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주최 성 생활 재활세미나 전경.ⓒ에이블뉴스

척수장애인들에게 ‘걷기’와 ‘성 생활’ 중 하나만 꼽으라면 무엇을 꼽을까?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성 생활’을 꼽는다. 척수장애인들이 ‘진짜’ 원하는 것은 걷는 것이 아닌, ‘그것’이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2002년 당시 26세의 팔팔했던 청년 안권수 씨는 오토바이 사고로 인해 명치 아래로 감각이 없는 척수장애인이 됐다. 사고 이후 외형상에 문제는 없었지만, 손으로 느끼는 감촉이 남의 몸을 만지는 낯선 느낌이었다.

“장애 전에는 발기 자제가 힘들었는데, 장애 후에는 발기 유지가 힘들었어요.”

병원생활 당시 여자친구 이자 현재의 아내와 좁은 침대에서 애무도 나눴지만, 예전과 같은 성적 흥분을 유지하진 못 했다. 소변줄에 끼어진 성기를 보며 자괴감도 들었다. 심지어 몸을 못 움직이는 것보다 감각이 없는 것이 더 힘들었다.

안권수 씨가 장애를 갖기 전 모습과 현재 아내와의 사진.ⓒ에이블뉴스

한림대학교 동탄성심병원 비뇨기과 한준현 교수에 따르면, 척수 손상 후 25%가 성관계가 가능할 정도로 발기기능이 회복된다. 그 나머지 75%는 발기기능에 장애를 갖게 된다. 정자의 활동력이 떨어짐에 따라 20%정도만 사정이 가능하다.

“사고 후에 이런 몸으로 어떻게 성생활이 가능할지, 성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해 배우자가 떠나가지 않을까 고민이 많았습니다.”

안 씨가 안고 있던 성문제, 어떻게 극복했을까? 바로 국립재활원에서 실시하는 성재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다.

사례 공유 뿐 아니라 외국의 시청각 자료들을 시청하며 이론적으로 많은 경험을 쌓았다. 발기에 도움을 주는 약을 먹고 배우자와 여러 차례 시도 해본 끝에 성공했다는데.

해오름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안권수 씨가 발표하고 있다.ⓒ에이블뉴스

14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척수장애인협회 주최 ‘sex and life’ 성 생활 세미나에서 안 씨는 이 같이 강조했다.

“배우자와 솔직하고 구체적인 대화를 많이 했고, 약을 먹고 충분하게 시도하며 사랑을 나눴습니다. 그 결과, 예전 일방적인 성생활에서 벗어나 아내에 맞춰 만족감이 높아졌습니다. 왕복운동으로 배변 활동에도 도움이 됐고, 부부관계 형성에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척수장애인에게 성 생활은 소중합니다.”

물론, 안 씨와 같이 성 재활교실을 찾는 척수장애인이 있는 반면, 그 자체도 용기가 없어 ‘끙끙’ 앓고 있는 당사자들도 많다. 손상초기부터 성재활과 성상담이 이뤄져야 함에도 당사자, 가족, 의료진도 성 문제를 후순위로 미뤄두고 있는 현실.

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에이블뉴스

척수장애인협회 이찬우 사무총장은 성문제 해결을 위한 제도 지원으로, 단기적으로는 정자 냉동보관 법제화, 재활병원 환경개선, 성교육 등 성재활 의무화 등을 제언했다.

이 사무총장은 “척수장애 이후 정자의 양이나 질이 떨어지고 사정의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척수장애인들이 결혼 후 2세의 임신을 위해서 손상초기에 정자냉동보관의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나아가 장기적으로 줄기세포 현실적 연구, 최중증장애인의 성적 권리 논의 필요 등도 함께 들었다.

이 사무총장은 “2000년대 초 핑크 팰리스, 섹스볼런티어가 장애계에 성논란의 바람을 일으켰다. 섹스할 권리와 성도우미에 대해 논쟁이 일었지만 결론 없이 마무리 됐다”면서 “중증장애인의 성적권리를 개인이 알아서 할 일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이 사회의 성적 수준과 괴리가 있다. 건전한 성을 지향하기 위해서는 중증장애인들의 건전한 성적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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