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Mongolia, 蒙古)은 아시아의 중앙 내륙에 있는 국가이다. 13세기 초 칭기즈 칸이 등장하여 유럽을 제패했던 유목민족이며 수도는 울란바토르(Ulaanbaatar)이다. 여기까지는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다. 몽골의 면적은 156만 4116㎢인데 인구는 317만 9997(2012년)명이라 인구밀도는 1.70명/㎢(2009년)이니 그야말로 땅은 넓은데 사람은 적어서 널찍하게 살고 있다.

참고로 남한의 면적은 9만 9373㎢이고, 인구는 4790만 4370명(2001년)이라 인구밀도는 475.7명/㎢(2001년)이라고 한다. 그리고 2016년 3월 현재 부산의 인구는 351만 1974명이니 몽골의 전체 인구보다 많은 셈이다.

2010년도 몽골의 장애인 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

1인당 국민소득으로 보자면 우리나라가 몽골보다는 한참 높다. 그래서 많은 몽골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 외국인이 한국에 오는 것은 결혼, 관광, 유학, 취업 등 여러 방법이 있지만 대부분이 한국에서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2010년 통계에 의하면 몽골의 장애인은 82,631명이고, 우리나라의 장애인은 2,517,312명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장애진단 방법이 엄격해져서 장애인은 더 줄었지만……. 2014년 현재 우리나라의 등록장애인 수는 2,494,460명이다.(통계청 자료)

2014년 등록장애인수. ⓒ통계청

몽골의 청각언어장애인은 9,607명인데 이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한국에 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2010년 여름 몽골의 농인 여성(토야라고 부름)이 한국으로 시집을 왔다.

남편은 경남 김해에 사는 같은 농인 김모 씨다. 김 씨나 토야 씨나 둘 다 재혼이었다. 2009년 남편 김 씨가 몽골에 가서 여자를 만나 좋다고 해서 다음해에 토야 씨가 한국에 왔다. 필자가 김 씨와 토야 씨 부부를 만나 보았지만 결혼과정에 대해서는 그들도 자세히는 알지 못했다.

남편 김 씨와 아내 토야 씨는 둘 다 농인이었고 농인은 수어로 대화를 한다. 한국과 몽골의 수어가 약간 씩 다르기는 하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의미전달은 된다. 수어 즉 손짓은 만국 공통어이므로. 따라서 한국 농인 김 씨와 몽골 농인 토야 씨가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토야 씨의 장애인 복지카드. ⓒ이복남

토야 씨는 몽골에서 일찍 결혼하여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김 씨에게는 자녀도 없었다. 김 씨는 A공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결혼 한 토야 씨도 혼자 집에 있기가 그랬는지 남편이 다니는 는 A공업에 입사를 했다.

A공업은 전자레인지 부품을 만드는 회사였다. A공업에서 토야 씨는 프레스 작업에 배치되었는데 프레스 작업은 3인 1조였다. 첫 번째 사람이 프레스를 작동하고, 두 번째 사람이 제품 재료를 프레스에 넣으면, 첫 번째 사람이 프레스를 내려서 찍고 다시 올리면, 세 번째 사람이 프레스로 만들어진 제품을 꺼내는 시스템인데 토야 씨는 세 번째 담당이었다.

그런데 토야 씨가 프레스에서 완성 된 제품을 꺼내려는 순간 위로 올라간 프레스가 떨어졌다. 아악! 제품을 꺼내려던 토야 씨의 두 손위로 프레스가 떨어졌던 것이다.

제품 재료를 넣으면 프레스가 내려와서 제품을 찍고 다시 위로 올라가면 그 사이에 토야 씨가 완성품을 꺼내고, 다시 제품을 재료를 넣으면 프레스가 내려와야 되는데 완성품을 꺼내기도 전에 프레스가 내려왔던 것이다. 아마도 첫 번째 사람의 실수이거나 프레스가 오작동을 일으킨 모양이었다.

이 부분은 필자가 어렵사이 A공업을 찾아서 전화로 당시 상황을 물어서 겨우 알게 된 내용이다.

