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법 제정을 촉구하는 수화언어권 공대위 모습.ⓒ에이블뉴스DB

매년 장애인 관련 법률안이 끊임없이 국회에 제출되고 있다. 하지만 실제 국회를 통과해 시행이 되고 있는 법안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난 2012년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염원이 담긴 발달장애인법도 2년이 지나서야 어렵게 국회를 통과했다. 그 밖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법안은 국회에 계류돼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마저도 다음 국회로 넘어가면 폐기돼 버려, 또 한 번의 발의를 거쳐야 한다. 앞서 지난 18대 국회에서도 통과되지 못한 장애인 관련 법안이 수두룩 폐기되기도 했다.

장애인들의 절실한 목소리가 담긴 소중한 법안임에도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 한다면 ‘무용지물’인 셈. 더욱이 장애인 당사자 조차 자신들을 위한 법안이 제출됐는지 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에 에이블뉴스는 기획특집을 통해 장애인들에게 절실하고, 특징이 있는 19대국회에서 발의된 법안들을 연속적으로 소개한다.

지난 4월, 2년 만에 발달장애인 부모들의 염원 발달장애인법이 통과되자, 그들은 국회 앞에서 환호했다. 반면, 환호하는 이들 뒤에서 씁쓸히 지켜봐야 하는 또 다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수화는 언어다”를 외쳤던 35만 농아인들이다.

농아인들은 교육, 노동 등 많은 부분에서 사회적 차별을 받아왔다. 특히 청각장애인이 수업을 받고 있는 특수교사 가운데 수화통역사 자격증을 소지한 교사가 3.8%에 불과할 정도로 교육현실은 심각하다.

알아듣지 못해 눈치껏 행동하는 11살 청각장애아의 ‘사오정’이란 별명은 의사소통이 부재한 농아인들 모두에게 가슴 아픈 단어이기도 하다.

법안을 국회에 제출하는 모습.ⓒ에이블뉴스DB

■국회에 제출된 수화관련법, 총 4개=한국어와 구별되는 고유한 언어인 한국수어를 농인의 공용어임을 선언해달라는 골자의 수화 관련법은 현재 국회에 4개의 법안이 제출된 상태다.

발의한 의원, 시기는 다르지만 저마다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의 의사소통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같다.

가장 먼저 발의된 법안은 2013년 8월 발의된 민주당 이상민 의원의 ‘한국수화언어 기본법안’이다. 이는 지난 2010년 3월 윤석용 의원의 주도로 입법발의가 추진됐으나, 소관부처와 예산수반조항 삭제 등의 문제로 아쉽게 폐기됐던 내용을 그대로 담고 있다.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청각장애인의 언어권을 신장하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한국수화언어를 시각적 동작체계의 언어로서, 대한민국에서 사용하는 공식적 언어로 정의한다.

또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한국수화언어를 체계화‧표준화해 교육 보급해야 하며, 한국수화언어심의회와 한국수화언어연구소를 설치토록 했다.

두 달이 지난 2013년 10월에는 두 개의 법안이 발의됐다.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의 ‘수화기본법안’과 새누리당 이에리사 의원의 ‘한국수어법안’이다.

눈여겨 볼 만한 법안은 이 의원의 ‘한국수어법안’으로 한국농아인협회 등 12개 단체가 연대한 한국수어법 제정추진연대가 2012년 11월 구성, 윤석용 의원의 한국수화언어기본법안을 기초로 마련한 법안이다. 이는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입법 법안이기도 하다.

다른 법안과의 뚜렷한 차이도 존재한다. 법안 명칭이 ‘수화’가 아닌 ‘수어’를 택한 것. 이는 연대가 공청회, 설문지 등 장애인 당사자의 의견수렴을 통해 ‘수어’를 택해 명칭을 ‘한국수어법’으로 정한 결과다.

