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앞에 선 제 모습이 어떻게 보이시나요? 저는 세상 밖에 나온 지 불과 3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3년이 흐른 지금 저는 많이 달라졌고 비로소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요즘 저는 장애인 일인극에 도전해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끝날 때쯤 저는 한층 성장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달릴 것입니다. -오지석, 누워서 보는 세상 中-

지난 4월 인공호흡기에 이상이 생겨 사경을 헤맸던 중증장애인 오지석씨, 결국 47일만의 사투 끝에 지난 1일 숨졌다. 세상과의 소통을 놓지 않던 32세의 장애청년은 자립생활의 꿈을 간직한 채 그렇게 눈을 감고 말았다.

생전 오지석씨의 모습.ⓒ장례위원회

■끊임없이 세상과 소통했던 젊은 청년=송파구 장지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어머니와 단 둘이 생활해왔던 고 오지석씨(지체1급, 남). 근육병장애로 인공호흡기를 24시간 착용하며 살아왔다.

하루 24시간 활동지원제도가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독거 특례를 받지 못해 복지부 118시간, 서울시 100시간, 송파구 60시간 등 총 278시간만을 받아왔다.

그러나 활동지원 서비스가 부족해도 ‘자립생활’의 꿈을 놓지 않았다. 호흡기를 코에 비유해 ‘날으는 코끼리 네트워크’라는 근육병 장애인의 자조모임을 만들고 전국의 호흡기 사용 회원 장애인들을 만나고 다녔다.

또래 청년들답게 ‘예쁜 여자친구’도 사귀고 싶어서 2년 전 여의도 솔로대첩 행사에도 참여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집 근처 가든파이브에서 듣던 음악을 듣는 것도, 침대에 누워 컴퓨터로 글쓰기도 좋아했다.

지난 2013년 장애인자립생활 컨퍼런스에서도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부모님이 나이 들어가면서 부담을 가진다. 중증장애인도 부모님이 조금이라도 신경을 덜 수 있도록 활동보조24시간을 보장해달라”는 목소리를 낼 만큼 홀어머니를 챙기던 그 였다.

당사자로서의 장애계 운동도 앞장섰다. 지난 2012년 故 허정식씨의 사망사건 당시 호흡기를 낀 채 각종 집회에 나가 호흡기 착용 장애인의 실상과 재발방지 대책을 요구했던 것. 그랬던 지석씨는 허씨와 마찬가지로 “호흡기가…”라는 생의 마지막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지난 4월16일 ‘420장애인대회’에 참석해 귀가한 후, 활동보조인이 퇴근하고 어머니가 집으로 오던 사이, 인공호흡기에 이상이 생기고 만 것. 가까스로 어머니와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119응급대가 오기 전에 그는 이미 의식불명상태에 빠졌다.

장애계는 슬퍼했다. 몇 시간 전까지 나와 같은 공간에서 투쟁을 외쳤던 오씨가 중환자실에서 생사를 다투는 모습에 빌고 또 빌었다. 제2의 허정식씨가 나오지 않도록.

하지만 47일간 의식불명이라는 소식만 알려진 채 세월호, 지방선거 등에 잊혀지고 있었던 지석씨는 결국 1일 새벽2시50분 사망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사각지대 피해자 고 오지석 동지 장례위원회(이하 장례위원회)는 3일 지석씨가 안치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근처 마로니에 공원에서 추모제를 열었다.ⓒ에이블뉴스

■뿔난 장애계, “활동보조 24시간 보장”=이에 장애계도 지석씨의 죽음에 슬픔을 함께 했다.

장애인활동지원제도 사각지대 피해자 고 오지석 동지 장례위원회(이하 장례위원회)는 3일 지석씨가 안치된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근처 마로니에 공원에서 추모제를 열었다. 특히 이날은 비가 와서 지석씨를 잃은 슬픔이 배가 됐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찬오 소장은 “지석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근육병이 발병돼 중퇴했다.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한 채 집안에서 27살까지 살아야 했다. 환자처럼 보는 게 싫다며 엠블란스도 타고 나오지 않던 청년”이라며 “호흡기가 고장 나면 버튼만 눌러주면 살 수 있는데, 혼자 있을 때 호흡기에 이상이 생겼다. 뇌사 상태에 빠져 하늘나라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개탄했다.

이어 박 소장은 “활동보조 24시간을 쟁취하지 못한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조직 구분없이, 장애 구분 없이 중증장애인이 활동보조 24시간을 안심하고 쓸 수 있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강조했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찬오 소장, 남민 팀장,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회장.ⓒ에이블뉴스

4년 동안 지석씨와 친구로 지내온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 남민 동료지원팀장은 “지석이는 어머니와 살면서 근육병 때문에 병원에 약을 받으러 엠블란스를 타고 나간 것 밖에 외출한 것이 없었다. 2010년 처음 본 지석이는 환자복을 입고 누워있던 상태”라며 “2012년 처음 밖을 나온 지석이는 너무나 즐거워했고, 집에 있는 장애인들을 만나러 다니며 나도 사회에 나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친구”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남 팀장은 “지석이는 인권에도 관심이 많았다. 1박2일 여행을 계획하며 누워있다는 이유로 탑승을 거부한 KTX에 직접 찾아가 면담을 했다. 그 끝에 결국 KTX를 탈 수 있도록 권리를 쟁취했었다”며 “많은 것을 하려했고, 하고 싶은 것이 많았던 지석이였다. 제2의 지석이를 잃지 않도록 활동보조 24시간 제도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최용기 소장도 “장애등급제는 아직 폐지 되지 않았고 활동보조가 없어서 줄줄이 죽어가고 잇다. 언제까지 장애인이 죽어가야 하는지 개탄스럽다”며 “장애인도 국민이다.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살기위해 국가가 보장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한편, 장례위원회는 오는 5일 오전10시 서울시청광장에서 고 오지석씨의 장례식을 진행하며, 이후 장애인 활동지원 24시간 이행을 촉구하는 투쟁을 전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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