토야 씨는 2010년 11월 17일에 입사했는데 한 달도 채 안 된 12월 14일에 사고가 났다. 프레스에서 제품을 꺼내려고 두 손을 다 넣은 상태였으므로, 오른손은 손목부분이 잘리고, 왼손은 엄지손가락만 남았는데 나머지 부분은 뱃살을 떼어서 봉합했다고 한다.

토야 씨에게는 남편 외에는 이렇다 할 가족도 없이 길고 긴 고통 속에서 홀로 견뎌야 했다. 토야 씨는 회사에서 그리고 근로복지공단에서 정해주는 대로 서너 군데의 병원을 전전했다. 1년여의 치료가 끝나고 2011년 1월 19일에 요양이 결정되었다.

산재로 잃은 토야 씨의 손. ⓒ이복남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 [장해등급의 기준]

*오른손 제5급 2호

2. 한쪽 팔을 손목관절 이상의 부위에서 잃은 사람

*왼손 7급 6호

6. 한쪽 손의 엄지손가락과 둘째손가락을 잃은 사람 또는 엄지손가락이나 둘째손가락을 포함하여 3개 이상의 손가락을 잃은 사람

근로복지공단에서 토야 씨가 받은 5급 2호와 7급 6호를 조정하여 장해등급 3급 00호로 판정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3급에 해당하는 장해연금을 받았다.

이 부분도 필자가 토야 씨를 만난 후에 근로복지공단에 토야 씨의 복지카드를 첨부해서 자료 신청을 해서 얻은 내용이다. 자료를 받고 나서 농아가 두 손을 잃었으니 언어상실률이 포함되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더니 아직 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그런 조항은 없다고 했다.

농인이 손이 없으니 수어를 하지 못한다. 왼손 엄지손가락에 볼펜을 끼고 겨우 글자를 쓸 수는 있지만 토야 씨는 아직 한글을 잘 모른다. 우리나라 농인 중에도 한글은 알지만 문장이 안되는 사람이 많다. 왜냐하면 수어가 그들의 모국어니까. 토야 씨를 필자에게 데려 온 강주수 수어통역사는 연금이 너무 적다며 안타까워했다.

한국농아인협회에 문의를 했다. ‘농아가 산재로 두 손을 잃으면 언어 상실률 적용되느냐’ 아직까지 그런 사례는 없다고 했다. 예전에 남자 농아가 선원으로 일을 하다가 두 손을 잃었지만 언어 상실률은 포함시키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나 수화언어법이 제정이 되었으니 이제는 달라지지 않겠느냐고는 했다. [한국수화언어법] 시행일 2016.08.04.

그런데 [한국수화언어법] 어디에도 농아가 두 손을 잃으면 수어를 잃게 되므로 이에 대한 보상을 해야 된다는 조항은 없었다.

산재장애인협회에도 문의를 했다. 농아가 두 손을 다 잃은 사례는 잘 모르겠지만 장해연금이 100여만 원이라면 장해 3급에 대한 최저임금이라고 했다. 처음보다 약간은 인상이 되어 현재는 1,140,970원을 받고 있었다.

토야 씨가 근로복지공단에서 받게 되는 백여만 원의 연금은 토야 씨가 한국에 있는 한 평생 동안 받게 된다. 만약 토야 씨가 몽골로 돌아간다면 그 중에서 일정부분을 계산해서 일시불로 받게 된다고 한다. 그러나 토야 씨는 다시 몽골로 돌아 갈 생각은 없다고 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첫째는 한국에 온 외국장애인의 산업재해에 관한 문제이고, 둘째는 청각장애인이나 시각장애인이 산재로 손의 기능이 상실되었을 때 가중 보상제도가 신설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청각장애인은 수어를 할 수가 없고, 시각장애인은 점자를 읽을 수가 없을 것이므로…….

* 이복남 기자는 에이블뉴스 객원기자로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원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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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웃이 행복하지 않는 한 나 또한 온전히 행복할 수 없으며 모두 함께 하는 마음이 없는 한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야 할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가진 자와 못 가진자,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평등하게 공유할 수 있는 열린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쓸모 없음을 쓸모 있음으로 가꾸어 함께 어우러져 나아갈 수 있도록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고 화합하여 사랑을 나눔으로 실천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복남 원장은 부산장애인총연합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으며 현재 하늘사랑가족상담실을 운영하고 있다. 하사가장애인상담넷www.gktkr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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