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열린 지적장애인 뮤지컬축제에서 'The ugly duckling'을 발표하는 연수고 학생들.ⓒ에이블뉴스

‘Hello Ducking One(안녕 첫째 아기 오리야!)’, “Quack, quack” 무대 위 인천 연수고등학교 지적장애청소년 5명은 어설픈 몸짓, 더듬거리는 목소리, 어쩔 줄 모르는 시선처리로 준비한 대사를 하나하나 뱉어냈다. 20분 남짓한 작은 공연은 아이들이 처음 느끼는 최고의 무대였다.

25일 오후 인천시교육청 대회의실에서는 색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인천비영리단체 힐링에듀가 국내 최초로 ‘지적장애인 영어뮤지컬 축제-능력을 뛰어넘어서’를 개최한 것.

비장애인도 어려워하는 영어를, 장애인 그것도 지적장애인 청소년들이 영어를 이해하고, 말할 수 있을까란 의문을 갖고 방문했던 대회장이었지만 아이들은 “우리도 할 수 있다”며 오히려 갖고 있는 편견을 깨줬다.

대회 시작 1시간 전 무대 동선을 맞추느라 정신없는 시간. 친구들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떠들고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 옷이 뭔지 알아요? 요정이래요”라며 기자에게 다가온 신명여자고등학교 박미정(18세, 지적3급), 배지인(18세, 뇌병변6급), 이예림(19세, 지적2급) 학생.

여고생 특유의 발랄함을 가진 그녀들은 오랫동안 준비해왔던 뮤지컬에 한층 들떠있는 모습이었다. “얼마나 준비했냐”는 질문에도 “1년”, “아니야! 그렇게 안됐어!”라며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친구들은 영어선생님이 8개월 전에 권유했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들이 준비한 내용은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루돌프, 빨간코 사슴)”. 다가올 크리스마스에 맞춰서 지난 8개월간 일주일에 1번씩 모여 피나는 연습을 했다는데. 영어로 된 원문을 한국말로 옮기고, 그것을 하나하나 외웠다.

그렇게 열심히 준비한 친구들의 첫 공연이다 보니 친구들의 마음은 들뜨기 그지없다. 크리스마스 복장을 입은 친구들을 향해 함께 뮤지컬을 준비하던 타 학생들도 “메리크리스마스!”하며 장난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축제를 앞둔 학생들의 즐거운 모습.ⓒ에이블뉴스

이중 영어를 가장 잘한다는 예림 학생은 “너무 재밌었던 순간이었다. 꼭 1등 하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공주님 복장을 한 부평여고 김지연(18세, 지적2급)학생도 “선생님의 권유로 참석했어요. 저는 주인공이예요, 뮤지컬 너무 재밌어요”고 말했다.

긴장 속에 시작된 무대, 연수고등학교, 신명여자고등학교, 부평여자고등학교, 영선고등학교, 석정여자고등학교 등 총 5개교 통합학급의 지적장애인 38명의 학생들의 무대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어설픈 몸짓에 훈훈한 미소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 “forever! forever!”라 외치며 열연하는 부평여고 마녀역의 홍은주 학생에게는 “올~”이라는 감탄사를 보내기도 했다. 대사를 잃어버린 친구에게는 해설을 맡은 힐링에듀 박홍규 원장이 마이크를 대고 속삭여 폭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그중 연수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탁진홍(19세, 뇌병변‧지적 1급) 학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대사 없이 휠체어를 타고 등장, 친구들과 호흡을 맞췄다. 진홍군은 뇌병변, 지적, 심장, 희귀난치병질환 2가지를 갖고 있는 최중증 장애인이다. 그럼에도 지난 인천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 성화 봉송에 참가하는 등 인천에서 ‘나름’ 유명한 학생.

진홍군의 어머니 정은희(46세, 인천 연수구)씨는 “장애를 가진 우리 아이들도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서 뮤지컬에 참가하게 됐다. 통합학급에서의 따뜻한 선생님과 아이들이 있었기에 진홍이가 잘 생활하고 있는 것”이라며 “뮤지컬을 통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사회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감동스런 뮤지컬 무대를 준비한 힐링에듀의 중심에 있는 박홍규 원장. 그는 다문화, 저소득층, 장애인 학생들에게 1주일에 한번 통합학급에 찾아가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 선생님이기도 하다.

그를 향한 학생들의 애정공세도 뜨겁다. 석정여고 신소영 학생은 “영어쌤은 멋있어요. 좋아요. 쌤 사랑합니다”란 편지를 보내기도.

박 원장은 “인천교육청에 공고를 통해 친구들을 모집했다. 1년 동안 연습을 했는데, 친구들이 아주 열심히 하고 정말 잘한다”며 “앞으로 내년에도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금은 어설프고, 엉성하지만 이번 ‘지적장애인 영어뮤지컬 축제’는 학생들이 1년 동안 노력한 최고의 무대였다. 그들의 열정은 여느 걸그룹 못 지 않을뿐더러, 비장애인도 어려워하는 영어를, 영어선생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의 마음은 누구보다 뜨거웠다. 아이들은 이날 뮤지컬을 통해 세상에 분명히 말했다. “우리도 뭐든지 할 수 있다”고.

'Rudolph, the Red-Nosed Reindeer' 공연을 하고 있는 신명여고 학생.ⓒ에이블뉴스

탁진홍 학생과 그의 어머니 정은희씨.ⓒ에이블뉴스

25일 오후 인천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적장애인 영어뮤지컬 축제.ⓒ에이블뉴스

25일 오후 인천시교육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지적장애인 영어뮤지컬 축제.ⓒ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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