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서대문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사전 가상 투표체험’ 모습.ⓒ에이블뉴스

오는 6월13일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내가 사는 지역을 대표할 일꾼을 뽑는 날입니다.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 교육감, 구청장·시장·군수, 광역의원, 기초의원, 비례대표 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초의원 등 총 7표를 행사하게 됩니다. 단 제주도는 5표, 세종시는 4표고요.

나라의 주인인 국민은 당당히 한 표를 선사하며 참정권을 보장받습니다. 물론, 발달장애인 또한 마찬가집니다. 선거일을 20여일 앞둔 현재, 투표소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준비를 마쳤을까요?

지난 17일 서대문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사전 가상 투표체험’에 참관해봤습니다. 지역 보호작업장인 내일키움직업교육센터 소속 발달장애인 근로자 등 총 21명을 대상으로 투표 안내 영상물과 함께 투표체험까지 이뤄졌는데요. 처음으로 선거권이 생긴 발달장애인들의 엄청난 호응을 받았습니다.

임수환(20세, 지적2급) 씨는 투표에 참석하기 위해 이날 복지카드를 지참해왔습니다. “처음 투표해봐요. 저는 올해 스무살이에요”라고 소개한 수환 씨는 선관위 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며 관심을 보였는데요. 투표체험이 시작되자 7장의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재빨리 끝냈습니다. 그의 소감은 아주 간단합니다. “재밌었어요. 선거날 투표할 거에요.”

빈기현(21세, 지적2급)씨도 올해 처음 투표에 참여합니다. 가장 먼저 투표체험에 참여했던 기현 씨는 잔뜩 얼어붙은 표정으로 투표용지를 받아들고, 기표대로 갔는데요. 한참이 지나서야 투표용지를 들고 나옵니다. “어려운 건 아니고요. 생각을 좀 했어요.”

17일 서대문구선거관리위원회에서 열린 ‘발달장애인 사전 가상 투표체험’.ⓒ에이블뉴스

대체로 투표체험에는 발달장애인들이 어려움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가끔 오래 기표대에 머무르는 발달장애인들이 있었지만, 직원들의 도움을 통해 무사히 투표를 마쳤고요.

맞춤형 애니메이션 영상물 상영, 안내 책자 또한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의 이해를 도울 수 있었습니다. 지역사회 주민으로서 선거권을 가진 성인으로서 모의체험은 권리행사 방법을 알려주는 측면에서 의미 있고 좋은 경험이죠.

그러나 아쉬움은 남습니다. 내가 ‘왜’ 투표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습니다.

이혜옥 내일키움직업교육센터장은 “투표 행위 체험 자체가 발달장애인에게 의미 있는 체험이지만 영상물 속 내가 왜 선거에 참여해야 하는지, 단순 투표 행위가 아니라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뽑는다는 사전 의미 부여 작업이 부족했지 않나 싶다”고 말했습니다.

선거에 대한 사전의미 부여와 체험이 병행된다면 보다 효과적인 체험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것. 투표체험은 단순히 이벤트가 아닌, 실제로 선거날 직접 참여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발판이기 때문입니다.

지방선거 투표방식은 1,2차로 나눠 총 7장을 투표한다. 하지만 이날 체험에서는 한꺼번에 투표하는 방식을 택했다.ⓒ에이블뉴스

또 이번 지방선거는 1,2차로 나눠서 총 7장의 투표용지에 기표해야 하는 다소 복잡한 과정을 겪습니다.

먼저 1차로 교육감, 특별시장·광역시장·도지사, 구청장·시장·군수 등 총 3장을 기표한 후 넣고, 다시 2차로 지역구 시도의원, 구시군의원, 비례대표 시도의원, 비례대표 시군의원 등 총 4표의 투표용지를 받아 기표한 후 비로소 끝이 납니다.

하지만 이날 체험에서는 7장을 한꺼번에 받아 투표하는 형식이었습니다. 1, 2차로 나뉜 복잡한 투표과정을 미리 체험했다고 보기 힘듭니다. 그렇기에 “쉬웠어요”라는 소감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었겠죠.

발달장애인 유권자를 위한 맞춤형 영상물 캡쳐.ⓒ유튜브캡쳐

지난달 장애인의 날을 하루 앞두고 한국피플퍼스트 등 장애인단체는 지방선거 발달장애인 참정권 보장 요구안을 발표한 바 있습니다. 발달장애인도 스스로 결정하고 참여하는 선거가 되야한다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읽기의 어려움이 있는 유권자들을 위해 후보사진과 정당 로고가 들어간 투표용지, 쉬운 공보물 등을 제공해달라는 요구였습니다.

하지만 이날 체험에서 확인해 본 결과 특별한 투표용지는 아니었습니다. 선관위가 소개한 장애인 투표편의 자료에도 이 같은 내용은 없었습니다.

글자로만 되어 있는 기존 투표용지는 글을 읽지 못하는 발달장애인들이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에 해외에서는 실제로 후보 사진과 정당 로고가 들어간 투표용지를 활용하고 있구요.

올해 6․13 지방선거에서는 발달장애인들이 ‘한 표’를 선사할 수 있을까요? 조금만 더 당사자 입장에서 고민해봤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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