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강희숙씨가 나래요리학원 구춘임 원장의 도움을 받아 해물파전을 만들고 있다.ⓒ에이블뉴스

‘에구구 파전을 뒤집어야지!’, ‘선생님~간장을 그렇게 듬뿍 넣으시면 어떡해!’.

25일 서울 봉천동에 위치한 나래요리학원에서 7명의 시각장애인들이 해물파전을 만들기까지의 시간은 1시간. 비장애인보다 2배나 걸리는 시간이지만 촉각과 후각으로만 진행되는 수업이기에 그들의 도전은 흥미롭기 그지없다.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이 이달 초부터 시작하고 있는 중도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초조리교실. 이들은 닭볶음탕, 해물된장찌개에 이어 이날 해물파전에 도전했다.

7명의 교육생, 3명의 보조교사가 자리에 서자 나래요리학원 구춘임 원장의 강의가 시작됐다. “파를 먼저 자르시구요, 칼을 꼭 치우셔야 합니다…”. 시각장애인 교육생들이 열강 하는 모습에 너무 기분이 좋다는 구 원장은 20여분동안 목소리로만 그들에게 요리법을 설명했다.

구 원장은 “시각장애인분들이라서 처음에는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신다. 암기력도 좋으셔서 한번 말하면 기억을 잘하셨다가 오히려 저에게 지적을 하기도 한다”며 “무엇보다 수업시간에 딴 짓 없이 잘 열강해주셔서 항상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구 원장의 시범이 끝나자, 본격적으로 그들이 칼을 들었다. 더듬거리는 손놀림으로 쪽파를 집은 그들은 2등분으로 자르고, 오징어와 새우를 다듬어야 한다. 보조교사들은 전맹 시각장애인을 위해 어떤 재료가 있는지 말로 우선 설명한 후, 재료를 하나씩 그들 앞으로 놓아줬다.

스스로도 ‘입맛이 고급스럽다’는 이충호씨(62세, 시각1급)는 20여년전 질병으로 중도장애인이 됐다. 물론 이번 요리교실로 처음 앞치마를 메고, 칼을 잡은 요리초보다.

이씨는 “항상 아내가 해주는 음식만 먹다가 이번 요리교실을 통해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었다”며 “요리를 직접해보니까 아내한테 감사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집에 가면 잊게 된다”고 껄껄 웃었다.

오징어를 자르는 모습이 제법 능숙한 강희숙씨(36세, 시각1급). 반듯하게 잘린 오징어에 “요리를 평소에 즐겨하나”라는 물음이 생겼지만, 그녀 역시 요리 초보였다.

시각장애인들이 만들고 있는 해물파전 모습.ⓒ에이블뉴스

27세에 중도실명으로 전맹장애인인 강씨는 비장애인 시절 집에서 간식정도만 요리를 해봤다. 장애인이 되고 나서야 처음으로 칼을 들어봤다는 그녀는 “요리가 참 재밌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직 처음이라서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야하지만, 그녀는 꼭 ‘토마토 파스타’를 직접 만들어 먹고 싶다는 작은 소망을 이루고 싶다.

이날 교육생 중에는 중도장애인 뿐만 아니라 앳된 얼굴의 선천적 전맹인 김선영씨(33세, 시각1급)도 함께했다. 김씨는 “요리교실을 통해 칼질을 처음으로 해봤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콩나물인데 요리교실을 통해 요리를 배워서 꼭 부모님께 음식을 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칼질과 밀가루 반죽이 끝났다. 이후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본격적인 파전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 불을 사용하기에 시각장애인들에게 가장 조심을 기울여야 하기에 보조교사들의 움직임도 바쁘다. 각자 만든 밀가루 반죽을 후라이팬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물론 작은 실수는 존재했다. 이충호씨의 경우, 전맹이다 보니 재료를 잘 구분하지 못해 식용유 대신 참기름을 잔뜩 부어버렸다. “아이고 튀김이 되버렸네”라며 껄껄 웃는 이씨는 그래도 가장 맛있는 파전을 만들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중년의 시각장애인 김병우씨는 간장이 듬뿍 담긴 ‘특제소스’를 만들었다. “간장 두 큰술을 넣고 식초 한 큰술을 넣으세요”라는 구 원장의 당부에도 그릇에 간장을 듬뿍 부어버린 것. 간장과 식초가 듬뿍 든 김씨의 소스는 결국 버려졌지만 교육생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1시간이 지난 후, 어느 때보다 즐거운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교육생들은 처음으로 만들어본 해물파전을 맛봤다. 서로 자신의 것이 맛있다는 그들은 자신을 도와준 보조선생님들에게 한 입을 선사하며 고마움을 표했다.

자신이 만든 파전을 먹어본 김선영씨는 “너무 맛있네요. 강사님이 설명을 잘 해주셔서 맛있는 요리가 된 것같다”며 소감을 전했다.

이충호씨가 해물파전을 뒤집고 있다.ⓒ에이블뉴스

시각장애인 김선영씨가 자신이 만든 해물파전을 맛보고 있다.ⓒ에이블뉴스

25일 나래요리학원에서 열린 중도 시각장애인 기초요리교실 수업 풍경.ⓒ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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