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리면서 삭발식을 지켜보는 장애부모들과 삭발을 하고 있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남연 대표. ⓒ에이블뉴스DB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서울지부와 서울특수학교부모협의회는 24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시 발달장애인 부모 무기한 삭발결의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발달장애인 6대정책 요구안에 대한 입장을 나타내지 않는 서울시를 향해 부모들의 강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

움직이는 이발기에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윤종술 회장과 서울지부 김남연 대표의 머리카락이 잘려나갈 때, 서울지부의 한 회원은 '삭발을 하는 벗이여'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독했다. 다음은 편지 전문이다.

삭발을 하는 벗이여

묻는다, 2016년 5월에 우리는 무의미했는가.

늦봄과 초여름 사이, 찬 비도, 바람도, 때이른 더위도, 우리에게는 무의미했는가. 그것이 아닐진대, 우리는 왜 대답 없는 광장 한 가운데서 이렇게 무참한 심정으로 앉아 있는가.

간밤에 더위를 식히는 비가 내리고, 우리의 뜨거웠던 열망, 차올랐던 기대, 그것들도 함께 식었다. 그 빗소리를 들으며, 이제까지 이웃이요, 벗이었던 이가 무서운 침묵의 투사로 벌판에 서지 않게 되기를, 밤새 빌었다.

묻는다. 우리가 남이 갖지 못한 것을 욕심냈는가. 우리가 남이 누리지 못하는 것 갖기를 바랐는가. 우리가 다른 이 젖혀두고 내 새끼만 앞세우는 이기심을 부렸는가. 정녕 우리가 떼를 썼는가, 억지를 부렸는가, 그토록 염치가 없었는가.

이십여일을 먼지 날리는 길바닥에서 자려고 마음을 담아 정책안을 만들었던 게 아니다. 두드리다 지쳐서 드디어 닫힌 문 앞에서 머리 깎으려고 수정안을 공들여 내보였던 게 아니다.

시민의 공복이라는 당신들이 누구이건대, 국민의 대변인이라는 당신들이 대체 누구이건대 이렇게 한결같은 우리의 시선을 외면하는가. 대체 당신들이 누구라고 우리를 이토록 무참하게 만드는가.

공무원도, 시의원도, 국회의원도, 시장도, 그 누구도 오늘 이 자리에는 오지 말라. 책임지지 않으려는 자, 그 누구도 이 곳에 와서 어지러이 떨어지는 우리 머리카락을 감히 쳐다보지 말라.

당신의 누이가, 어미가 머리를 깎는다고도 감히 생각지 말라. 오늘 이 자리에 선 우리는 당신들의 누이가, 당신들의 어미가 아니다. 결코 당신들의 시민이 아니다.

지난 이십여 일, 멀리서 구경하는 당신들을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내 새끼와, 내 새끼를 품은 어미, 오직 우리 둘인 양, 우리는 서러웠다. 멀리서 뜨신 밥을 해오고 거친 잠자리를 다독이는 동지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서러움에 지쳐 쓰러졌으리니, 우리의 오월은 아마도 실패였다.

그렇다. 이 오월에 우리는 실패했다. 우리는 희망을 품기에 실패했고, 품위있는 삶을 소망하는 데 실패했고, 평화롭고 조화로운 길을 찾는 데 실패했다. 어질고 현명한 시민의 공복(公僕)을 갖는 데 실패했으니, 우리의 실패는 곧 당신들의 실패다.

그러나 우리는 주저앉지 않겠다. 내가 주저앉으면 내 아이는 숨조차 쉴 수 없다. 내가 멈추면 내 아이는 웃고 노래할 수 없다.

혼란스런 마음, 불안한 의지, 다스려지지 않은 분노를 내 어지러운 머리카락에 담아서 잘라낼 것이다. 그러니 우리의 삭발은 그저 단순한 오기가 아니다. 그저 한순간 분노의 결기가 아니다.

머리카락을 처연하게 잘라내고 우리는 다시 파도처럼 몰아칠 것이다. 우리는 희망이 다시 자라지 않는 한 우리의 머리카락도 자라지 않을 것을 안다.

머리카락을 자르는 벗이여, 동지여. 우리는 담대하게, 우리는 강하게, 우리는 정의롭게, 우리는 아름답게, 우리는 기쁘게, 우리는 평화롭고 행복하게, 오월의 오늘, 장애 없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내딛는 것이다.

사랑한다, 동지여.

사랑한다, 내 아이여.

사랑한다, 내 아이에게 바친 나의 생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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