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장애인이야!” 나는 태어나서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로 취급됐다. 시골집을 두 팔로 기어 다니는 것이 전부였던 나의 꿈은 교복을 입어보는 것이지만 현실에 녹록치 않았다.

좌절감에 방황하던 나는 결국 생각을 바꿨다. 학생회장에 출마하고,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참가하고, 명문대에 진학하는 ‘슈퍼 장애인’이 된 것. 하지만 내 진짜 속마음은 비장애인이 되고 싶은 것이 간절하다. “나는 비장애인보다 무엇이 더 뛰어나지?” 오늘 하루도 그들의 삶을 부지런히 쫓는다.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 재직 중인 옆집 형은 나와 달리 장애인들과의 모임에서만 편안함을 느낀다. 수급자인 그 형은 문화생활이나 소비생활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10년 전 자동차를 샀더니 “돈이 어디서 났냐”는 타박에 잔뜩 주눅이 들었다는 것이다.

형은 참 소심하다. 누구한테 불편할까봐, 두려울까봐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는다. 사실 수급자인 나 역시도 아웃백에 가면서도 ‘이래도 되는 건가’라는 눈치를 봤다는 것은 비밀이다.

장애를 갖고, 기초생활수급자인 우리에게 사회는 늘 “장애인답게, 수급자답게 살라”고 강요한다.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해외여행 같은 사치를 부리기 때문이라며 “쯔쯧” 손가락질이다.

‘국가로부터 생계비 지원을 받는 기초생활 수급권자들 가운데 수십만 명이 해외여행을 다니고, 수천 명이 다수의 차량을 소유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국이 부정수급자 관리에 부실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지난해 9월, ‘부정수급자’로 낙인찍힌 신문기사를 보며 우리는 더욱 수그러들 수밖에 없다. 매년 공항을 찾는 북적이는 인파가 비춰지지만 우리는 해외여행을 꿈도 못 꾸는, 해서는 안 되는 사회에 서글프다.

2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장애의 재해석 논문발표회’ 모습.ⓒ에이블뉴스

20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한국장애인재단 주최 ‘장애의 재해석 논문발표회’ 우수논문 으로 선정된 ‘장애인 수급자다움이라는 아비투스 형성에 관한 연구: 장애인 기초생활수급자의 해외여행사례를 중심으로’를 재구성한 내용이다. 연구자는 고려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사회학과 박홍근, 허준기씨.

이날 논문을 발표한 박홍근씨는 “장애인분들 모두 장애는 스스로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성장하며 사회적 문제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인식을 했음에도 정작 실생활에서는 장애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며 “불평등한 현실 속에서 괴리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괴리는 해외여행을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장애인 수급자가 모두 비슷한 경제사정임에도 누구는 돈을 모아서 다녀오고, 누구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장애는 사회적인 억압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자신의 장애가 남에게 폐를 끼친다는 생각을 동시에 갖고 있기 때문.

박씨는 “장애에 대한 정책이나 제도가 바뀌었지만 실제로는 장애인의 몸을 갖고 있고 몸으로써 차별받는 상황에서 괴리를 느낀다. 이는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말해주기 때문”이라며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사회억압의 해결은 시설 개선이나 제도적 접근 뿐 아니라 변화하는 존재로써 장애인을 인정하는 것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논문 발표회에서는 우수논문 박홍근, 허준기씨 외에도 총 5편의 논문이 발표됐다. 재단의 논문지원사업은 연구계획서를 채택해 논문이 완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으로, 오는 12월13일까지 ‘2016년 논문지원사업’의 주인공을 모집 중이다.

20일 한국장애인재단 주최 ‘장애의 재해석 논문발표회’에서 우수논문으로 선정된 고려대학교 박사과정 허준기씨와 박홍근씨가 이성규 이사장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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