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발표한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이문희 사무차장.ⓒ에이블뉴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이 장애인복지법 전면 개정을 위한 독자적인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내놨지만, 장애계의 반응은 차가웠다.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18일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장애인 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하고, 장애인복지법 개정 초안에 대한 장애계의 의견을 수렴했다.

앞서 장애계에서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의 전면적 개정에 대한 욕구와 노력을 시도해왔다. 서비스법이라는 형식적 한계와 장애인의 사회권, 자유권, 정치권 등 다양한 영역에서 차별 또는 권리침해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나 이를 권리적 측면에서 대응할 수 없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장애인복지법은 장애를 의료적 모델에 초점을 두고 장애를 정의하는 한계를 보여왔다. 이에 장애계에서는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을 전면 개정, 권리측면을 강화한 새로운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을 들고나왔다.

정치권의 반응도 좋았다. 박근혜대통령은 지난 대선 당시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과 장애등급제 폐지 및 개선을 공약으로 내건 것. 지난해 8월 장애계에서도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연대를 출범하고,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운동을 선포했지만, 이후 별다른 속도 없이 지지부진한 현실.

이에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에서는 독자적으로 올해부터 장애인권리보장법의 법 초안을 준비했고, 완성된 초안을 두고 장애계에 발표하게 된 것이다. 장총이 발표한 권리보장법은 11개의 장, 144개의 조항으로 구성됐다.

기존 장애인복지법에서 새롭게 제시한 내용은 장애인위원회, 권리보장 및 복지서비스 절차 속 개인별지원계획, 지역사회 지원체계 속 장애인종합지원센터, 장애인권익옹호센터, 단체소송 등이다.

장애인권리보장법 초안을 각 영역별로 소개한 나사렛대 우주형 교수, 성신여대 이승기 교수, 경기복지재단 양희택 책임연구원.ⓒ에이블뉴스

■의료적 관점 정의 탈피=먼저 권리보장법에서는 장애인의 정의부터 새로 썼다. 현행 장애인복지법상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구분하는 방식과는 달리 권리보장법에서는 신체적 기능과 정신적 능력의 제한으로 기술함으로써 의료적 관점에서의 정의를 탈피했다.

또, 장애인에 대한 권익침해 행위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단체소송 부분도 넣었다. 개인이 아닌 단체에 소제기권을 부여하며 그 단체가 나서 소송을 수행하는 ‘장애인권익침해행위금지 단체소송제도’를 만든다는 것.

단, 소송이 남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수행 단체를 장애인의 권익을 위해 활동해온 단체로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로 한정하고, 소송 대상을 권리침해행위의 중단‧정지 청구소송으로 제한했다.

장애인정책조정위원의 위상 강화를 위한 ‘장애인위원회’ 부분도 눈에 띈다. 이는 앞서 지난 2월 최동익 의원이 발의한 국가장애인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의 상설기구로 한다는 ‘국가장애인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안’과 같은 맥락이다.

권리보장법 상 장애인위원회는 대통령 소속하에 위원회를 설치하며, 위원장 1인과 상임위원 2인 및 11인 이내의 비상임위원으로 구성한다. 상임위원 중 1인 및 비상임위원 중 과반수는 장애인이다.

이들은 5년마다 장애인정책종합계획의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사항, 관련 법령의 제정, 제도개선, 예산지원 등을 심의하게 된다. 또 장애인복지정책수립에 필요한 장애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한다.

■‘직접 지불 방식’ 근거 규정 마련=복지서비스에 대한 현물 또는 바우처방식에서 현금방식으로 지급하는 직접 지불 방식 제도를 근거로 둔 점도 독특하다. ‘개인별지원계획에서 수립된 복지서비스는 전부 혹은 일부를 현금으로 환산해 장애인에게 직접 지불하는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

이는 그간 장애계에서 논의되어온 직접지불제도 또는 개인예산제도를 실현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단, 현재의 장애인복지서비스 체계의 여건상 근거규정을 마련하고 세부적인 내용은 합의를 통해 절차를 마련토록 했다.

아울러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통합돼 주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전환서비스를 지원토록했다. 전환서비스는 체험홈, 공동가정, 자립생활가정, 장애인전환서비스 지원센터, 지역사회 기관 간 연계사업 등이다.

