공동행동 소속 회원이 11월 14일 국회 정문 앞에서 쇠사슬을 목에 걸고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를 위한 예산 증액과 여야 각당 원내대표 면담을 촉구하고 있는 모습. ⓒ에이블뉴스DB

드디어 내년으로 다가왔습니다. 장애인계의 열망이었던 ‘장애등급제 폐지’ 말입니다. 문재인정부는 내년 7월부터 2022년까지 장애등급제를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입니다.

의료적 기준에만 맞춰 1~6급 획일적으로 79개 서비스를 주던 방식에서, 장애인의 욕구와 주거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새로운 기준을 만든다는 것인데요.

“2019년 7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고, 장애인 중심의 맞춤형 지원체계가 도입된다!”(2018년 8월 22일 보건복지부 보도자료 제목)

‘그럼 당장 내 등급이 없어지느냐?’ 그건 아닙니다. 1~3급이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4~6급은 장애 정도 심하지 않은 장애인, 즉 중증과 경증으로 단순하게 구분됩니다. 서비스를 지원할 때 참고자료로 사용할 계획이니, 별도로 장애심사를 다시 받거나, 등록증을 새로 발급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주요 서비스 자격은 별도의 자격 기준이 생기기 때문인데요. 그 전에는 세분화된 등급을 부여받아 내가 필요한 서비스임에도 등급이 되지 않아 혜택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잖아요.

당장 내년 7월에는 활동지원급여, 보조기기 교부, 거주시설 이용, 응급안전서비스 등 총 4개의 일상생활 지원서비스를 우선 적용할 방침입니다. 기존의 인정조사를 대신해 개인의 욕구 환경을 평가한 종합조사표가 생기는데, 파견된 조사원으로부터 기초상담, 복지욕구 조사, 분야별 필요도 서비스 평가를 받습니다.

하지만, 복지부가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앞으로는 서비스 지원 종합조사를 통해 서비스를 지원함으로써 꼭 필요한 장애인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지금으로써는 절망적입니다.

시각장애인들이 지난 9월 3일 복지부 장애등급제 폐지 토론회에서 장애 특성에 맞는 종합조사표를 마련하라고 촉구하고 있다.ⓒ에이블뉴스DB

이미 에이블뉴스가 여러 차례 보도했듯, 종합조사표 ‘서비스 필요도 평가’ 때문인데요. 복지부가 지난 9월 3일 장애계에 공개한 종합조사표는 기존과 별반 다르지 않을뿐더러, 장애특성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총점 596점 점수제로 바뀌는 것에 불과합니다.

실제 이 종합조사표를 갖고, 등급제 폐지 3차 시범사업에 적용해봤던 결과, 최대 받을 수 있는 활동지원 시간은 15시간에 불과했고, 문재인 정부 공약이기도 한 활동지원 24시간 보장은 사실상 물거품 됐습니다. 더욱 큰 문제는 시각장애인의 활동지원시간이 9.1시간 줄어든다는 겁니다.

수치만 봐서는 모르겠다고요? 그래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복지부가 발표한 종합조사표를 갖고, 중증장애인 30명을 대상으로 실제 모의평가를 해봤는데요. 기존 활동지원 이용자의 경우 현재보다 평균 하루 3.4시간 하락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종합조사표 모의 체험 하는 모습.ⓒ에이블뉴스DB

저도 그 현장에 있었는데, 식사를 만드는 거나 차리기가 힘든 시각장애인에게 단순히 식사가 가능하냐는 질문, 언어소통이 절실한 청각장애인에게는 양치가 가능하냐는 자칫 민망하기까지한 질문으로 구성돼 장애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기존 활동지원보다 ‘뚝’ 떨어진 성적표를 받아든 중증장애인들의 심정은 또 어떻겠습니까?

가장 큰 피해가 예상되는 시각장애인들은 조직단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정부를 상대로 투쟁하겠다고 선전포고를 했고요.

“장애특성을 맞춘 종합조사표를 만들어달라!”

복지부는 더 많은 장애인단체와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기로 약속했고, 그 후 11월 중순 다시 장애계와 마주 앉았습니다. 어떤 대책을 내놨을까 기대했지만, 내놓은 대답은 2개월 전과 결론적으로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조사표를 없애고 원하는대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계의 방향에 대해서는 장기적으로 공감하지만…정확한 데이터를 산출하는 게 우선이고, 그 후 종합조사표 수정을 검토하겠습니다.”

수정안을 들고 오지도 않을 뿐더러 수정하겠다는 뚜렷한 대답도 아니고 장애인들은 또다시 애가 탑니다. 물론 행정실무자의 입장에서 정확한 데이터 산출이 중요하고 또 고충도 있겠지만은, 당장 내 혜택이 줄어들지 모르는 장애인들의 입장에서는 기약 없는 답변에 쓴소리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습니다.

“수정된 조사표를 발표하지 않으면, 복지부 정책에 협조할 수 없다”

“청각장애인을 위한 의사소통지원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있는 조사표를 짜 맞추지 말고, 아예 새롭게 만들어달라!”

결국 복지부는 검토의 시간을 가진 후, 다시 한번 장애계와의 만남을 갖기로 했습니다. 남은 기간은 약 7개월, 장애등급제가 폐지되면 기존의 혜택이 줄어들지 않음과 동시에 그간 지원을 받지 못했던 사각지대의 장애인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요? 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그저 생색내기에 불과합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는 지난 8일 국회를 통과한 예산안 속 장애등급제 ‘진짜’ 폐지를 위한 예산이 5.5%만 반영됐다고 비판한 바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홍남기 기획재정부 신임 장관을 상대로 면담까지 요구해놓은 상태입니다.

31년만에 장애등급제가 사라진다는 것은 장애계에 길이 남을 역사입니다. 그 역사가 어떻게 쓰여질지는 문재인 정부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주사위 던져진 장애등급제 폐지, 내년 7월부터 장애인들의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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