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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수장애인 동료의 죽음, 공포감 그 자체”

20년째 전신마비 김홍기씨, ‘진퇴양난 삶’ 토로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15-03-17 16:13:06
처음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다. 자신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비춰지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 그에게 “척수장애인들이 처한 현실은 당사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지 않겠냐”라고 설득한 끝에 그는 “그렇다. 척수장애인들의 현실을 제가 말씀드리겠다”며 수락했다. 그는 자신이 처한 현실을 ‘진퇴양난’이라고 표현했다.

■20년 전, 180도 바뀐 운명=서울 도봉구 방학동에 살고 있는 김홍기(48세, 지체1급)씨의 20여 년 전 인생은 누구보다 순조로웠으리라. 연세대학교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후 건실한 직장인으로, 한 여자의 남편으로 보람차게 살아가던 그의 운명이 뒤 바뀐 건 1995년 9월, 어느 금요일이었다.

본가인 대구에 내려갔다가 회사의 휴일 특근계획에 서울로 올라오던 길이었다.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천안삼거리 휴게소에 진입하려던 그의 차가 먼저 들어오려는 대형 화물차를 피하려고 핸들을 돌리는 순간, 그 날 새벽 비로 젖어있던 휴게소 광장으로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수 미터를 밀려가던 그의 자동차는 화단 턱에 충돌하며 180도 회전, 전복됐다. 그 후 그는 가슴 밑으로는 아무런 감각도 없는 사지마비 장애인이 됐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는 괜찮아서 걸어 나왔어요. 그런데 1시간 정도 지났나 화단에 앉아있었는데 팔다리가 움직이지 않는 거예요. 처음에는 늦어도 몇 달이면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진단은 경추 4,5번 골절, 말로만 듣던 사지마비가 됐어요. 같은 4,5번 경추를 다친 사람 중 가장 상태가 좋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많은 척수장애인들에게 나타나는 ‘이렇게 살 바에는 그냥 죽어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극도의 불안감과 절망감도 그를 피해갈 순 없었다. 이 세상에 나 혼자 남겨진 듯한 비애감과 상실감이 눈만 뜨면 밀려왔다.

회사를 상대로 산재 신청을 위해 2심 고등법원까지 갔지만 끝내 패소했다. 정상적인 출퇴근길이 아니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설상가상으로 결혼 후 6개월 만에 사고가 난 홍기씨의 뒷바라지를 도왔던 아내도 결국 그를 떠나고 말았다.

■좌절만 가져다준 미국 유학=아무런 도움 없이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으로 장애인이 된 홍기씨. 재활치료 후 퇴원한 그에게 절실했던 건 직업이었다.

손가락 하나 사용하지 못하는 그에게 선뜻 자리를 내어줄 회사는 없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전공을 살려 2007년, 전공의 영어번역을 해보겠다는 목표로 미국 영어 연수 및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게 됐다.

“2000만원 정도를 모았어요. 모은 돈과 대출을 받아서요. 그때 당시엔 충분히 못 갚겠냐라는 심정으로 무조건 미국에 가겠다는 목표로 간 것이죠. 저를 도와줄 어머니와 단둘이서요. 장애인이 무슨 유학이라는 소리도 듣기 싫어서 3년 정도 준비를 해서 올랐는데 문제는 욕창이었어요. 비행기를 오래타고 가면서 생긴 욕창 때문에 4개월밖에 있을 수 없었어요. 좌절감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고요.”

그런 그에게 조그만 희망이 찾아온 건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던 중 보건복지부의 활동보조인제도 CF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장벽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과 살고 있던 그는 시간의 모자람을 채우기 위해 독거로 생활하게 됐다.

그럼에도 492시간이라는 적은 시간 때문에 75세의 노모가 그 남는 시간을 책임질 수밖에 없었다. 20년 전부터 현재까지 홍기씨의 일상생활을 책임지는 노모 김옥년씨의 몸도 많이 허약해졌다. “아들이니까 하지”란 노모의 말에 홍기씨의 마음은 무거울 수밖에.

“현재 492시간 정도 활동보조를 받아요. 적은 시간이다 보니까 엄마가 계속 왔다 갔다 하셔야 하고. 지금 허리가 아프셔서 잘 움직이시지도 못해요.”

그의 수입은 현재 장애연금 50만원이다. 매달 나가는 지출은 지역의료보험 20만원, 활동지원제도 본인부담금 20만원. 그에게 남는 돈은 10만원이 전부다. 사고 후 1997년 보험금 등으로 구입한 아파트 소유주라는 이유기 때문이다.

최근 복지부가 의료보험 개선으로 지역의료보험비를 장애인에게 할인혜택을 주겠다는 발표에 희망을 얻었지만 ‘올스톱’된 현실에선 아무런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황망한 동료의 죽음, 씁쓸함만=더욱이 몇 일전 국립재활원을 중심으로 전신마비 장애인 15명 정도가 모이는 ‘정상회’ 동료를 잃고 말았다.

지난 14일 소변배출이 되지 못해 뇌출혈로 사망한 오주원씨의 황망한 죽음. 정상회 회장으로서, 동료로서 장례식을 다녀왔다는 그는 “나도 그런 식으로 갈 수도 있다”고 토로했다.

소변 배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척수장애인은 하루에 5~6회씩 요도에 도뇨관을 삽입하는 CIC를 실시하지만, 보호자가 너무 힘들어해 대부분 치골상부 유치도뇨(배꼽 밑에 구멍을 뚫어 폴리로 소변처리)를 한다.

하지만 문제는 소변찌꺼기다. 옆에 사람이 소변찌꺼기가 있으면 바로바로 도와주면 해결이 되는데 문제는 홀로 생활하는 독거장애인이다. 홍기씨의 경우도 소변찌꺼기를 처리하지 못해 반점까지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평소 저혈압인 편인데 소변찌꺼기가 생겨서 막히면 혈압이 올라가고 땀도 엄청나요. 몸에 반점까지 생기구요. 그럴 때는 옆에 있는 사람이 얼른 해결해주거나, 응급실로 가야되는데 활동보조시간이 너무 부족하거든요. 의료행위다 보니 방문간호를 불러야하는데 당장 올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남 일 아니에요, 저도 언제 그렇게 갈 수 있거든요.”

지푸라기라도 잡자는 심정으로 도전했던 번역, 그리고 찾아온 절망감. 일상의 삶으로 돌아오길 꿈꿨던 척수장애인 홍기씨는 직업을 갖기 위한 노력을 수도 없이 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최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중증장애인인턴제를 시행했지만, 지체로 분류되는 척수장애인은 해당사항이 없다. 홍기씨도 “안되니깐요”라고 씁쓸한 표정 뿐.

“회사에서는 전신마비를 고용하는 것이 오히려 피해를 받을 거예요. 일괄적으로 지체장애인으로 분류되다보니까 특별한 사각지대를 위한 혜택이 없어요. 물 한모금도 떠먹지도, 휠체어를 밀지도 못하는 전신마비 장애인에게 활동보조인 시간을 늘려주든, 어떤 혜택이 있어야하는데 그저 답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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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기 기자 (lovelys@able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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