이외에도 장애인종합지원기능을 담당할 장애인종합지원센터의 설치 근거를 명확히 했으며, 장애인에 대한 권익침해 행위를 조사하고 인권침해 예방을 위한 장애인권익옹호센터의 설치, 장애인복지시설을 장애인복지기관으로 통칭해 자립생활센터도 포함시켰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정책위원, 보건복지부 이영재 서기관.ⓒ에이블뉴스

■전면 개정 아닌 보강…새롭게 다시 써야=반면, 한국장총의 독자적인 권리보장법 초안에 대해 장애계는 신랄한 비판을 쏟아냈다. 기존의 장애인복지법의 전면적 개정안이라기보다는 ‘부분 보강안’에 불과하다는 것.

한국장애인인권포럼 윤삼호 정책위원은 “장애인복지를 전국적 수준에서 조정하고 관리하는 통합적 상설기구 설치는 무엇보다 중요하다”면서도 “대통령 산하에 둘지 국무총리 산하에 둘지는 현재의 정치적 상황과 기구의 효율성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구성에서 과반수는 장애 당사자로 한다는 규정이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의 정의 관련해서도 윤 위원은 “정의는 현재 장애인복지법보다 진일보한 측면이 있지만 깊이가 부족하다. 장애 정의가 환경적 요인을 고려하고 있음에도 실질적인 장애 범주의 확대를 위한 조항 또는 문구가 보이지 않는다”며 “암, 에이즈 등 만성 중증질환부터 장애범주에 포함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법률적 조치가 포함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또 윤 정책위원은 “등급제는 장애인 사회의 요구와 정부의 수정 방침에 따라 이미 폐지가 결정된 정책이다. 그럼에도 법안에는 장애인복지법 조항을 그대로 수용해 장애등급 사정 및 조정에 관한 규정을 담고 있다”며 “등급제 폐지 이후의 서비스 적격심사에 대한 창의적인 대안이 마련되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남병준 정책실장은 한마디로 “실망스럽다”고 평했다. 전달체계 개편이 핵심으로 느껴지는 정도일 뿐, 실질적인 장애등급제 폐지의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의견.

남 정책실장은 “권리보장법은 장애등급제 폐지의 대안으로 제정하자고 목소리가 있어왔고, 지난 대선에서도 박근혜대통령이 약속했던 사항”이라며 “권리보장법은 등급제 폐지의 대안인데 권리선언에 불과하고 장애등급제가 그대로 살아있다”고 지적했다.

권리보장법안 상 제 49조 속 장애수당 부분에서 장애등급제와 부양의무제가 그대로 살아있으며, 제 59조 장애인등록은 현행 장애인복지법을 손대지 않고 그대로 뒀다는 지적. 이 안에는 장애등급제, 장애등급심사 등이 담겨있다.

이어 남 정책실장은 “권리보장과 복지서비스 내용이 취약하다. 자립생활, 건강권, 주거권, 교육권 등 다양한 권리와 국가의 책무를 명시하고 각 서비스 항목에서 이에 근거한 내용이 연동되는 것이 이상적인이지만 별다른 내용이 담겨있지 않다”며 “자립생활, 전환서비스 등의 내용은 단어만 있고 실효성을 찾지 못하겠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남 정책실장은 “장애인복지법 폐지 대안논의부터 새롭게 시작했으면 좋겠다. 대안 논의와 함께 새로운 권리보장법 제정논의를 처음부터 같이 갔으면 좋겠다”며 “한 두 단체의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아닌 장애인계가 힘을 모아 실현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편, 보건복지부 장애인정책과 이영재 서기관은 “장애인 권리보장을 강화해야한다는 당위성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토론회안에서도 여러 가지 다른 의견이 있고, 다양한 논의가 시작됐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보인다”면서도 “과연 서비스와 인권 전달체계 부분들이 한 법률에 담는 것이 옳은 것인지 논의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법은 입법적 결단의 문제이기 때문에 시일을 두고 사회적 의견이 우선적으로 수렴되야 한다”고 말했다.

18일 한국장총의 장애인권리보장 및 복지지원에 관한 법률 제정을 위한 토론회.ⓒ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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