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진행된 중증장애인 생존권 예산쟁취 위한 전국투쟁결의대회에서 삭발을 하고 있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 ⓒ에이블뉴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2017 중증장애인 생존권 예산쟁취공동행동은 9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전국투쟁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대회에서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양영희 회장과 박대희 부회장, 노금호 부회장이 삭발에 나서 2017년도 중증장애인 생존권 예산 쟁취를 위한 투쟁의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양영희 회장이 삭발식에서 낭독한 편지는 장애인들에게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기에 충분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아빠!

아빠!

10년 만에 큰 소리로 아빠를 불러 봅니다.

아빠 나 지금 삭발해요.

10년 전 아빠가 떠날 때도 삭발을 했지요.

삭발 결의하고 나서

제일 먼저 아빠 생각이 났어요.

한국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대표도 아니고

중랑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도

자립생활 운동을 하는 활동가도 아닌,

장애를 가진 한 사람

양영희라는 사람으로

아빠가 사랑해주었던 딸로서 지난 시간을 생각하게 되네요.

자립생활운동을 시작하고 두 번째 삭발이에요.

2006년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을 하면서 삭발을 했었는데,

내 꿈을 이루기 위해 또 머리를 깎아요.

2006년 처음 활동보조제도화 투쟁을 시작할 무렵,

아빠는 폐암선고를 받으시고 4개월 만에 돌아가셨지요.

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나는 그때 길바닥에 있었지요.

시청 농성장에서 투쟁하면서

더 이상 가족의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어요.

남은 엄마에게도, 남동생에게도, 여동생에게도 부담을 주기 싫었어요.

나는 그때,

자립하지 않으면

언젠가 시설에 가게 되거나

평생 엄마, 동생들에게 짐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절실함 때문에

투쟁이 절박할 수밖에 없었어요.

아빠에게

살아생전 효도는 못할망정

걱정거리로 남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습니다.

평상시 나를 활동지원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으로

아빠의 불안을 덜어드리고 싶었습니다.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평생 장애가 있는 딸자식 걱정으로 보낸 아빠!

‘아빠 걱정 마. 나 잘 살 수 있어!’

마지막 가시는 길이라도 편히 보내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활동보조 투쟁은 절실했고

나의 생존이자

아빠에게 드릴 수 있는

마지막 효도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또다시 머리를 깎습니다.

활동보조 예산 때문에, 장애인 생존권 예산 때문에

아니,

내가 정말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삭발을 또 해요.

내게 꿈이 있기 때문에 머리를 깎습니다.

걱정되세요?

아빠

내가 지난 10년 동안 깨달음이 있다면

나의 어려움과 고통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에요.

가난한 사람들, 장애가 있는 사람들, 못 배운 사람들, 빽 없는 사람들은

행복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있어요.

저는 이런 사회를 조금이나마 바꾸고 싶어요.

정말 다 같이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제대로 인간답게 살고 싶어요.

그런데 이 사회는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더라구요.

더 무시하고 더 핍박하고 더 차별하고

인간답게 살겠다고 권리를 보장하라고 하면

‘옛다 우는 아이 떡하나 더 준다’는 식으로

귀찮아하면서 콩고물이나 던져주는 그런 사회더라구요.

아빠!

그래서 지난 세월 싸워왔고

그래서 지금 또 머리를 깎는 거예요.

장애인으로서 내 존재를 인정하라는 싸움을 하는 것이에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싸움을 포기할 수 없어요.

먼저 간 나의 동지들

송국현, 김주영, 지영, 지우지훈, 박진영, 최종훈, 장성희, 장성아

그리고 소리 없이 죽어간 많은 장애인들

더 이상 또 다른 동지들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것을

볼 수 없기에 싸움을 하는 것이에요.

아빠! 걱정 마세요.

우리는 떼를 쓰는 것도

남의 것을 뺏는 것도 아니에요

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가진 것이 없다고

사람 취급을 하지 않는 이 사회에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에요.

우리도 인간답게 살자고. 함께 살자고.

우리 꿈을 위해 머리를 깎는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나를 응원해주세요.

염려하지 말고 우리를 격려해주세요.

‘옳지 옳지! 내 딸 잘 싸운다!’

아빠!

내 옆에는 함께하는 든든한 동지들이 있어요.

아빠!

그리고

우리가 잘 하는 것이 있어요. 질기게 끝까지 투쟁하는 거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 우리가 만들겠어요.

끝까지 싸울거에요.

행복하게 잘 살기위해 잘 싸울께요.

걱정 말아요. 아빠!

2016년 9월 9일

아빠의 사랑하는 딸 영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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