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우리균도 북토크에서 강연중인 균도아빠 이진섭씨.ⓒ에이블뉴스

“발달장애인 부모님들을 위해 항상 길 위에 서있겠습니다.”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열린 ‘우리균도 북토크’에 참석한 이진섭씨의 이름이 낯설다. 그에게 익숙한 이름은 ‘균도아빠’이기 때문이다.

진섭씨는 그간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져있다. 1992년 고리원전 근처에서 태어난 다섯 살 지능에 과잉행동 장애를 일으키는 발달장애1급 균도의 아버지다. ‘균도와 세상걷기’란 이름으로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40일을 걸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은 것.

‘왜 걸었을까?’란 의문에 대해 진섭씨는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처음에는 균도엄마의 휴가를 주기 위해서였지만, 걷다보니 의미가 생겼다. ‘발달장애인 가족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서’ 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진섭씨는 균도 대신 사회복지학과 3학년에 편입해 2011년 대학을 졸업했다. 100명중 2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불러주는 곳은 없었다. 그의 자폐성장애인 균도도 마찬가지. 특수학교에서 졸업한 그의 아들 또한 갈 곳은 없었다.

백수가 된 아빠와 아들, 집사람에게 강제 휴가를 주고 싶어 무작정 떠났다. 돈도 없었다. 모두들 실패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냥’ 걸었다.

“모든 분들이 실패한다했어요. 누가 내를 믿겠어요? 균도와 끈을 묶고 그 길을 걸었어요. 균도는 차소리가 나면 사람을 밀거든요. 끈을 묶으면 지하고 묶고 있는 것을 아니까 안 밉디다(웃음)”

발달장애인법 제정과 부양의무제 폐지를 외치며 40일을 걸어 부산에서 서울까지 걸었다. ‘균도와 세상걷기’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도보시위는 이후 사람들의 성원과 관심이 더해지며 다섯 차례에 걸친 3000킬로미터 국토대장정이 됐다.

이들 부자가 1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2011년, 장애아동복지법이 제정됐고 5차 세상걷기를 끝내고 난 지난해, 발달장애인법이 제정됐다. 또 강원도 원전들을 따라 걸은 4차 세상걷기 전에 제기한 갑상선암 소송에서도 승리를 거두기도. 덕분에 환경운동가들이 발달장애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 이는 ‘우리균도’란 책에 자세히 담겨있다.

“우리 발달장애인의 문제를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잊지 않으려고 계속 걷기운동을 했습니다. 저는 균도가 없었으면 운동 안 했습니다. 균도 문제를 제기 하기 위해서 길 위에 선겁니다.”

균도와 진섭씨의 노력의 힘이 빛을 발했던 발달장애인법, 장애아동복지지원법 제정. 하지만 진섭씨의 길은 끝이 아니다. 기초생활보장법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부양의무제가 폐지되지 않으면 발달장애인법 100개 있어도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아무리 자식이 장애를 갖고 있어도 내가 얼마 이상 벌면 부모 책임입니다. 사회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줘요. 학교 다니면 교육청에서 10만원인가 바우처 그게 전부죠? 사회 나가면 다 자부담입니다.”

진섭씨는 소위 ‘있는 사람’ 입장에서 운동하지 않는다. 돈만 있다면 굉장히 살기 좋은 세상, 없는 부모들, 갈 곳 없는 부모들. 그 가족들이 잊혀지지 않기 위해 길거리에 나온다.

“옛날 수영하는 진호 같은 경우 아버지가 의사에요. 그런 사람들은 살만하단 말이예요. 저는 없는 사람들을 위해 길거리에 나와있습니다. 거리에 나오시면 인생이 바뀝니다. 길에서 부모님들을 위해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22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우리균도 북토크’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균도아빠’ 이진섭씨와 균도씨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김재형 부회장으로부터 복지부장관 표창장을 받았다.ⓒ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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