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에도 장애인들의 고속·시외버스 타기 투쟁은 계속됐다. ⓒ에이블뉴스DB

[2015년 결산]-⑤시외이동권

다이내믹했던 2015년이 끝나간다. 장애등급제 폐지,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장애인연금, 장애인 시외이동권, 서울커리어월드 등 올해 장애인계에서 가장 관심을 모았던 키워드는 무엇이었을까?

에이블뉴스는 지난 1일부터 15일까지 진행한 ‘2015년 장애인계 10대 키워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를 중심으로 한해를 결산하는 특집을 전개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는 ‘시외이동권’으로 설문조사에서 170표를 얻어 5위에 올랐다.

올해에도 장애인들의 시외이동권 투쟁은 계속됐다. 명절, 휴가철에 고속·시외버스 타기를 벌였고, 이를 근거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차별 진정을 제기하기도 했다.

법원의 시외이동권 공익소송 1심 판결은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아 실망을 안겨줬다.

그나마 성과라면 국가인권위원회가 직원 조사 결과를 토대로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는 국회·정부의 상황을 지적하며,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승강설비를 갖출 수 있도록 재정지원 방안 마련과 관련 법령 개정을 권고하고 일부수용을 얻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올해도 타지 못한 시외·고속버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외·고속버스 타기’ 투쟁을 벌였다. 명절과 휴가철에 버스표를 예매하고, 고속·시외버스터미널을 찾은 것으로 전국 각 지역 장애인단체도 동참해 힘을 보탰다.

남들처럼 원할 때 시외·고속버스로 이동해 가족, 친구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수 있는 환경 마련 요구를 위한 투쟁이었다.

현재 시외·고속버스는 저상버스가 없고,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을 위한 탑승시설을 갖추지 못하고 있어 이용이 불가능하다.

장애인계가 온 몸을 던져 ‘장애인 등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을 제정한 지 올해로 10년을 맞았지만 ‘교통약자는 모든 교통수단, 여객시설 및 도로를 차별 없이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용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된 조항이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현실에 몇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정부를 향해 외치고, 외쳤지만 올해에도 변한 건 없었다.

‘고속·시외버스, 저상버스 비율 0%’. 장애인들은 시외·고속버스 앞에서 매번 좌절을 맞봐야 했다. 할 수 있는 건 참담한 심정이 담긴 목소리를 높이는 것뿐이었다.

닫혀버린 고속버스에 좌절하는 장애인. ⓒ에이블뉴스DB

“우리도 시외·고속버스 타고 고향에 좀 갑시다. 형네 가서 가족들이랑 즐겁게 밥 한 끼 같이 먹고 싶은데 왜 우리는 안 되는 겁니까?”

“우리들은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에 가 본적이 없다. 시외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휴게소에서 파는 감자와 옥수수를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

전장연은 표를 예매하고도 고속·시외버스에 탑승하지 못한 장애인들의 의견을 모아 지난 8월과 10월 두 차례 인권위에 장애 차별로 집단 진정하기도 했다.

인권위, 국가의무 ‘미이행’…휠체어 승강설비 갖춰야

올해 시외이동권과 관련 주목할 점은 인권위의 직권조사에 따른 권고와 공익소송 1심 판결을 들 수 있다.

인권위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인 고속·시외버스를 이용할 수 없어 배제당하고 있는 것을 중대한 문제로 보고 직권조사를 진행, 그 결과를 5월 7일 발표했다.

조사결과 지난해 10월 1일 기준 전국에서 운행 중인 고속버스 1905대와 시외버스 7669대 가운데 휠체어 승강설비 및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 공간이 설치된 버스는 한 대도 없었다.

더욱이 현재 운행 중인 고속·시외버스를 부분 개조해 휠체어 승강설비를 장착하는 것과 휠체어 사용자를 위한 전용공간을 설치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모두 가능하고,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등에 규정된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한 의무를 국가가 충실히 이행하지 않았다고 봤다.

이에 따라 국회의장과 기획재정부장관에게 버스운송사업자가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이 탑승 가능한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 국토교통부장관에게 향후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 수립 시 고속·시외버스에 휠체어 리프트 등 편의시설을 단계적으로 갖출 수 있는 방안을 포함할 것과 함께 관련 법령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국회는 2016년도 예산안 심의·의결에서 고속버스 이동편의시설 설치지원 사업예산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기획재정부는 고속·시외버스 등 지역 간 이동수단에 대한 재정지원 확대와 관련 시내저상버스와 장애인콜택시 정착 후 성과평가 등을 거쳐 결정할 필요성이 있다며 유보적 입장을 내놓았다.

국토교통부만 2016년도 '제3차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2017년~2021년) 수립 시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의 고속·시외버스 탑승 및 시외 이동권 강화대책을 적극 검토할 계획이며, 이들이 탑승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고속·시외버스 등이 개발·제조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할 것을 밝혔을 뿐이다.

목이 터져라 외치고 외쳐도, '고속·시외버스, 저상 비율 0%' 현실은 변함이 없다. ⓒ에이블뉴스DB

법원 시외이동권 공익소송 1심 판결에 '실망'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 46부의 지난 7월 10일 시외이동권 공익소송 1심 판결은 장애인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

장애인, 노인, 영유아동반자 등 5명의 교통약자가 ‘시외구간에서 이용할 수 있는 버스가 도입되지 않아 편의를 제공해 달라’며 국가, 지방자치단체, 버스회사 등 8곳을 상대로 낸 차별구제 및 손해배상 청구소송.

법원이 버스회사에 대한 책임만을 인정했을 뿐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관련법에 따라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할 때 교통약자가 이용 가능한 저상버스 등의 도입 포함 요구와 손해배상 청구를 기각한 것이다.

장애인계는 일부승소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실망스러운 판결이라고 평가하며 반발했다. 소송을 지원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전장연 등 8개 단체로 구성된 '이동권소송공동연대'는 즉각 항소, 법정 공방을 이어가고 있다.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문제 해결을 위해 선행돼야 할 것은 인권위의 권고와 같이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을 명확히 하고, 교통사업자가 휠체어 사용 장애인 등이 탑승 가능한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하는 경우 재정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실은 녹녹하지 않다. 원초적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자체가 여전히 장애인 시외이동권 보장을 외면하고 있기 때문으로 내년에도 장애인들의 끝 모를 고속·시외 버스타기 투쟁과 인권위 진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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