내용은 다른 법안과의 큰 차이는 없다. 한국수어가 농인의 공용어임을 선언하고, 농인의 모든 생활 영역에서 수어를 사용한 의사소통을 지원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노인 교사 및 한국수어를 사용할 수 있는 교사를 양성하고 농인 당사자 뿐 아니라 농인과 관계된 교육과 부모의 수어 학습을 지원하고 교육용 교재를 보급하는 등 교육환경 조성을 규정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수화관련법을 위해 또 하나의 움직임이 있었던 단체. 수화언어 권리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이하 수화 공대위)의 법안은 가장 마지막에 상정됐다.

수화 공대위는 지난 2011년 영화 도가니를 통해 문제제기를 시작한 장애인정보문화누리를 주축으로 꾸려졌으며, 지난해 11월 정의당 정진후 의원에 의해 발의됐다.

법안의 명칭은 ‘수화언어 및 농문화 기본법’으로, 수화언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갖춘 언어임을 밝히는 동시에, 농정체성, 농문화를 지원, 육성하고자 하는 뼈대로 이뤄져 다른 법안과의 차이가 있다.

법안 주요 내용에 따르면, 5년마다 수화언어 및 농문화 발전 기본계획을 수립하도록 했으며,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으로 수화언어심의회를 두고 기본계획의 수립 등 수화언어의 발전을 위한 주요사항을 심의하도록 했다.

또한 국가 및 지자체는 농인과 수화언어사용자가 장애 발생 초기부터 수화언어를 습득할 수 있도록 하고, 농문화에 기반을 둔 문화예술을 발굴‧육성하고 활성화를 위해 지원하도록 했다.

"수화는 언어다" 촉구하는 한국농아인협회 회원들.ⓒ에이블뉴스

■전폭적 환영에도…더디기만 한 국회=4개의 법안이 발의될 만큼, 농인들에게 큰 관심과 환영을 받았지만, 한 해를 거른 수화관련법은 아직도 국회에 잠자고 있다.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지난해 12월 단 한차례 법안 소개 이후 탁자에 오르지 못한 상태다.

특히나 지난 4월 세월호 사건, 6월 지방선거 등으로 숨쉴틈 없었던 국회 일정에 밀려 진행이 늦어지고 있어, 35만 농아인들의 마음은 초조하기 그지 없다. 제정을 촉구하는 1인시위도 5월초부터 현재까지 진행 중이지만 법안에 대한 움직임은 더디기만 하다.

한국수어법 제정추진연대 관계자는 “현재 국회 소집이 되지 않고 있고, 법안은 상임위에 그대로 있는 상황이다. 아마 산적된 부분들이 많아서 이번 임시국회 때도 논의되기는 힘들 것 같다”며 “이달 말까지 일단 진행하고 있는 1인시위를 마치고, 이후 새로운 방안을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수화공대위 관계자는 “작년 말에 상임위에 보고가 됐지만, 세월호 사건 등에 맞물려서 논의가 쉽게 되지 않는다. 특히나 제정 법안이다 보니 일사천리로 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며 “농아인들의 기대치에 맞게 빨리 제정이 되면 좋은데 법안은 아무래도 시간을 요한다. 발달장애인법도 2년이 걸린 만큼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일단은 정부의지가 중요한데 정부가 법안에 대한 의지가 있다. 세월호 문제가 끝나고 하반기 쯤에는 국회에서도 공청회를 열지 않을까 싶다”며 “제정이 빨리 되면 좋겠지만, 일정상 늦은 것은 아니니 충분히 지켜보고 그 후 공대위 측에서의 활동도 제기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4월16일 세월호 사건으로 어린 학생들이 배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참담한 모습에도 이들은 내용을 잘 알지 못했다. 방송사 뉴스 특보에 농인들을 위한 수화가 제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제쯤이면 농인들을 위한 수화가 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까. 농아인들은 오늘도 기대감을 버리지 않고 국회의 움직임을 기다리고 있다.

김정환(53세, 청각장애2급)씨는 “농인은 음성언어인 한국어 대신 한국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차별받지 않도록 법으로 보장받아야 한다”며 “의사소통의 부재로 병원, 경찰서 등에서 항상 곤란함을 겪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헌법에서 명시한 만큼 수화법이 하루 빨리 시행되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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